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하고
함축적이어서 약간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 영화다.
이야기는 판사인 피오나와
그 남편, 그리고 한 소년 앤디
이 세 사람을 축으로 이루어진다.
주제는 우리가 믿었던 가까운 사람에게
믿음을 잃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이다.
내가 무얼 어떻게 하든
그러니까 11개월 동안 섹스를 하지 않아도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일에만 파묻혀 있어도
무조건 이해해 줄 줄 알았던 남편에 대한 믿음이
어느 날 흔들려 버린 피오나.
그리고
부모는 당연히 내 생명을 지켜줄 줄 알았는데
나를 신앙의 볼모로 잡고
그 뒤에 숨어있었다는 뒤늦은 깨달음으로
부모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소년.
이 나로부터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믿음을 상실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물음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여호와 증인의
신앙관을 다루려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고
다만 수혈 거부라는 종교적 신념을 통해
믿음의 허세랄까, 체면이랄까, 허영이랄까
뭐 그런 종교인의 민낯이 드러나기는 했다.
신앙인을 부모로 둔 자녀에게
부모의 신앙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주시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고.
해답이라는 게 있을까만
예이츠의 시를 자주 드러내는 걸 보면
아마 인생을 천천히, 느긋하게, 즐기고,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사실 믿음을 잃을 일은 없을 거라는
그런 메시지가 아닐지.
엉뚱하게도
그 소년을 만나는 피오나에게서
요즘 보기 드문 어른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아, 이게 어른이지.
어른은 이래야지." 하면서
고개 끄덕끄덕.
소재가 다소 무겁거나 자극적일 수 있는데
인생에 찾아온 문제, 혹은 위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나는 믿음이나 감정에 치우치는 편인데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그보다는 합리적인 생각이 우리를 지켜주는
무기일 수 있음을 보게 해 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