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장 12절
어느 날, 문득 궁금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대접하라"는데
그럼 대접을 받고자 대접을 했는데
상대가 대접을 안 해주면 그때는 어떻게 하지?
거의 대부분 서운하고 상처를 받는 사람들은
대접을 하고 대접은 못 받기 때문 아닌가?
그래서 성경을 찾아보니 그럴 때는 어떻게 하라는 가르침이 안 보였다. (내 눈에는...)
그래서 왜 없지? 생각하다가 혼자 결론을 냈다.
그럴 때는 "너 알아서 하라"는가 보다고.
예전에는 대접을 받고 싶어서 대접을 한다는 게
왠지 치사하고 계산적인 것 같아서
아니 관계를 그런 식으로 거래하냐고
혼자 순수 고고한 척을 했는데... 겪어보니 사실 이게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주님은 이런 솔직한 욕구를 비난하신 적이 없다. 다만 아니 그런 척, 위선을 책망하셨지.
그래서 혼자 추운데 서서 위선이나 가식 떨지 말고 잘 대접하고 대접받으며 살자. 고 나름 선을 정했다.
그러고 나니 사는 게 세상 단순해졌다.
나한테 하는 대로 너한테 해 주면 되니까.
또 더 잘해주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고.
나한테 잘 못해도 계속 잘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참, 고마운 인연이네 하면서
마음 가는 대로 해 주면 된다.
그냥 농담처럼 하던
'너 하는 것 봐서...'가 알고 보니 꽤 솔직하고 심오하더라고.
그런데 대접을 받기만 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머릿속을 뒤져보니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생각났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참 잘했다.
부탁을 한 번도 거절해 본 적 없고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먼저, 알아서 도와주었다.
정말 아까울 것 없이 최선을 다해서.
그런데 룻은 어떠하셨나
어느 날 아브라함이 말했다.
"이제 식구도 불고 가축도 많아져서 함께 살기는 어렵구나. 네 눈에 좋은 곳을 먼저 골라서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
(창세기 13장1-13)
롯은 제 눈에 보기 좋은 땅을 골라 이사를 나갔다. 그 땅이 소돔과 고모라였고 결국 롯은 그곳에서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그는 딸들의 씨받이 도구가 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만약에 말이다.
"아니에요. 삼촌이 먼저 선택하세요. 저는 암만 더 젊으니 삼촌이 좌하시면 제가 우할게요." 했더라면....
하지만 받기만 하던 인간이 그게 하루아침에 될까. 그러니까 대접하는 것도 습으로 몸에 배어야 한다. 나를 위해, 내 자식들을 위해.
왜냐면 대접 따위 받지 못해도 늘 대접했던 아브라함이 결국 복은 다 받더라고... 그 후손들까지.
그래서....
나는 혹시 대접한 대로 못 받아도 곱씹거나 씩씩대거나 서운해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하늘이 알아서 대접해 줄테니 그걸로 퉁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