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에고란 우리의 참 자아에 대한 바른 지식의 부재 不在다.
그리하여 임시로 얽어놓은 자아의 겉모습들 images에 악착같이 집착하고 그것들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카멜레온 같은 허풍선이 거짓 자아에 매달리는 그것이 바로 에고다.
티베트어로 에고를 '다 크진'이라고 하는데 '자아에 집착함 grasping to a self'을 뜻한다. '나'와 '내 것'이라는, '나와 남'이라는 속임수 개념을 포함하여 그 거짓 구조물을 유지하기 위한 온갖 개념들, 관념들, 욕망들, 행위들에 끊임없이 매달리는 것이다.
그와 같은 집착은 처음부터 헛된 것이고 결국에는 낙심을 가져다줄 뿐이다. 왜냐하면 본디 터무니도 없고 근거도 없고 진실성도 없는 데다가 우리가 잡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본질상 잡을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움켜잡아야만 하고 계속해서 잡고자 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스스로 깊은 중심에서 자신이 본래부터 존재하는 실재가 아님을 알고 있다는 증표다.
바로 이 은밀하고 맥 빠지게 만드는 착각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불안과 두려움이 솟아나는 것이다.
소걀린포체<삶과죽음에 관한 매일묵상47쪽>
나의 숙원사업은 '에고 없애기'이다. 아니 없애기는 그렇고 무시하기다.
알아주면 좋고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하고, 뭐나 되는 척 으스대고 싶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 신경 쓰고 거기에 따라 반응하고 화내고 상처받고... 따위의 이 모든 에고의 수작에서 진심, 그만 놓여나고 싶어서 어느 날 물었다.
나는 정말 이런 내가 없으면 좋겠다고, 어떻게 하면 나 없이 내가 살 수 있는지...
그때 내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이름이 없으면 된다고 하셨다.
이름 없이,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사는 걸 연습해 보라고.
그래서 연습 중인데 얼마나 에고가 고질병처럼 찰떡궁합으로 엮여있는지 아마 평생 연습생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