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부터 여기저기서 날아온 문자 소리에 눈을 떴다.
온 세상이 하얗다고.
창문을 열어보니 하늘 가득 눈이 내리고 있다.
문득 떠오는 한 구절.
‘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세상에 눈이 내린다면
봄은 결코 오지 않을 거예요.'
거실에서 바라본 풍경은 환상적이다.
온통 하얀빛으로 수놓아진 세상.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오래토록 바라보다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창틀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니
오랜만에 눈사람이 만들고 싶어진 것이다.
얼마만인가..
춥고 손 시리고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아
적당한 눈은 그냥 뽀드득 밟아주는 것으로 만족했었는데.
창틀에 쌓인 눈으로 아주 자그마한 눈사람을 만들었다.
두 손으로 조물조물 아래 위 동그랗게 만들고
너무 쪼맨해서 눈은 매직으로 그려 넣었다.
벤자민 잎사귀 하나 선물로 주고
눈가루 머리에 뿌려주니 근사한 친구가 탄생했다.
'추운데 나 여기 있어야 돼? ’ +_ +;
뭐 그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응. 거기가 명당이야! ’
나는 이름도 눈콩이로 지어주고
수시로 왔다갔다 하면서 놀아주고 있는 중이다.
지상 어느 곳에선가 피어 오르는 연기가
묘한 각도로 잡혀 눈콩이는 밖에 혼자 남겨진 것에
삐져서 열 폴폴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나는 심심하지 말라고 대낮부터 트리에 불도 켜주고
음악도 틀어주다 추워서 문은 얼른 닫았다. ㅡㅡ;
안방에 누워 있다, 서재에서 책보다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얼굴에 뽀뽀를 해줬더니 눈콩이는 못마땅 했는지
살짝 심통이 난 표정이 되어 버렸다. ㅜ.ㅡ
귀여워서 해주는 가벼운 입맞춤이
그 작디 작은 눈콩이에게는 치명적 위협.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해줘야 한다는 진리..
조금씩 날이 저물고 있다.
가는녘에 언뜻 햇살이 비추인다.
눈콩이에게도 환한 빛살이 퍼진다.
찬란한 아름다움 보여 줄 수 있어 기쁘지만
어느새 아침보다 작아진 눈콩이.
포슴하게 입었던 눈가루가 없어지고
바람에 날려 잎새도 없어져 버렸다.
다시 눈가루로 코트도 입혀 주고
발 밑에 잎새 한잎도 깔아 주었다. 친구하라고.
모자를 좀 더 높고 포슴하게 만들어 주니
꼭 왕관을 쓴 겨울날의 어린 왕자 같다. ^^*
< 버티컬 두 번째 사이에 있는 눈콩이 >
눈콩이 혼자 어둔 밤은 무서울까봐
트리의 불은 밤새 밝혀 둘거다.
사랑하면서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참 슬픈 것이다. ㅜㅜ 눈콩이는 내 마음을 아는지 나를 달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괜찮아, 난 여기 좋아. 멋진 노을도,
그리고 차가운 바람결도 모두.'
마음 아파하는 나를 애써 위로해 주려는 듯
눈콩이는 좀 더 내게 가까이 고개를 숙이며
그 까맣고 동그란 눈으로 빤히 바라본다.
거리에 하나둘 불빛이 깨어나고
사방은 어둠이 사위어 가고 있다.
' 걱정하지마. 무섭지 않아.'
조그만 눈콩이는 여전히 예쁜 배려로 나를 달래주고 있다. 차가움으로 만들어졌지만 한없이 따뜻한 눈콩이.
그의 온기가 심장에 닿아 자꾸 가슴이 먹먹해 진다.
마치 먼 곳을 응시하는 듯..
이별을 예감하는지 눈빛이 슬퍼 보인다.
오늘은 마음이 있어도 이루어 주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무력한 아픔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하얀 인연.
아주 작은 인연이지만 이렇게 눈콩이와 난 친구가 되었다. 아주 짧은 순간 밖에 곁에 머물지 못하겠지만
깊이 사랑하는,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아갈 하나가 생긴 것이다.
오늘은 아주 많은 별님들이 하늘에 흩뿌려지기를.
까만밤 밝히는 별빛보며
눈콩아, 행복하렴.
눈콩아, 잘자.
★
* musings ㅡ Kevin Kern(10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