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에서 찬양나눔을 하며 <내 맘에 오시는 주>
피정을 아시나요?
리트릿(Retreat)이라고도 하는 피정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챙기는 시간을 말해요.
가톨릭에서는 이 피정을 통해 본당을 벗어난 고요한 공간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갖기도 해요.
제가 간 피정에서는 좋아하는 찬양곡(성가곡)을 중심으로, 왜 이 곡이 나에게 특별한지 말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때의 나눔을 공개합니다.
「내 맘에 오시는 주」 강희만 작사∙작곡
내가 사막 가운데 홀로 있을 때
내가 광야 속에서 길을 잃어도
나의 슬픈 영혼이 다시 기쁨을 얻고
내가 평화 가운데 있는 이유는
우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 마음과 주님 생각을 간직하면서 살지
우리 마음속 가득 나의 마음속 가득
주님의 평화 넘치네
내 맘에, 내 맘에 오시는 주
당신의 평화와 사랑을 내게 부어주시고
무너진 나의 집 나의 마음
새로운 힘으로 살게 하시네
제가 찬양 나눔으로 준비한 곡은 <내 맘에 오시는 주>입니다.
이 노래는 성서모임 O지구 모임에서 처음 들었는데, 가사가 제 마음에 쏙 들어왔습니다. 처음부터 ‘사막’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막을 막막한 상황으로 생각하고 비유적인 느낌으로 이 노래를 듣겠지만, 저는 리얼 ‘사막’으로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자주 들었던 이승환의 <붉은 낙타>에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나의 20대, 객기도 한 번쯤 부려보며 살았어야 했는데 아까워'
이 노래를 들으면서 사막에 대한 로망이 커졌었어요. 그래서 언젠가 '사막을 가보고 싶다'라는 말을 많이 하고 다녔고, 그걸 계획에 옮겼습니다. 사막은 한국에는 없으니까 해외여행으로 이어졌고요.
그해 휴가로 아프리카 나미브 사막을 가기로 했어요. 일상이 단조로웠어서 자극적인 여행지를 바라보고 있는 게 하루 한 달에 굉장한 활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여행을 앞둔 상황이, 제게 보통 떨리는 게 아니었어요. 가기 전부터 '심장이 나댄다' 싶을 정도로 진정이 안 됐어요. 누가 '아프리카 여행'에 대해서 물어보기만 해도 떨리고, 인천공항에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으러 가도 떨리고 해서, 두근거림 때문에 여행 가기 전에 좋아하는 커피도 잘 마시지 못할 정도였어요.
사막이 엄청나게 궁금한 동시에 아프리카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했던 것 같아요. 호기심과 겁의 싱크가 맞지 않았던 거죠.
그 당시 제게 있었던 겁의 종류 이랬습니다.
길 가다 자동차가 사막에 멈추는 것
영화 <꾸빼 씨의 행복여행>에서처럼 아프리카에서 납치당하는 것
차 문을 열었는데 맹수들 튀어나와서 공격당하는 것
어두움 그 자체
휴가 기간으로 왔는데 시간에 시달리는 것
렌터카로 직접 횡단하는데 한국에 못 돌아갈까 봐 걱정된 것
빅토리아 폭포 111M에서 번지점프 하는 것
스카이다이빙 하기 등등.
이것보다 더 많았어요.
그중에서 한 사건이 있었어요. 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 쪽으로 밤이 다 돼서야 이동할 때였어요. 사막의 밤은, 우리가 자동차 라이트를 켜지 않으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새까맘이 있거든요. 그 어두움 가운데서 갑자기 길이 막힌 거예요. 이틀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경비원이 있어서 팁 주고 통과했어요. 그런데 여기는 사파리 투어 하는 국립공원 가던 길이어서 새까만 어둠 속에서 동물이 튀어나올 것 같았어요.
그래도 동행들이 용기를 내서 차 바깥에 나가 길을 알아보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사람이 없고 헤쳐나갈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때 한 오빠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저 멀리서 불빛이 하나 보였어요. 그 빛은 가까워지자 두 개로 보였고, 더 가까워지자 큰 트럭임이 보였어요.
저는 또 그 사람들이 무서웠게요, 안 무서웠게요?
무서웠어요!
그래서 차에서 안 내리고 있는데 동행들이 나가서 그분들한테 도와달라고 했어요. 다행히 그분들은 너무 좋은 분들이었고, 덕분에 문이 열리고 숙소도 찾을 수 있게 됐어요.
모든 상황이 해결되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오빠가 "간증거리 넘친다. 와, 어떻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하자마자 도와줄 사람이 나타나냐"라고 했고, 제 친구는 "이거는 진짜 동행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둘 다 크리스천이었거든요. 그때 저도 가뭇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거는 행운이 아니라 진짜 누가 우릴 도와주는 거일 수도 있겠다'
그러다 친구한테 "너는 이 상황이 안 무서워?"라고 물었는데 그 친구가 그랬어요.
"나는 그분과 함께 하니까!"
갑자기 소외감이 확 드는 거예요. 혼자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때 속으로 말했는지, 친구한테 직접 말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분명 이런 생각은 들었어요.
'그럼 나는 뭐냐? 나는 왜 혼자 다니냐? 내가 더 불안한데 난 왜 혼자 다녀?'
