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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목 Jul 22. 2022

빛이 모여 길이 되길 바래


어두움과 우울감을 사랑하다 못해 헤어나오지 못하던 시절. 자그마한 희망하나 보이지 않는 삶에 익숙해 지면 삶의 고통에 익숙해 지고 삶의 이유마저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뼈저리게 느꼈다. 나를 잠식하던 어둠은 머릿속 마저 어둡게 만들었고 끝끝내 숨만 뱉어낸 채 어떠한 생명의 활동도 거부하는 이로 만들어 버렸다.


어둠 안에 있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진흙처럼 나를 옭아매는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사람은 못 되었다. 몇 번의 발버둥은 한 없이 무기력했다. 그리고 그 무기력한 시도의 반복은 더이상의 시도가 무의미함을 일깨워 주었다. 마침내 나는 눈을 감아 버리기로 했다. 보이지 않으니 두려울 것도 없었다. 점점 어둠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완전히 잠기면 오히려 편안감이 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모든 것은 끝난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삶이 나의 뜻대로 되지 않아 나를 어둠으로 몰아 넣은 것이라면 여기서 벗어나는 것 역시 나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그 확신에 몸을 맡긴다. 흘러가다 보면 정답은 아니더라도 얼추 비슷한 답은 나오겠지 싶었다. 삶은 서술형 주관식이지 객관식이 아니니까.


그렇게 마냥 흘려 보내다 보니 또 살아진다. 조금씩. 맞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살아지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


사는 것과 살아지는 것의 차이는 삶의 원동력이 어디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사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이고 살아지는 것은 세월에 주체를 두는 행위다. 스스로의 삶에 내가 주체가 아니라고 해서 삶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너무 잘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최선을 다해 잘 살기 위해 노력을 하다보면 한 곳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주변의 것들에 소홀하게 된다. 언젠가 찾아올 무너짐의 순간이 되면 주변의 것들이 그 무너짐에서 헤어나올 존재가 되어 줄 수 있음을 망각한 채. 그러니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무너짐 속에서 홀로 갇혀있기엔 빠져나올 도리가 없다.


어둠에 갇히게 되는 때가 오면 한 두개씩 빛을 내며 산개해 있던 것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 할 것이다. 자세히 보면 분명 우리가 평소에 살피던 것들이리라. 그리고 작은 점들은 모여 조금 더 큰 점을 만들고 끝내 주변을 밝히며 큰 길을 만들어 줄테다. 어두움에서 내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그러니까 사는 것 보다 살아지는 것을 선택하는 이유는 세월이라는 큰 흐름 속에 나를 내맡기기 위함이다. 내가 살피는 것들이 빛이되어 길을 밝혀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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