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지기 동네친구가 있.었. 다.
나는 섬에 있다가도 나가면 제일 먼저 그 친구를 만났고, 우리는 그 사이의 일상을 나눴다.
그것은 나에게 당연한 일과였다.
그런데 이제 그 친구는 나에게 없다.
얼마나 깔끔하게 지웠는지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이야기들을 나눴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제 본가에 가도 누군가를 만나러 나갈 필요가 없는 게 오히려 편하고 자유롭다.
관계라는 게 꼭 이유가 있어야 할까
그러나 굳이 이유를 댄다면...
언제부턴가 이야기가 겉돈다는 느낌이 있었고
어쩌면 우리는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감정쓰레기통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나,라는 회의가 들었고, 헤어져 돌아올 때면 시간낭비라는 헛헛한 생각이 들곤 했다.
결국 이런 마음이 어떤 사건을 촉발시켰을 것이고 그녀는 내 삶에서 사라졌다.
*
얼마 전, 다른 50년 지기 친구가 연락을 해 왔다. 미국 사는 친구인데 얼마나 간절히 찾았는지 연락이 되자마자 당장 비행기표 끊을 테니 오라는 걸, 내 형편이 자유롭지 않다고 사양했다.
가끔 톡과 통화를 하며 옛 추억과 삶을 나누고 있는데 봄에쯤 그녀가 올지도 모르겠다.
*
며칠 전 톡을 받았다.
"안녕하시죠? 성탄절부터 교회 다시 나가려고요. 기쁜 소식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전화해도 된다고 하시면 다음부터는 전화로 말씀드릴게요. 건강하세요."
"해도 됨. 반가워^^"
2년쯤 되었나?
사이가 뜸해졌는데 다시 연락이 온 것이다.
*
올해도 나는 몇 개의 전번을 지우고, 또 새로 채우기도 하고, 또 지웠다가 다시 입력하기도 했다.
아마 성격이 지랄 맞아서 사람 꼴을 잘 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례한 것도 싫은데 또 깍듯한 것도 불편하다.
사람을 이용하려 드는 속내도 금방 알아차려서 쉽게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편하지만 선은 지키는
그런 배려 정도를 원하는데 그게 어렵더라고!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 우리의 문 앞에는 각약 귀한 실과가
새것과 묵은 것이 구비하였구나.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둔 것이로구나.
The mandrakes send out their fragrance, and at our door is every delicacy,
both new and old, that I have stored up for you, my lover. <아가서 7;13>
내 삶 속에는 여러 인연들이 있다. 오래된 인연도 있고 새롭게 찾아든 인연도 있고 또 내가 떠나보낸 인연도 있다.
이 모두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께서 보내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언제든 문을 열어놓고 어떤 인연도 가두지 않고 보낼 때는 단호하고 또 흔쾌히, 그리고 맞을 때는 달큰하고 따뜻한 웃음으로 환영할 것이다.
덧,
아니, 문 앞에 쌓아두셨다는데... 아니면 말지.
뭐 겁낼 것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