잠시 후 친구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분은 네 머리카락까지 세고 계셔"
그렇게 대화가 끝났는데 그때부터 '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게 제 마음속에 큰 의문으로 생겼어요. 뭔가 있으니까 저렇게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주는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아프리카는 정말 땅이 넓은데, 제가 본 사막은 서울에서 전라도 정도까지 한 시야로 보이는 그런 넓음이었어요. 그럼 여기는 맑은데 저 멀리서 번개가 치고, 여기는 비가 떨어지는데 저 멀리선 하늘이 맑으니까 맑은 날 같기도 했어요. 누가 요물조물 만지고 있나 하는 느낌도 들었어요. 아마 강남역 같이 국지적인 하늘에서는 느끼지 못할 감상이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밤에 차로 달릴 때가 생각이 나요. 별은 제 안에 담지 못해서 한숨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데, 동시에 땅은 어두워서 무척 무서웠어요. 인터넷도 안되고 부모님이랑 언니랑 연락도 안되고.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제가 불안할 때 의지했던 게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럼 신은 한국에도 있고 아프리카에도 있으니까, 저도 신을 알게 되면 마음이 진정될 수 있을까 궁금해졌어요. 아프리카는 강해지려고 갔는데 저의 약한 모습만 엄청 발견하고 왔어요.
이 여행이 끝난 후 일상으로 돌아와 신에 대해서 엄청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가 정말 많이 나온다는 거, 사막이 나오고 이집트가 나온다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을지 몰랐거든요. 이 전화번호부 같은 책에는 현대에 쓰이지도 않는 어려운 단어랑 지명만 엄청 나오는 줄 알았어요.
근데 '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로 생각이 기울 때쯤 원래 제가 갖고 있는 것들을 많이 빼앗겼어요, 아무것도 없는 사막처럼. 그래서 성당에서 신앙적인 진도, 세례, 창세기 연수, 탈출기 연수 등등은 쭉쭉 나갔지만, 세상에서 저는 멈춰있었거든요. 그 기간은 자꾸 제 안에 있는 걸 토하고 게워내는 과정이었어요. 그런 토악질이 저를 새롭게 만들더군요. 교만했던 것, 용서하지 못했던 것, 자주 울적해했던 것, 슬픈 음악을 좋아했던 것, 잘 말하지 않으려 했던 것,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 잘 만족하지 못해 감사하면서도 기쁨은 없었던 것, 그리고 나 자신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다른 사람 눈에 들려고 안달복달한 것에서요.
저는 저 자신만 생각하면 낙관적인 부분을 잘 바라보지 못했지만 하느님을 통해 저를 봤을 땐 꽤 희망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하느님'이란 개념을 이용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이게 제가 출간은 못했지만 그동안 책으로 남긴 내용이고, 저는 바로 어제 제가 너무 원했던 직무로 취업을 하게 되었어요. 기다리는 동안 너무 답답했고, 게을러지는 것에 대해 힘들었지만 예전처럼 너무 울적하게 지내진 않은 것 같아요. 하느님이 저의 길을 다 막아서고, 결국 선으로 이끄실 거라 믿고 기다렸거든요. 이렇게 세계관이 바뀐 게 신기하네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서 시원하면서도 제가 너무 드러나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성당에 나와서 사람들이랑 계속 얘기하고 고립돼있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저는 다음 주부터 집에서 탈출합니다. 이제부터 제가 하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괄호 열고 하느님 괄호 닫고 감사합니다'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어쩌면 복음이라는 건 '내가 널 선택했고 사랑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의 무한반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좋은 노래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고 커버되면 다시 음원 차트를 점령하고 사랑받듯이, 복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상황과 방법으로 내 마음에 와닿게 반복되는 것, 오늘 같은 시간으로 새롭게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거요.
그래서 제가 선택한 이 노래도 여러분 마음속에 새롭게 다가오고, 새롭게 음미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힘드신 분들이 있다면 같이 힘냈으면 좋겠고, <내 마음에 오시는 주> 시작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내 맘에 오시는 주」 강희만 작사∙작곡
내가 사막 가운데 홀로 있을 때
내가 광야 속에서 길을 잃어도
나의 슬픈 영혼이 다시 기쁨을 얻고
내가 평화 가운데 있는 이유는
우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 마음과 주님 생각을 간직하면서 살지
우리 마음속 가득 나의 마음속 가득
주님의 평화 넘치네
내 맘에, 내 맘에 오시는 주
당신의 평화와 사랑을 내게 부어주시고
무너진 나의 집 나의 마음
새로운 힘으로 살게 하시네
남이 만든 노래인데 딱 내 얘기처럼 들리는 건, 우리가 사는 삶이 각자 특별하기도 하지만 보편적이기도 하기 때문이겠지요. <내 마음에 오시는 주>라는 곡은 제 아프리카 여행 전후를 떠오르게 만드는 노래예요. 이 노래를 연주하기 전 함께 피정을 갔던 청년들이 몰입감 있게 제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나눔은 제 아프리카 여행기 <우분투,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의 개요이기도 해요.
그 이야기를 다시 한번 소개하고 싶습니다.
* arazuda의 글, 유튜브로 들어보세요!
브런치로 오디오/팟캐스트도 만들고 있어요.
AI가 아닌 제 목소리로 여러분과 수다를 떨고 싶어요.
이 시도를 응원하고 귀 기울여 주신다면
오늘도 계속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