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실용주의에 대한 토론들은 무성하지만, 서양에서 실용적이란 말은 무지스럽고 때로는 이기적인 단견 short -sight을 의미할 경우가 많다.
이번 생 한 번이 있을 뿐이라는 근시안적 견해야 말로 거대한 속임수요, 현대사회가 황량하고 파괴적인 물질주의에 휩쓸리고 있는 근본 원인이다.
아무도 죽음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죽은 뒤의 생 after-life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는 자체가 이른바 진보된 세계를 만드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고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살기를 바라고 계속 살기를 바란다면 무턱대고 죽으면 끝이라고 주장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죽은 뒤에도 삶이 있을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조차 시도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우리가 스스로 주장하듯이 과연 그렇게 실용적인 인간이라면 우리의 진짜 미래는 어디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는 일을 시작조차 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어쨌거나 우리 가운데 백 살 넘겨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 뒤에 헤아려 말할 수 없는 영원한 무엇이 펼쳐져 있다, 끝없이....
소걀 린포체 <삶과 죽음에 관한 매일묵상>
죽음 까지만 생각하며 사는 것과
죽음 이후도 생각하며 사는 것.
나는 어느 쪽일까
이번 생이 한번 뿐이라면?
이번 생, 후에 또 다른 생이 계속 이어져 있다면?
어차피 둘 다 모른다.
어떤 확신을 가지고 선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선택이 지금의 내 삶에 더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후자 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