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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대시며

by 관지

새벽에 누가복음 말씀을 읽는데

문둥병자의 저항정신이 가슴을 파고들다.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몸에 문둥병 걸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 누가 5;12

그 당시 문둥병이라면 천형이고 불치라는 생각이 지배했을 텐데 더구나 마을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금지였는데 그는 이 모두를 거부하고 있다. 그야말로 문둥병 걸린 온몸으로.


그저 낫고 싶고 사람들과 어울려 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원을 붙들고 있는 사람. 그렇지만 그는 그동안 마을에서 몇 번이나 쫓겨났을까. 얼마나 눈치를 받고 냉대를 받고 멸시를 받았을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며 자기를 구해줄 누군가를 기다렸고 그리고 만났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문둥병이 곧 떠나니라 "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그 손이 얼마나 다정하고 따뜻했을지, 위로가 묻어 있었을지 상상이 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주님이 찾고 기다리는 사람이기에.


나는 이 사람처럼 간절함이 있을까

나는 이 사람처럼 포기하지 않고 버텨낼 근성이 있나

주변의 시선이나 사회의 기준에 나를 내맡기지않고 나 자신의 원을 사랑하고 지켜낼 의지가 과연 있을까


우리는 이래서 안돼 라는 조건의 마법에 걸려있다.

돈이 없어서

배운 게 없어서

가진 게 없어서

인맥이 없어서

학연이 없어서

기회가 없어서

등등.


그러나 그는 이 안돼의 주술에 자기를 맡기지 않았다.

"절대 안 될 걸"이라는 부정의 팻말에 기죽지도 않고 그래도 해 볼 거야,

나는 회복될 수 있고 새로운 날들을 맞게 될 거라는 막연하고 불안한 희망에 목을 걸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주님과 가장 궁합이 맞는 사람은 이런 사람일 것이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

세상이 주입하고 사회가 강요하는 모든 차별과 편견을 끝내 거부하고 저항하는 사람들,

자기 안의 생명의 불꽃을 보듬고 지켜내는 사람들 말이다.


지금 한남동 관저 앞에는 눈보라에도 꿈쩍 않고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는 깨끗하고 정의로운 나라에서 평화롭게,

사람답게 살고 싶다"라고.


그 모든 악행과 법을 말하면서 법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향해 끝끝내 법을 지키며 그저 앉아있다.

그래서 무섭고 그래서 안심이 되고 그래서 희망이고 그래서 눈물겹다.



....


주님

이 겨울 한 복판에 문둥병처럼 곳곳이 썩어있는 이 나라를

바로잡아 달라는 함성을 듣고 계시지요.


부디 오셔서 만져주시고 깨끗하게 고쳐주세요.

우리는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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