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 권하는 사회 - 본격 역행하기

공격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by 알아주다

복이 없는 새해인사

설 명절 이후 안부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옛 회사의 이사님이 출근길에 내 목소리가 듣고 싶다며 연락을 주신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시작으로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졌다.


출근했어요?
연애는 안 해?
어서 결혼해야지!
...
아, 내가 너무 꼰대인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해도 안 해도 알리고 싶지 않은 물음들이었다. “요즘 친척들도 그런 질문은 안 해요”라는 말로 퉁명스럽게 넘어가려 했는데, 거기에 "내가 너무 꼰대인가?"라는 말을 붙이셔서, 할 말 없음! 내가 쓸 수 있는 말이 사라졌다. “출근길인데 지각할 것 같다” 하며 이사님의 발걸음이 사나워졌다. 우리의 통화는 1분 남짓으로 끝났다.


이분의 캐릭터를 알기에 전화를 끊고 난 이후에는 그럭저럭 나쁜 기분은 없었다. 처음엔 “와, 어른인데 먼저 새해인사를 해주셨구나”에 머물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잘 지내고 있었는데 ‘내가 부족한 사람인가?’하는 생각이 스몰스몰 올라왔다. 이 사고는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커졌다. 이야기가 담백하게 오가지 않고 떠보는 말로 물어봐졌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가끔 연락하는 사이, 예전처럼 일상에 있지 않기에 나라면 어떤 말을 할지 말을 골라보고 전화했을 텐데, 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결과만 말해야 했을 뿐 어떤 과정에 있는지 전할 수 있는 여건도 맥락도 아니었다. 요즘 말로 제대로 ‘긁혔다’. 이사님이 체크한 안부는, 모두 내가 추구하는 것들이고 부자연스럽게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내게 없는 것들이었다. 이분은 왜 항상 관심과 애정을 이렇게 표현하실까?


물을 엎지른다는 게 별 건가.

아끼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적막을 채우려고

별안간 아무 말을 휘두르곤

뒤늦게 ‘아차차!’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모두 ‘엎질러진 물’인 것이다.

물의(物議)가 주워 담을 수 없이 내게 쏟아졌다.



가끔 연락하는 사이, 계속 봐야 하는 사이

회사를 나온 이후 이사님과 나는 가끔 연락하는 사이가 됐다. 이후에도 몇 번의 만남을 가졌다. 나도 보고 싶은 마음에 나갔지만 뵙고 오면 늘 기운이 빠지고 찝찝했다.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근황도 너무 많이 듣게 되고, 내가 사는 모습도 이렇게 가십거리가 될 것이 자명해진 만남들이었다. 짧은 시간 팩트 위주의 대화가 오갔고 내 진짜 마음은 늘 꺼내지도 못한 채 시간은 동이 났다.


그래서 몇 번의 만남 이후 연락이 점점 희미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것에 대한 아쉬움과 어쩔 수 없음은 내게도 있었지만 다시 뵐 힘이 나지 않았다. 혼자 슬펐다, 나를 좋게 봐주셨던 분과 인연이 다했다는 사실에.


그런데도 뜸해질 만하면 계속 연락이 닿았다, 직접 혹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상대의 감정이나 반응에 무감하신 건지 늘 나를 ‘계속 만날 사람’처럼 대하셨다. 나는 그 끄떡없음을 보며 ‘계속 이어져야 하는 관계구나’하고 내 생각을 돌렸다.


계속 봐야 하는 사이.

그렇다면 다음에는 이런 인사를 받고 싶지 않아서 결단했다.

이사님~ 안녕하세요!
며칠 전 제게 새해인사로 전화해 주셨는데
이 말씀은 드리고 싶어서 메시지 드립니다.

저는 지인들에게 궁금해도 다 묻지 않고
짐작이 가는 사안이 있어도 그 사람이 말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 사람이 끝내 말할 수 없으면 그냥 둬요.
이건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방식이기도 하고
제가 받고 싶은 배려이기도 해요.

“누가 어떻게 지낸대, 걔가 그렇대”
이런 것을 전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요.
지인들에게 ‘말하기에 안전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이사님이 먼저 안부 전화해 주신 게
저에게는 용기내야 하는 일이어서 감사한 마음이 첫 번째로 들었지만
잘 지내고 있는, 제 평온을 깨뜨리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연애, 결혼... 다음엔 임신과 출산일까요?
1분 사이에 오간 말들에 어안이 벙벙.
솔직히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먼저 연락 주신 게 애정과 관심인 것을 너무나 알아요.
그런데 늘 말없이 넘기니 혼자 속상한 날들이 많아지더라고요.
지난번에 뵙고 와서도 슬프다고 말했지만 실은 울었고요.
이렇게 오가는 대화 때문에요.

저는 섬세한 사람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배려를 남에게 받고 싶기도 합니다.
부탁드려요.

너무 딱딱하게 들렸다면 전화 주셔도 돼요!
다정하게 받겠습니다.

불만은 다 말해 놓고, 다정하게 전활 받겠다니.

착한 척은 다 했다. 내가 썼지만 나도 참 나다.

