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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 봄

패들턴

by 관지

내가 좋아하는 영화.

앞에 '가장'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붙일 수도 있는데

친구는 무슨 이런 심심하고

재미없는 영화를....이라고 했다.^^;


이 영화는

두 남자의 우정과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면,

죽어가는 사람, 마이클과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 앤디의 이야기.


그런데

심각하지도

신파도 아니어서 좋다.


삶은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며

또 그렇게 번잡하지도

많은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고맙다.


각자 혼자 사는 남자 둘.

그들은 공동주택 위아래층에 살면서

함께 운동도 하고

저녁도 같이 만들어 먹으며

-그래봤자 연기 풀풀 나게 태운 피자지만-

매일 같은 영화를 본다.


날마다 같은 날, 같은 것들의 반복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익숙해서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잠자는 것과

일터에 나갈 때만 따로 있을 뿐

이들은 함께 같은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 마이클이 말기암 선고를 받고

그가 존엄사를 택하기로 하면서

둘 사이의 안타까운 심경들이 담담하게 드러난다.



'나 결혼을 한번 했는데

나한테는 그게 맞지가 않더라고.

그래서 그만뒀어.'


사회나

가족이나 이웃이 요구하는 잣대에

나를 맞추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이 나에게 맞고, 맞지 않는지를

알아차리는 사람.

남들의 이목 때문에 자기 불편을 감수하지 않고

자기의 편안함을 위해 나아갔던 사람.


아마 그렇게 살았기에 죽음 앞에서도

그는 자기다움을 선택하고

자기 결정권을 갖고 실행할 수 있었으리라.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고 경험하는 것들은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나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주는 것.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던가.


자본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다.

사람, 돈, 섹스, 성공, 명예 등이 기필코

있어야만 행복하고

이런 게 많을수록 좋다고 자꾸 세뇌를 하지만

그런들....


이런 게 하나도 없어도

그들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오히려 없어서 여유 있는 자족의 기품이 느껴졌다.


죽음의 자리에

함께 있어 줄 이웃 하나,

친구 하나면 족한 인생과


그런 친구 하나 따뜻하게 배웅해 주고

그 빈자리에

또 이웃 하나 만들어 가는 인생.


영화는

이 두 인생을

약간 심드렁하게 보여주는데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마이클을 보내고 난 뒤에

남겨진 '앤디가 달라졌어요'는

좀 의미심장하다.


줄곧 걸어 다니고

동료가 말만 걸어도 기겁을 하더니

마이클이 남겨준 차를 운전하고

이사 온 집을 기웃거리며

먼저 아이에게 다가가

패들턴을 알려주는 장면은 뭐랄까


떠나도 여전히 남아서

우리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관계의 생명력, 신비를 보여준다.


미국영화가 아닌 것 같은

미국영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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