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내일 섬 나가요"
섬에 들어온 지 한 달 반쯤 지나서 본가에 다녀오려고 마을회관에 들른 김에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할매 두 분이 티브이에 꽂혀서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픽 웃으며
"누구 맘대로?" 하신다.
나는 즉시 정정해서 다시 보고했다.
"내일 혹시 배가 들어오면 나가볼까 합니다."
"그라~~~ 제, "
그리고 우리는 깔깔 웃었다. 그동안 먹은 짬밥이 있어 얼른 말귀를 알아들은 것이다.
육지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 섬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네 외출 계획은 일단 배가 허락을 해주어야 가능하고
또 그 위에는 누구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날씨가 버티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 분들은 적어도 내 맘대로만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별반 받지도 않고.
어느 날엔가는, 별로 말 수도 없고 그날이 매양 그날인 것처럼 표정 변화가 없으신 어르신에게서
뭔가 들뜬 분위기가 감지되어 물었다.
"뭔 일 있으세요?"
"아니 없어라."
"에이~ 아닌디..."
어르신은 삐그시 웃으시면서 내일 조도에 나가신다고 했다.
"나가서 이발이나 하고 올라고라."
우리 섬에서 조도는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뱃길이다.
직접 배를 운전해서 가면 당일치기가 가능하지만,
우리 섬을 오가는 여객선을 타면 이틀이 걸리니 사실 이웃집 마실 개념은 아니다.
그런데 다음날, 산책길에 만나서 이발은 하고 오셨냐고 여쭈었더니 아니라고 하셨다.
"왜요?"
"이발을 못 하겠답니다."
"아니 왜요?"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엥?"
나는 어이가 없어서 저절로 톤이 높아졌다.
"약속 안 하고 가셨어요?"
"했지라~"
그런데도 표정은 무덤덤에 천하태평,
분명 바람을 맞고 온 건 맞는데 마치 바람 쐬고 온 분위기였으니 ....
"와 쎄다. 그래, 무신 손님이 왕이여, 주인이 왕이제."하고
속으로만 감탄을 했다.
어제 술을 진창 마셔서 오늘은 이발 못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주인이나
또 그러냐고, 그럼 다음에 오겠다고 돌아 나온 어르신이나
아무렇지 않게, 그럴 수 있는 사이가
아직 도시빨인 나로서는 뭔가 어색하면서도 신선했다.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아도
날을 세우지 않고 적당히 그런 갑다고 받아주는 이 관계의 널널함이 부러웠다.
덧,
혹시 사람이 그렇게 물러터져서야, 하실 수도 있겠는데...
그런다고 이 어르신이 이발을 못 해서 장발이 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