하지만 내용은 전달하되 관계는 해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말이기도 했다.

내가 이분의 쿨함을 몇 번이나 넘겼으니

이번엔 나의 섬세함도 이해받고 싶었다. (예민하다고 하고 싶지 않다.)

내게 자꾸 건드려지는 말들을

‘당신’을 탓하기보다는 ‘나’를 설명하는 모양으로

전달해드리고 싶었다.

이런 부분에서 마음에 뿔이 나고 있었단 사실은 정말 그분은 모르실 것 같았다.



관계를 이어나가겠다는 의지

생각해 보면 이렇게 불편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내 입장에선 앞으로의 관계를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다. 상대가 이 불편함을 잘 받아주고 서로 긍정적인 신호들을 이어가면 우리는 계속 연락하는 사이가 될 것이고, 상대가 나를 맘껏 오해하고 그만 신경 쓰고 싶기에 시절을 추억의 뒷칸으로 넘긴다면 우리는 이제 미래가 없는 사이가 될 것이다.


공을 누가 먼저 던졌든

애씀은 상호적이어야 한다.


나는 이분이 전자일 거라 생각했다.

ⓒ arazuda all rights reserved @한국 서울


손절 권하는 사회 - 본격 역행하기

요즘엔 손절의 기술들이 넘친다. 곁에 두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의 특징이 일목요연하게 공유되고, 말없이 서서히 멀어지는 방법을 택하는 것은 손절 중에서도 매너라 여겨진다.


모든 연락망을 단절하고 다시 연결되지 않기 위한 가위질.

사실 그 편은 쉽다, 냉소란 원래 그런 것이다.

하지만 매번 쉬운 선택만 할 순 없지 않은가.


분명 단절해야 내가 건강해지는 관계도 있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켜내야 제 그릇이 커지는 관계도 있는 법이다. 어떤 순간의 손절은 딱히 누군가 잘못했다기보다는 불안하고 약한 사람이 관계의 모호함을 견디기 힘들어서 내린 결정일 때도 있다. 하여 아무런 경계 설정도,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끝내는 건 본인에게도, 상대에게도, 함께한 시간에도 비겁한 처사라는 것이 현재의 생각이다. 나는 누군가의 청천벽력이 되고 싶지 않다. 관계는 상호적이기 때문에 내가 완장을 찬 듯 혼자서 처리해 버리면 안 된다는 자각도 있다.


예전엔 나도 그렇게 관계를 싹둑 잘라버리고 편해지려 했던 것 같다. 그때의 심리 상태나 입지를 떠올려보면 강단 있어서 한 행동이 아니었다. 심약해져 바들거릴 때 그랬다. 내가 관계를 포기하려 할 때 가만히 있는 사람들은, 실은 나보다 마음의 평수가 넓었던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타인을 처단하고 바꾸려는 시도보다 ‘나’가 사람 보는 눈이 생기고 여유가 생긴다면 될 일이다. 손절 없이도 큰 타격 없이 무난하게 그 사안을 넘기는 게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정했다. 만약 상대가 나의 얘기를 '들릴 뿐 듣지 않는 사람'이라면 서서히 멀어지겠다. 하지만 '경청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불편해하는 지점을 한 번 설명은 해보겠다. 그런 노력을 나를 위해서도 하고 싶다.


어른들은 잘 싸우지 않는다.

일상에서 사람을 희미하게 하는 방법이 늘 도처에 있기에, 웬만한 애정을 갖지 않고선 갈등도 관계도 놓아버린다. 상실을 겪더라도 멀어지면 그만이다.


내가 이사님께 불편한 말을 꺼낸 건 “이젠 끝이에요!” 하고 다신 안 볼 이유를 대신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안 볼 사이니 용기를 갖고 꺼낸 얘기도 아니었다. 앞으로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서 드린 말씀이었다. 나의 마음은 이런 모양으로 생겼으니 잘 살펴봐주길 바란다는 메시지. 우리가 다음을 기약하려면 이런 점은 조심해 주면 좋겠다는 이야기. 그거였다.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

회사를 나왔고 잘보일 이유가 사라졌다고 존중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인간 대 인간으로도 좋은 사람임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하여 이사님을 용납하고 싶었다. 내가 용납받은 기억 때문이다. 너그럽게 나의 부족함을 받아주시고 동료로서 인격적으로 대해주신 일화들이, 내 안에 오래된 선물처럼 있었다.


