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그 자체를 분명히 드러낸 예수 탐구는 매우 값비싼 그러나 필요한 대가를 수반하는데, 그 대가는 자신을 폭로하기 (self-expisure)
자신을 죽이기 (self-mortification 고행, 굴욕, 수치) 그리고 개인적인 변혁(personal transformation)이다.
결국 "예수" "탐구" 그리고 "성서" 등은 단지 연구를 위한 인공제조물이거나 혹은 조사를 위한 이름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위대한 종교적 욕구들과 원형적인 힘들이며, 그것들은 단지 연구해야 할 " 저 밖에" 본문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기 안에" 자신 속에 있어서 이들 실재들에 의해서 매혹되거나, 반발하거나, 운행되거나 상처를 받거나 그리고 아마 치유되기도 한다.
월터 윙크의 <참사람>34쪽
나 자체로서 중요한 두 가지를 꼽으라면 예수와 글쓰기이다. 사실 나는 내 삶에 영향을 미친 예수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정작 시작도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러자면 자기 노출이 되어야 하는데 보여주고 싶은 나와 감추고 싶은 내가 사이좋게 수작질을 하며 방해를 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내가 죽고 예수가 사는, 그 문 앞에서 나는 계속 얼쩡대며 머뭇거리고만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사는데
그게 우리의 필연적 운명인데... 나는 자꾸 피하며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개인적인 변혁, 즉 부활의 삶을 살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