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에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있으며 가로되
주께서 나를 돌아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시니라 하더라."
NIV <누가 1;24-25>
오늘 새벽 말씀이었다.
그런데 계속 내 속에서 물음이 왱왱거린다.
왜 숨어있었지?
그리고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라니
아니 임신 못하는 게 여자에게 부끄러운 일인가?
이런 논리라면 왜 이태껏 나를 부끄럽게 하시다가 이제야.. 하고
오히려 따져 물어야 할 일 아닌가.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안타까운 일이지, 그게 부끄러워해야 해야 할 일인가 말이다.
이런 사회적, 관습의 주입된 사고를 거부하는 게 종교일 텐데 성경에서까지 이런 모습을 봐야 하다니
좀 씁쓸했다.
그리고 사실 하나님은 엘리사벳의 부끄러움을 없애 주려고 아기를 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오심을 미리 준비해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요한을 보내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기 식의 해석과 간증이라니...
그러다 메시지성경을 찾아봤다.
그녀는 아이를 갖게 된 것을 기뻐하며 다섯 달 동안을 홀로 떨어져 지냈다.
그녀는 " 하나님께서 나의 딱한 처지를 이렇게 보상해 주시는구나"라고 말했다.
She went off by herself for five months, relishing her pregnancy.
"So, this is how God acts to remedy my unfortunate condition!" she said.
이제야 충분히 이해도 되고 공감도 된다.
그녀는 평생 원했지만 누리지 못했던 불임의 시절을 위로하고
지금이라도 자기를 찾아와 준 행운을 마음껏 기뻐하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누구의 위로나, 누구의 축하 보다도 스스로 견디고 이겨낸
자신을 위한, 애정 어린 배려인 것이다.
또한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발견하는 즐거움, 이것이야말로
혼자 두고두고 되새김이 필요했을 터.
홀로 떨어져 기쁨을 누리다니!
이렇게 그녀는 스스로 원하면 언제든지 혼자일 수 있는, 혼자를 누릴 줄 아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성경에는 이런 여성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