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근 뮤지컬 <레드북 Red Book>을 보러 갔어요.
한국 창작 뮤지컬이면서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시대 배경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선명하게 해냅니다.
침묵을 강요받던 시대에 ‘나는 쓰겠다’는 선언!
이는 저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주었어요.
<레드북>에 참여한 송은도 예술감독님은 이런 말을 남겼더군요.
<레드북>이 끝난 자리에서,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안나의 외침이
관객 여러분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자리 잡기를 희망합니다.
감독님의 희망사항은 관객인 제게 잘 도착한 것 같습니다.
안나의 외침처럼 글을 써봤습니다.
나를 작가라 불러주는 이들이 있다.
아마도 정말 작가가 되기를 응원해서 별칭처럼 불러주는 것 같다.
출간한 책은 없지만
책을 만들어 본 경험이 포트폴리오가 돼서
IT회사에서는 콘텐츠 마케터나 콘텐츠 라이터로 일했다.
디지털 시대에 에디터를 맛본 셈이다.
(* UX Writer도 너무나 해보고 싶은 직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말했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은
이미 시인이 되어서가 아니라
매번 시인이 되기 위해서다
'시인'을 '작가'로 바꿔도 의미는 같을 것이다.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은
이미 작가가 되어서가 아니라
매번 작가가 되기 위해서다
브런치에서는
삶에서 느낀 정수들을 건져 올려
글로 모아두는 일을 하고 있으니, 나도
매번 작가가 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쇄를 찍은 작가들도, 쇄를 찍지 않은 작가들도
쓰고 있을 때라야 ‘작가’가 된다.
자기 자신한테 성실을 인정받는 건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지만
계속하는 데 힘이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표현의 욕구를 갖고 있다.
사진, 영상, 글, 그림, 음악, 요리, 댄스, 패션 등등은
때로 그 도구가 된다.
자기 인생을 살아가다 궁극으로 모이는 것들은
삐죽삐죽 자아를 비집고 나올 테니
갖고 있는 도구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나에게는 사진, 영상, 글, 음악 등이 그 표현 수단이었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많은 것들이 ‘글’로 수렴하게 된 것 같다.
꽤 먼 직장을 다니며 녹초가 됐고 그럴 때면
각 잡고 편집해서 영상을 배포할 체력이 남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두드러지게 했던 행동은
핸드폰 메모장에 내 생각을 치열하게 기록하는 것이었다.
일기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그 시기에 가졌던 생각의 파편들을 인화하듯 남겨두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메모가 쌓이던 때는 갑자기 책을 많이 읽기 된 시기이기도 하다.
멘토가 필요한데 주변에 많지 않고
공감받고 싶은데 아무렇게나 솔직할 수 없을 때는 책을 찾았다.
무궁무진해지고 싶던 시절, 삶이 평범해질까 봐 활자 속에서 돌파구를 모색했다.
일의 의미, 인생의 목적 등 거창한 것들을 찾느라 텅 비었던 가슴도, 문장들로 메웠다.
때문에 머릿속엔 광고 카피처럼, 청춘의 문장들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어떤 때는, 이 생각을 정리하지 않은 채로는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없을 정도로 ‘인상’이 넘칠 때도 있었다.
유럽여행을 다녀왔을 때였다.
내게는 첫 해외여행이었으므로 모든 것이 신기했고 자극적이었다. 마음이 일렁거렸다.
너무나 많았던 사진과 영상, 메모해 둔 감상...
한동안 회사를 그만두고 이 유럽여행기를 정리하며 지냈고 결국 책 한 권을 만들었다.
그게 끝일 줄 알았는데, 국내 내일로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기록은 계속 됐다.
이 시절에는 정말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해보기도 했다.
책을 만들면서 목차를 쓰는 것, 제목 카피라이팅, 내용 구성, 맛깔스러운 표현, 사진 편집, 맞춤법, 홍보 방법 등을 스스로 배웠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만의 필체가 생겼다. 이후엔 글 프레임이 생겼다.
하여 다시 회사로 돌아갔을 때도 업무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편했고
편지, 아티클, 축사, SNS 글… 어떤 유형의 글을 써도
나만의 스타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알 수 있다.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라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글을 잘 쓰게 된다는 것을.
그 많던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글이 예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좋은 대화라고 여기는 것 중 하나는,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생각이 정리될 때이다.
최근 그런 대화를 했다.
분야가 전혀 다른 지인과 뮤지컬 <레드북>을 보고 난 후 식사를 했다.
<레드북>에서는 침묵을 강요받던 시대에 "나는 쓰겠다!"는 안나의 외침이 반복된다.
극의 주제처럼 자연스레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흘렀고
그분은 내게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냐"며 책을 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의 특징 중 ‘글’은 빠지지 않는 소재였기에
내게 그런 아이디어를 건네는 건 조금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몇 년 전에는 책을 내는 것이 아주 꿈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글 쓰는 것을 좋아하잖아요?"라는 당위가 섞인 말에
바로 "그렇다"는 대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글이 술술 써져야 하는데
문장에 진심이 될수록 글쓰기가 매번 어렵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여러 차례 깔끔하게 대답을 못하다가 생각났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기보다는
글을 잘 다듬어진 상태로 완결한 후, 그 글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한다.