회사에서 내가 수습이 잘 끝나길 기도해 주셨던 기억

시시때때로 오기도 하는 힘듦에 손잡아주셨던 기억

협력사와의 조율로 꽤 채근한 업무도 있었지만 그다음엔 바로 긍정적인 신호로 이끌어 주셨던 기억

내가 만든 콘텐츠와 아이디어에 “제일 웃기다, 따뜻하다”며 자신감을 북돋아주신 기억

다른 사람에겐 좀 까칠할 때도 나에겐 언제나 부드럽게 대해주셨던 기억

밀물과 썰물처럼 오는 기념일에 메시지를 보내면 늘 고맙게 받아주셨던 기억

글 쓰는 자로서의 나를 늘 대단하다며 치켜세워 주셨던 기억

내가 퇴사할 때 아쉬워하며 피플팀처럼 편지며 만년필 선물이며, 곁에서 챙겨주셨던 기억

그리고 퇴사한 지 한참 지났는데도 늘 먼저 연락해 주시고 생일을 챙겨주신 기억


나는 이분을 만나면 늘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떠보는 말, 서두르는 말 때문에 ‘감사함’까지 화두를 옮기기가 힘들었다. 어떤 질문과 말 맺음에는 발끈하기도 했다. 그러곤 집에 와서 후회했다. 아니면 내가 '한 인간의 현재 모습은 보지 못하고 너무 오래 고마움을 간직하나?' 하는 생각도 더러 했다.



싸가지가 없는 사람, 공격성이 있는 사람

이와 별개의 문제로 나를 초등학교 때부터 봐왔던, 오랜 친구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네가 싸가지가 없었으면 좋겠어.
그 사람은 너를 욕보인 것 같은데
너는 왜 자꾸 그 사람을 두둔하는 거야?”


아마 ‘싸가지’라는 말을 써야 내가 알아들을 것 같아서 그런 말을 했으리라.


‘싸가지’라는 키워드가 뇌리에 박힌 채 유튜브를 켜니 오은영 박사님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정상적 공격성(Normal Aggression)’이란 용어를 소개하고 있었다.

정상적 공격성(Normal Aggression)
: 자신을 보호하고, 부당함에 맞서며,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내면의 힘이자 창조적인 에너지.
: 남을 해치려는 증오가 아닌, 자기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며 적절한 거절과 의견 표출, 좌절을 다루는 힘.


공격성이라는 것은 남을 해치는 게 아니라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사람마다 꼭 길러져야 하는 특성이라고 한다.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공무원 사무관 과장 국희(염혜란 역)는 주무관 연경(최성은 역)에게 이런 걸 가르친다. 자꾸만 타 팀 사무관에게 잘못하지 않은 일로 공격을 받을 때 “울지 마, 울면 사고가 마비된다.”며 정신을 무장하게 한다. 눈을 부라리며 “제 말이 맞거든요. 아니요. 제 말 먼저 들으시라고요.” 해보라며 연경을 훈련시킨다. 이에 연경은 회사에서 생기는 부당함에 울지 않고 맞선다. 타인이 자신을 얕보지 않도록 자신의 세상을 빳빳하게 펴 나간다.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 스틸컷 (감독: 조현진)


이제 알겠다.

“친구야, 내가 꼭 싸가지없는 사람이 될게.

착함(약함)의 포지션을 벗고

미움받을 용기, 마구마구 낼게!”



미움 대신 사과

나의 공격적인 메시지에 이사님의 답장이 왔다. 감사하게도 이사님은 "내가 그런 점이 부족하다"며 바로 사과해 주셨고 다음에 만나면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내가 이 메시지를 하느라 고민한 시간에 비하면 엄청나게 즉각적인 사과였다. 허탈할 정도로. 나는 이분이 쉽게 변하지 않을 거란 걸 안다. 누구나 고형적인 문제가 있듯이 조심해 주신다고 해도 나와는 기준이 달라 배려받지 못하는 날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나의 불편함을 설명했다는 것에 그 메시지는 의미가 있었다. 혼자 서운함을 키우다가 대뜸 손절하지 않았기에, 무탈함이란 성과를 챙겼다.




[작가의 말]

설명이 많이 필요한 관계는 어쩌면 결이 맞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맘이 딱 맞는 사람과만 사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결이 맞는 사람은 어쩌면 본인과 비슷한 함정에 빠지는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차라리 싸가지없는 사람, 공격성 있는 사람이 돼서 ‘나’에 대해 설명도 많이 해주고 ‘너’의 다름을 앎에도 불구, 꽤 잘 지내보고 싶어요. 서로를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나와 너의 사이를 잘 조율하는 노력도 해보고 싶습니다.


이를 어쩐담… 글쟁이가 이런 글을 남겼다는 걸 알면 제 글을 항상 멋지게 봐주셨던 이사님께는 불명예가 될 수도 있겠네요. '잘 지내냐'는 질문은 때론 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음 명절엔 제가 이사님께 먼저 연락해보려 해요. 묻지 않아도 제 근황을 전해드려야겠어요. 무례한 인사를 받기 전에요. 더 묻고 싶었는데 참았을 수도, 챙겨주려고 전화했는데 된통 화를 당하셨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손절하지 않고도

성숙한 인간관계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무색해지지 않도록

인생을 헛헛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은요.

작사가, 인터뷰어, 카피라이터, 시인, 작가, 콘텐츠 크리에이터, 포토그래퍼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또... 예고되지 않은 순간,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arazuda의 글, 유튜브로 들어보세요!

브런치로 오디오/팟캐스트도 만들고 있어요.
AI가 아닌 제 목소리로 여러분과 수다를 떨고 싶어요.

이 시도를 응원하고 귀 기울여 주신다면
오늘도 계속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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