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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목 Jan 01. 2023

빠르게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


  일분 일초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마치 왼쪽으로 몸을 뒤집거나 오른쪽으로 몸을 뒤집어 붕어빵 기계 속의 밀가루 반죽과 같이 전기장판에 몸을 굽는다. 파자마 차림을 한 채로.  어찌나 오래 누워있었는지 허리에 통증이 오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의지는 없다. 등에 땀줄기가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잠시 허리를 곧추 세워본다. 미세하게 느껴지던 통증은 사라지고 어딘지 모를 시원함이 느껴진다. 엄마가 유아기의 나에게 해 주던 '쭈까쭈까'가 이런 것이었을까 싶다.


  나는 12월이 시작되면서 큰 결심을 했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반드시 쉬어 내겠다고. 대단한 일정을 바라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눈을 떴고, 별 다른 것은 하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낸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평소라면 수업에 치여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 시간이 되었다. 하루의 5/6이나 지난 시간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파자마 차림으로 누워있다. 간만에 느끼는 평온함에 행복감이 충만하게 차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철문이 닫히는 소리. 위에서 쿵쿵 걸어다니는 소리. 차 시동이 켜지는 소리.  이 빌라에 사는 이들이 하나 둘 움직이는 소리들이 들린다. 유난히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그들의 신발 소리가 경쾌했다. 나는 알았다. 빌라를 떠난 이들의 발걸음은 이제 내년에나 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제야 내 머리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을 본격적으로 떠올린다. 온 몸을 뉘여놓은 덕분에 올해의 마지막 태양은 이미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한 해에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았다. 원체 기억력이 좋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특별한 것이 없다. 무엇을 하며 올 한 해를 살아왔는지 의아해진다. 새 해가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특별함은 없다. 무뎌짐이란 이런 것일까. 일은 열심히 했다. 그렇다고 작년보다 더 열심히 했냐는 질문에는 섣불리 그렇다는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일을 제외하고 스스로를 위해 노력한 것이 있는지 나느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자신에게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입은 굳게 다물었고두 손은 가지런히 모은 채로 눈을 감는다. 존재하지 않는 답을 찾는 것 만큼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것은 없다.  


  12월 31일이 되면 아빠는 늘 고구마 케이크를 손에 든 채로 집에 들어섰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케이크였다. 그럼에도 엄마와 동생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늘 아빠는 늘 손에 고구마 케이크를 들고 나타났다. 그런 이유로 "치킨 먹고 싶지 않니?" 라고 동생을 꼬드긴다. 내가 졸랐다면 참으라는 소리만 돌아왔을 것이 분명하지만. 몇 번의 어필에 아빠와 엄마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동생을 움직여야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생긴다는 생각은 늘 적중했다. 그렇게 우리는 치킨을 시켜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았다. 재야의 종 타종 행사가 지방파 방송으로 생중계 되고. 우리 가족도 타종 소리에 맞추어 초에 불을 붙이고 서로가 바라는 바를 기도했다. 기도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멈추는 법은 없었고 초는 절반 정도가 남았다. 기도가 끝나고 불을 끄면 끝난 줄 알았던 이 의식은 서로에게 바라는 점을 이야기 하는 차례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그 시간을 늘 좋은 덕담을 나누는 시간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기억 속  나의자세는 이상하게도 늘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다물고 있던 입술을 열어 앵무새와 같이 지난 해에 했던 말을 반복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공부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더듬거리던 그 말 속에는 나를 그만 괴롭혀 달라는 뜻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엄마 아빠 속 그만 썩이고, 공부 더 열심히 하고..." 로 시작하여 그 해에 있었던 과오들을 되짚는 엄마 아빠의 덕담이 이어진다. 지옥이었다. 한 해가 시작된 지 30분 정도 덕담이 이어지고 그제야 나와 동생은 음식을 손에 든다. 덕담을 듣고 먹는 음식이 맛있을 리가 없다. 이미 눅눅해진 치킨에서는 누린내가 나는 것만 같았고 고구마 케이크는 이미 상해버린 맛이 났다.



  한 해가 갈 수록,

  어른에 가까워지는 설렘을 갖던 시기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음을 안다.

  이제는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시기가 되었다는 사실만이 뇌리에 남는다.



  어른이 되어 집을 떠나와서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는 해의 시작을 가족들과 함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유별나게 행사를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매 해마다 집에 조용히 틀어박혀 있었다. 고요한 연말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상하게도 가끔 그 맛없던 케이크와 눅눅해진 치킨을 먹던 날이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 때는 해야할 것들을 엄마 아빠가 편하게 덕담을 빙자하여 던져줬다면 이제는 스스로 찾아야 하는 괴로움 탓이 크다.


  연말은 사계의 끝인 겨울에 찾아든다. 모든 생명이 웅크려 땅으로 들어가거나 사그라제 만드는 차가운 겨울의 이미지 탓일까. 연말이 되면 하나의 생명인 나 역시 우울해진다. 투명한 생수에 떨어뜨린 검은 잉크 한 방울이 서서히 퍼져나가 물의 채도를 낮추는 것처럼. 자그마하던 우울은 내 안에 퍼져나가고 살아온 한 해를 살아온 스스로에 대한 원망으로 변한다.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한 해를 보내오는 내내 방관한 스스로에 대한 원망은 날카로운 금속이 되어 뇌를 파고든다. 딱딱한 두개골을 열어내고 온 머릿속을 한참 동안 헤집는다. 조금만 더 헤집으면 썩어버린 그 생각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수십번을 반복하고서야 눈을 뜬다. 아직 9시도 되지 않았다. 고통의 시간은 느리게만 갔고 아직 나의 올해는 보내지지 않았다.


  결국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작년과 같은 다짐을 한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만큼 조금 더 성숙한 죽음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내년의 마지막 날은 올해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느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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