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동안

by 관지

2월 22일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죽음을 겁내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라고 하는 개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라고 하는 이 물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그것을 지탱시켜 주는 내 이름, 내 이력, 내 부모, 내 가족, 가정, 직업, 친구, 신용카드들.... 의 끝없는 집합에 의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들의 덧없고 잠정적인 버팀목에 우리의 안전을 내어 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릴 때 어디서 '나'의 정체를 찾을 것인가?


우리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모크 터틀과 다를 바 없는 동화나라에서 가상 假想의 정체를 입고 살아간다. 집 짓기의 짜릿함 the thrill of building에 취하여 끝없이 모래 위에 인생이라는 집을 짓는 것이다.


죽음이 모든 환영 幻影을 무너뜨리고 저마다 숨어 있던 정소에서 나오게 할 때까지, 세상은 온갖 놀라운 일들로 우리를 계속해서 설득할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이 가짜 정체보다 더 깊은 실재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면, 죽는 순간까지 죽음을 겁내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소걀린포체 <삶과 죽음에 관한 매일묵상 59쪽>




어제 섬에 들어가려고 팽목에 나갔다가 배가 가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 돌아왔다. 오늘은 장날, 바람도 쐴 겸 장에 나가서 구석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밥도 먹고 보리와 냉이, 매생이를 사 왔다. 어느새 입맛이 봄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돌아보니 이 모두 살려고 하는 짓들이었고 여기에 죽음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나는 장에 갈 때나 장터에서 시골할머니와 흥정을 할 때나, 집에 돌아올 때까지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명절에 오가다가 교통사고를 서너 번은 봤는데도 다 남의 일이었을 뿐, 나와는 상관없었다. 이렇게 나는 매 순간 죽음을 잊고 살고 있고 죽음에 대한 생각이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가끔 생각한다. 이 분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셨나, 하다가 이분들이 살아 계신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그냥 마음속, 생각 속 어딘가에 있는 소설 속 이야기 같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그분들의 삶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름 80, 90년 동안을 열심히 사셨는데 지금은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저장이 되어있을 뿐이니 말이다. 이렇게 삶은 결국 죽음에 삼켜지고 사라지는 데.... 우리의 몫은 사는 동안만 인 걸까.


덕분에 자주는 아니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한다. 그러면 지킬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행히 그 순간만큼은, 그냥 그 자체로 이유 없이, 이유 없는 감사와 소중함이 밀려온다.

죽음이 삶에게, 존재에 대한 너그러움을 주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