전문성이 있거나 공적인 글을 쓸 때는
글을 기획하고 내용을 채우며 늘 부담을 느끼지만
글을 발행한 당일엔 옆 사람이 눈치챌 정도로 기분 좋아한다.
즐거움의 감각이 살아난다.
그 글이 널리 퍼져가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언제나 기쁘다.
내가 만족한 글을 안목 있는 상대가 알아봐 주는 일은, 눌러둔 인정 욕구를 부활하게 한다.
“이 맛에 글 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글은 글맛을 살리다가 살맛 난다는 생각도 한다.
글 안에서는 감정적인 언어를 배제해 점잖고 담백한 문체를 유지하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이 차곡차곡 차오르도록 유도한다.
상대의 감정 변화를 지켜보다 마침내 의도한 감정에 도달한 것을 알았을 때
“이런 글을 쓰려고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나를 오래 혼자 있게 만들고
작업하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완벽주의도 득실득실 올라오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쓰기 이후에 오는 부수적인 것들.
사람들과 글을 통해 소통하는 것을 좋아한다.
글 안에서는 나의 지성과 경험,
레이어가 쌓인 생각과 한 사람에 대한 애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글쓰기 이후에 오는 부수적인 것들.
사람들과 글을 통해 소통하는 것을 좋아한다.
‘느끼는 것은 너무 많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너무 적다’
공적인 관계나 단체 생활에서 자주 느꼈던 점이다.
말주변이 화려하지 않아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말문이 막힐 때면 스스로도 답답했다.
마치 이방인이 된 것 같았다.
외국에 나가면 한 번씩 오는 소통의 답답함.
제 아무리 똑똑해도 자신의 생각을 말로 다 쏟아내지 못하는 어려움.
조심해야 할 것이 많고 편한 자리가 아닐 땐 특히 그랬다.
그럼 시간이 지나 글로 풀어냈다.
글로 정리한 생각을 보여주곤
“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누구라도 알아주길 바랐다.
다행히도 글로 이야기했을 땐 전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내 진심의 윤곽이 그제야 드러나는 것 같았다.
이를 알기에 지치지 않았다, 글을 다듬는 과정이 말이다.
맞춤법, 호흡, 운율이나 리듬감, 주술 관계,
같은 뜻 다른 어휘의 탐색은 계속해도 괜찮았다.
오히려 다듬을수록 정교해지는 글에 희열을 느꼈다.
정성스럽게 쓰인 글은 쉽게 휘발되지 않는다.
그래서 할 글을 다하지 못해서 자기 전에 생각나거나
글로 실수해서 이불을 뻥뻥 차는 일은 없다.
여기서 ‘글’을 ‘말’로 치환하면 미련과 후회는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하여 나는 글을 통해 ‘나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 좋았던 사실 하나는,
내가 만족스럽다고 느낄 때 글을 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업적으로 쏟아내는 글들은, 그러지 못할 때도 많으니 말이다.
그러나 브런치를 운영하며 힘들었던 것은,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글을 계속 발행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였다.
더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은 나이에 돈이 되지 않는 글에, 이렇게 시간을 많이 써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성경 공부를 하며 한 가지 힌트를 얻었다.
하나님/하느님의 본성은 약속을 성취하는 분이라고 한다.
그분의 본성이 그렇다면
나의 본성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속하고 있고
돈을 받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쓰는 자리로 돌아와
콘텐츠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본성을 따르며 글을 쌓아 올리다 보면
글 자체는 권위가 될 것이다.
나를 모르는 대중들에게 내 배경으로 사람을 모으는 대신
글 자체로 매료시켜 주목하게 만들고
“글에 관심 있어요”라고 하는 것 대신 [글 목록]에서 스크롤의 길이로 세월을 보여주는 것,
키워드 몇 개로 해결되는 자기소개엔 매번 애를 먹더라도
글에 담긴 생각 전체로 나를 진중하게 드러내는 것은,
작가로서 나를 증명한다.
계속적인 글쓰기는
글 쓰는 체력을 늘리고 생각의 지구력을 키울 것이다.
소재를 발굴하는 고민은
나를 예측하지 못하는 곳으로 데려다 놓을 것이다.
이것은 뮤지컬 <레드북> 주제곡이자 주인공 안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도 내 안에서 할 이야기가 생겨나고 있음에 감사하다.
콘텐츠는 소비자들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면, 그 자체로 목적을 다했다고 믿어요.
뮤지컬 <레드북>으로 글쓰기로 소통하고 싶은 마음을 상기할 수 있었어요.
새해에는 자주 쓰는 것으로 많은 분들을 만나고 지평을 넓혀가고 싶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
청춘은 많은 시도를 통해 '처음'을 지워가는 과정입니다.
첫 해외 여행기가, 제 글쓰기의 시작이었음을 고백합니다.
20대를 갈무리한 '아프리카 여행 에세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번 보러 오세요! 당신과 공명하고 싶습니다.
작사가, 인터뷰어, 카피라이터, 시인, 작가, 콘텐츠 크리에이터, 포토그래퍼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또... 타인의 불편함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