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외계인이 나에게 만년필을 주는 꿈을 꾸었다.
외계에서 온 사람이라는 건 옆에서 누가 말을 해 준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냥 알아차린 건지는 모르겠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네 남자의 형상이었는데 그 실루엣과 그가 가진 분위기, 그리고 나를 향한 마음과 내가 받은 느낌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매우 신중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나 같은 것을 (그때의 나는 그랬다.) 아껴주는 그가 고맙고 설렜다.
"이거 좋은 거야. 잘 간직해."
그가 한 말이었다.
오늘 새벽에 문득 그가 나에게 주었던 만년필이 곧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이냐가 아니라
그에게서 받았던 그때의 느낌 그대로 그를 믿는 것뿐이라는 것을.
I'm a fountain pen.
이제야 그가 왜 잘 사용하라고 하지 않고 잘 간직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참 오래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