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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목 Oct 22. 2021

2021.10.22 금요일


 2021.10.22 금요일 


  차가 빼곡하여 천천히 움직이는 금요일의 올림픽 대로 위. 오늘도 어김없이 지옥통을 지나 출근하던 중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 할 것 같으니 간단히 빵을 사먹어야지 하는 생각에 설레었다. 행복한 상상과 더불어 불길함이 엄습한다. 아니겠지, 아닐거야... 그제 입었던 코트가 아닌 다른 외투를 입고 나왔는데 어째서 인지 운전석에 앉아있는 내 몸의 허벅지에 어떠한 불편함도 없다. 분명 지갑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엔 두께감 하나 없는 옷만이 얇팍하게 나의 살갗을 누르고 있다. 오늘도 나의 건망증은 한 건 한 것인가.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하니 가지고 나오려 챙겨둔 물통 역시 가지고 오지 않았음이 생각난다. 아무래도 오늘은 무엇을 먹고 마시는 행위 자체는 글렀다.


  분명 나오기 전 카드를 챙겨야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난다. 물도 마찬가지. 어떤 날은 폰을 두고와서 동네 한바퀴 드라이브하고 돌아와 폰을 가지고 나가기도 하고 책을 잘 못 챙겨 나와서 다시 가지러 들어가는 날들도 허다하다. 이러다 정말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거나 스스로를 망각하는 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불안한 마음은 끊임없이 부정에 부정의 생각을 낳고 기른다. 불안한 마음은 부정한 생각의 어머니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 그렇게 감성영화 한편의 기억을 잃어가는 남주의 자리를 꿰차는 상상을 하고, 옆에 있는 이는 비련한 여주가 되어 끝끝내 오지도 않은 현실에 대하여 '미안함' 이라는 감정을 갖게 만들고야 만다. 생각을 멈추기 위해 갖은 긍정의 것들을 떠 올려 보려 했으나 허사였다.

 

  인생은 아이러니 하게도 늘 뜻하지 않은 것에서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부정한 생각의 멈춤은 나의 시선이 주차권을 발견 했을 때 찾아왔다. 퇴근 때 출차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것. 일전에 지갑에 넣을까 말까 하다가 행여나 두고 오는 날이 있을까봐 운전석 손잡이에 넣어두었다. 안도감이 찾아온다. 지갑을 안가지고 나왔다고 호출벨을 눌러가며 생판 얼굴도 모르는 인터폰 맞은 편의 관리아저씨에게 아쉬운 소리 할 필요는 없는 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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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현에서 신사동을 거쳐 올림픽 대로로 나가는 오늘의 금요일은 늘상 차들이 많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다른 요일도 그러는지 알 턱이 없지만 금요일과 일요일은 늘 막힘의 구간이 길어 마음을 비워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느긋하고 여유로이 지나갈 수 있다. 여유로움을 갖기 위해 나는 차에 누가 타고 있을지를 상상해 보곤 한다. 캐리어가 올려져 있는 차를 보면 캠핑가는 사람이 타고있나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급하게 속도를 올려 칼치기를 하는 차를 보면 왠지 모르게 나보다 더 젊은이가 타고 있지 않을까, 느긋한 차를 보면 부모님 연배의 어른이 마실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올림픽 대로에서 그나마 빨리 가는 방법은 1차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중간에 사고가 있는 날들은 해당하기 어렵겠지만 대개는 1차선으로 가면서 운멍(운전 멍)을 하면 어느새 정체는 풀려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쉴 새 없이 좌로 우로 끼어드는 차량들이 있어 남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기도, 뭇 교통 체증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몇년 전 까지만 해도 그렇게 해야 빨리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안다 그 칼치기와 같은 운전 습관은 끽해야 오분 남짓의 시간만 단축 한다는 것을. 그럴 바엔 5분 일찍 나오는게 마음이 더 편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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