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에선가
세상 듣기도, 보기도 좋은 단어들을 200개쯤 늘어놓고, 그중 10 단어만 추리고 또 그 가운데서 4 단어만 고르라는 게 있었다.
나는 <가족, 건강, 사랑, 유쾌함>을 골랐는데
좀 의외였다.
가족과 건강은 그런갑다 해도 사랑과 유쾌함이라니....
가장 오염되고 식상해진 단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유쾌함은 글쎄, 좀 쌩뚱맞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들여다보니 맞는 것도 같았다.
이제는 내 삶 속에 사랑이 편안하게 들어올 때가 되었나 보다 싶기도 했고
또 유쾌함이 내 기본 바탕이라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쾌함을 놓지 않는 사람들에게 늘 반했고, 그런 사람이나 상황을 만날 때 에너지가 업 되며 주변에서 놀랄 만큼 크게 웃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네 단어를 놓고 보니
내가 무얼 가장 원하고 있는지 현주소가 보였고
한 문장이 완성되었다.
주님
저의 가족이 오늘도 건강하고 사랑 안에서 유쾌하게 지내도록 도와주세요.
나는 늘 바디매오가 부러웠다. <누가복음 18;35-43>
주님이 무얼 원하느냐고 물으실 때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망설임 없이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말할 수 있었던 사람.
그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문제를 알고,
또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끈질기게 고민한 흔적이었던 것이다.
환경이나, 누구를 탓하지 않고, 팔자라고 드러눕지도 않고,
이왕 일어난 일은 받아들이고
그러나 더 나은 삶을 위해 지금 나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주님이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늘,
네 원이 무엇이냐,
내가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고 물으시는 것은 바로 그런 태도, 준비된 그릇을 보시는 것이고 그리하여 바로 너의 믿음 덕분이라고 공을 되돌려주셨다.
나는 바디매오급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지금 내 원을 알고 나니 마음이 안정되고 기도도 더 이상 중언부언하지 않게 되었다. 마치 언제든 대답할 준비를 해 둔 것처럼 든든하기까지 하다.
내가 이미 독립한 식구들을 내 원의 우선순위로 놓는 것은 극진한 모성애 때문이거나 가족사랑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나를 위해서이다.
내가 고요하고 단정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잘 지내줘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잘 지내도록 나는 또 내 삶을 건강하게 잘 유지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어 있고
또 그렇게 사회와 나라와 세상과도
한 몸으로 이어져 있다.
그러니 부디 모두들 잘 지내시기를.
"나는 그대가 무엇보다 먼저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그대가 아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대가 아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특히 통치자들과 정부가 바르게 다스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겸손히 묵상하면서 단순하게 사는 일에 조용히 마음을 쏟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생활방식입니다. "
<디모데전서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