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보면 안쓰러워 보이는게 먼저였다. 아빠와 목욕가기 전까진...
중학교 입학식 전날 나의 친애하는 할아버지가 몇 달간의 기나긴 투병끝에 세상과 이별을 했다. 입학식 당일은 담임선생님 얼굴만 보고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장례식장으로 가는길 처음으로 맞닿은 죽음이라는 현실에 어떠한 감정을 표현해야 할 지에 대하여 고민했던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슬퍼해야 하는지 나이가 드실만큼 드셨었으니 호상이라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더는 할아버지는 볼 수 없음에 넋이 나가있었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에게 몇달째 침대에 누워계시던 할아버지는 언제나 힘 없이 누워만 있던 목석 같은 존재였다. 할아버지와 추억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누구보다 살아계실땐 할아버지를 잘 따랐던 나였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3대가 목욕탕에 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등도 밀어 주던 시기도 있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던 할아버지는 깔끔히 접은 매일 벌어온 돈을 접어 언제나 맛있는거 사먹으라고 200원 300원 용돈도 수시로 주셨다. 유독 낚시를 좋아하시던 할아버지는 틈틈히 홀로 목포 초입에 있는 저수지에 가서 붕어를 잡아오시기도 했고. 잡아온 붕어를 탁본 뜨는 취미도 가지고 계셨다. 그렇게 정정하던 할아버지가 몇달만에 암을 진단 받고 급속도로 쇠약해 지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나이가 들면 저렇게 무력해 지고 그러다 사라지는 거구나.' 그때 부터 였었던 것 같다. 나이든 어른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은.
"얘들아. 나이가 들면 다 저렇게 안쓰러워 지는 거라면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
고등학교시절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했던 이야기다. 다들 제정신이냐고 물어봤고. 부모님께 말했다면 천하의 불효자식이 될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구부정한 허리로 걷는 노인. 길에서 큰소리 치는 노인.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볼때 마다 나도 모르게 저렇게까지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짝 개화한 후에 시들어버리는 꽃들처럼 노인들은 곧 떨어져버릴 지고 있는 꽃들로 보였다. 그토록 어릴때 귀가 따갑게 들었던 노인 공경 보다는 연민이 먼저였다. 가만 생각해 보면 노인을 공경하라는 교육은 받았지만 공경이라는 것을 하기에는 너무 어렸던 것은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에 그 누가 노인을 진정으로 공경할 수 있었을까. 그저 존대하는 것이 공경이라고 생각했었다. 진심이라곤 1도 없는 그런 빈 깡통 같은 공경. 그 분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감히 공경을 할 수 있을까. 힘이 없어 보이는 노인에게 갖는 감정은 연민이 먼저일게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케어가 필요한 사람. 어린 시절 내 눈에 보이던 노인은 지금 당장 아파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었고 그러다 금새 사라져버릴 것 같은 존재들이었다. 자꾸 그렇게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안쓰럽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와 같이 연민의 감정으로 나의 나이든 모습을 볼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언제나 젊고 싶다는 욕심은 그 때 부터 생겼다.
20대가 되고 30대가 되어서 '노인'하면 생기던 연민의 감정이 부모님을 향했다. 이런 시기가 올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부모님이 노인이 될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젊은 모습의 엄마 아빠일 줄 알았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고향에 내려간날 아빠와 목욕을 갔을 때 였다. 분명 20대 초반에 목욕을 같이 가던 우리 아빠의 등판은 이렇게 좁지 않았다. 너무 넓어서 밀기 힘들어 짜증부리던 등판이었다. 30살에 가까워 같이간 아빠의 등은 네다섯번 손바닥을 왕복하면 한번 다 밀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내 손이 비약적으로 커진걸까. 그날 이후로 아빠와 목욕을 가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왠지 이번에, 다음번에 갔을 때는 이 전보다 더 좁아져 있을 아빠의 등판을 보기가 힘들 것 같았다. 연민의 감정으로 안쓰러워하던 나이든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아빠라서. 서울에 돌아와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아빠와 엄마의 나이듬에 다하여 연민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 너무나 슬펐다. 느끼고 싶지 않아 할 수록 더더욱 슬픔과 우울의 늪에 빠졌다.
그렇게 몇주를 몇달을 우울해 하던 나는 우연히 부모님께 도움을 청할게 있어 연락했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나의 고민거리를 해결해 주셨다. 정말 어이없게도 그 순간 전화를 들때까지만 해도 들던 연민과 슬픔의 감정은 사라져버렸다. 언제 그런 연민의 감정을 가졌었나 싶을 정도로 부모님이 존경스러웠다. 그건 그냥 단순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오랜 연륜에서 묻어나온 두 분의 해결책이었다. 그런 분들을 두고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는게 참 가소롭기도 하고 버릇없어 보였다. 그 날 이후로 부모님에 대한 연민도, 노인에 대한 연민의 감정도 갖지 않기로 했다. 잠시 드는 감정의 틈은 어쩔 수 없다. 시각적인게 타격은 확실히 크니까. 대신 연민의 감정을 갖는 것보다 말투와 행동을 보며 공경할 거리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 그게 슬픈 것보다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더는 나이드는게 나를 슬프게 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