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
의심이야말로 우리가 솜씨 있게 다루어야 할 대상이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하여 그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을 나는 별로 보지 못했다.
경제수축 deflation (인플레이션의 반대, 과도한 통화팽창을 수축시키는 방법)과 의심 doubt의 힘을 그토록 숭배하는 문명사회에서 의심 자체의 주장들을 수축시킬 용기를 가진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음은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힌두 스승이 말했듯이 의심의 개들 dogs of doubt을 의심 자체로 향하게 하여 그 냉소의 탈을 벗기고 의심에서 솟아 나오는 온갖 불안과 절망과 낙담 따위의 정체를 폭로시키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렇게만 한다면 의심은 더 이상 장애가 될 수 없고 오히려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문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날 때마다 구도자는 그것을 진리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하는 방편으로 삼아 환영하는 것이다.
소걀린포체<삶과 죽음에 관한 매일묵상46쪽>
우선 의심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둘러보니 의심할 만한 사람이 없기도 하고, 또 굳이 의심까지 해 가며 곁에 둘 만큼 끈적한 인연이 없기도 하다.
예전에는 의심하면서 의심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속앓이를 하던 시절도 있었고
시시콜콜 따지며 내 의심의 정당함을 밝히려 굳이 까발려 확인사살을 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피 말리는 경험들 속에서 알게 된 사실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악화시킬 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 그야말로 파국의 지름길이었다.
이제는 의심스러운 대상이 아니라 의심하고 있는 나를 보려고 한다. 그러니까 '네가 의심스럽다'가 아니라 '내가 너를 의심하고 있구나'로 손가락 방향을 틀려고 하는 것이다.
뭐, 환영까지는 아니고 억지로라도....
그런데 그러다 보면 젖은 빨래가 마르듯 별 일 아니게 가벼워지고 지나가기도 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