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면, 없어도...

by 관지

2월 23일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이 저렇게 보이는 까닭은 수많은 생을 거치는 동안 우리 안팎에 있는 것들을 그렇게 보아왔고 그 겹쳐진 경험들이 저것은 저렇게 존재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굳혀주었기 때문이다.


마음 수련의 길을 따라 걸을수록 우리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계와 물질과 자기 자신에 대한 낡은 개념들이 모두 해체되어 사라지면서, '하늘의 heavenly' 관점이라 할까 의식이라 할까. 전혀 새로운 개념의 장場이 펼쳐지는 것이다. 월리엄 블레이크가 말했듯이.


인식의 문들이 깨끗하게 정화되면

모든 것이... 무한한 제 모습을 드러내리라.


소걀린포체 <삶과 죽음에 관한 매일묵상 60쪽>



열흘 만에 섬에 들어왔다. 그리고 드디어 보일러 통에 기름을 넣었다. 기름이 떨어진 지 석 달만이다.


기분이 좋았다.

기름을 넣어서 좋은 게 아니라 기름이 없이도 겨울을 지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좋은 것이다.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그 상황을 막상 지나고 보니, 별 일도 아니었고, 없어도 살만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너 없으면 안 돼!'라는

나의 고정관념에게,

'아니, 너 없어도 돼!'라고 말할 수 있어서 좋다.


올 겨울 쉽게 와 주지 않았던 기름 실은 배는 불친절한 것이 아니라, 없어도 지내는 법을 알려준 고마운 스승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