매거진 밑줄 노트

사랑에는

by 관지


동생 존 폴에 대해서 한 가지 이야기해 둘 것이 있다. 어렸을 때 나는 자만심이 강하고 몰인정한 반면, 동생은 천성이 겸손하고 애정이 넘치는 아이였다. 지금도 동생 일을 생각하면 가슴 찢어질 듯한 아픔을 느낀다.

누구나 어렸을 때에는 나이 어린 동생과 함께 놀면 품위가 떨어진다고 느끼는 것이 형의 심리인 것 같다. 형은 동생을 어린애로 깔보거나 혹은 과잉보호를 하려고 든다.

그 당시 더글라스톤에는 전역에 걸쳐서 투기업자들이 싸구려 날림집들을 짓고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그 공사판에서 판자 쪽이며 콜타르 종이 나부랭이를 주워다가 숲 속에 판잣집을 지으면서 동생과 그의 친구들은 얼씬도 못하게 했다.


호기심에 찬 그 아이들이 몰래 그 판잣집에 들어오려고 하거나 심지어는 기웃거리기만 해도 돌을 던져 쫓아 버리곤 하였다. 그중에서도 존 폴은 끈질기게 쫓아다녔다.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우리가 판자 집을 짓고 있는 수풀에서 백 야드쯤 떨어진 들판에 짧은 바지에 가죽 재킷을 입은 다섯 살짜리 꼬마가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부러운 눈으로 우리 쪽을 바라보면서 서 있는 모습은 좀 애처로웠다.


돌팔매가 무서워 더 가까이 오지 못하던 그 눈에는 분노와 비애가 가득했다. 몰인정한 우리가 집으로 가라고 발을 구르며 소리 지르고 돌을 던져도 동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버티고 서 있었다. 소리 내어 울지도 않았다.

분노와 슬픔이 가득 담긴 눈으로 불의에 대항할 수 없는 약자의 억울함을 그냥 참고 있는 것이다.
동생은 새로 짓는 판잣집 지붕에 신나게 못질하는 우리가 부러워서 떠나지를 못했다.


함께 거들면서 하면 더 빨리 되고 더 재미있을 텐데 왜 형은 오지 못하게 하는 걸까?
동생은 형과 같이 그 놀이에 참여하고 싶다는 당연한 요청이 왜 이렇게 난폭하고 불의하게 거부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의미로는 이 비정한 상황이 온갖 죄악의 모형이며 원형이다.

단순히 자기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기적인 이유 때문에 자기에게 향하는 사심 없는 사랑을 배척하는 고의적 의지 말이다.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37-38쪽





사랑에는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과

보는 사랑이 있는데


주고 싶어서 주는 사랑 보다

별로 받고 싶지 않을 때에도 받아 주는 사랑이


그리고,

눈꼴 시릴 때에라도 봐주는 사랑이

한결 깊고 아름답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저, 주는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요

받아들이는 사랑은 예수의 사랑이요

보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라 했던가.


왜 요즘 이 말이 자꾸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뭔가 걸림이 있음 이렸다.


주는 것도 인색하고

받아 주는 것도 서투르고

봐주는 것도 껄끄럽기만 하니.


무엇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기적인 이유 때문에

자기에게 향하는 사심 없는 사랑을 배척하는 고의적 의지“에 많이 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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