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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May 11. 2022

무비 나이뜨: 플로리다 프로젝트

8호_2주년_무비 나이뜨

작성 : 프로잡담러 I

게재 : Vol.8 2주년 기념호, 2019년 여름



여름의 초입, 1학기의 막바지인 6월 2일 일요일 7시에서 10시 사이에 상수동의 한 파티룸에서 잡담의 2019년 여름 무비나이뜨(movie-nightt)가 개최되었다. 이번 행사의 상영작으로 선정된 영화는 션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The Florida Project, 2017)⟫. 플로리다의 디즈니랜드 건너편 '매직 캐슬'에 사는 모녀를 주인공으로 한,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파스텔 톤의 포스터가 인상적인 영화다.


주최자(김정인, 이하 김)를 비롯하여 곽, 강, 한, 홍, 박 총 6명이 참여해 2시간여의 영화를 본 후 약 1시간 동안 영화를 바탕으로 한 '건축적 담소'를 나누었다. 다음의 내용은 대화를 흐름에 따라 언급된 주제별로 분류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순서대로 이어지는 대화가 아니다.



건축의 사회적 기능


곽: 이 영화에 대해서는 색감, 화면 등의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그래서 건축 잡지에서 개최하는 행사에서 얘기를 나눠볼 만하지 않을까 해서 고른 영화였는데, 막상 보고 나니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건축을 이야기해야 하는 영화는 아닌 것 같다. 건축의 사회적인 기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영화를 보면서 '건축이, 건축가가 얼마나 쓸모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가들은 디자인을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하려고 항상 애쓴다. 하지만 시설도 낙후됐고 주위 환경도 폐허 같은 모텔인데 정작 저런 곳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이 서로 신경 써 주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알고 있다. 아이들도 잘 만들어진 놀이터 못지않게 모든 상황을 다 즐기고 재밌게 받아들이면서 논다. 그냥 풀밭에 비 오는데도 즐겁고. 그래서 건축가가 쓸모없구나, 참. 비주얼 디자이너로서의 건축가가 사회적인 기능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그런 반성을 하면서 봤다. 


김: (앞서 말씀하신 건축의 사회적 기능을 듣고 떠올랐다.) 처음에 보라색 모텔-매직 캐슬과 파란색 모텔-퓨처랜드 모텔 등이 비비드한 컬러를 앞세워 등장한다. (강: 이름이 엄청 반어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외에도 영화에서 나오는 모든 건축물들에 하나씩 컬러가 아이덴티티처럼 부여되어 있다. 시각적으로 한 눈에 구분이 가도록 만들어진 건물들을 보면서 그 갭을, 퓨처랜드와 매직캐슬 거주자들의 갭을 부각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건축가의 무력함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번 학기 프로젝트가 '커뮤니티 센터'였다. 커뮤니티 센터라는 건물 유형에 대해 배울 때부터 저희 교수님께서는 '건축가들, 특히 너희 건축학도들은 건축을 통해서 영웅적인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강: 그래서 가능성을 많이 열어두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른들은 '이 공간은 이런 공간이다.'라는 정의를 어느 정도 갖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저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신박하고 자유롭다. 하물며 두 아이가 숨바꼭질을 하면서 전선이 이리저리 뒤엉켜 있는 책상 밑으로도 자기 집처럼 들어가서 숨기도 한다. 그런 걸 봤을 때, 만약 저 공간이 저렇게 오픈되어있지 않고 프라이버시가 잘 보호된 공간이었다면 저런 게 (상호작용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림1] 아이들과 공간의 상호작용


박: 이야기를 들으면서 후지모토 소우(Fujimoto Sou)의 '공간 관계론'이 떠올랐다. 저 건물의 본 용도가 모텔이지 않나. 저게 만약 실제 모텔의 용도처럼 쓰였으면... (제가 최근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모텔에서 아주 많이 지냈거든요.) 모텔의 커뮤니티라는 건 저 옆집, 그 옆집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 그냥 외출만 하고, 돌아와서 잠만 자고 하는 관계다. 하지만 영화의 매직 캐슬은 여러 형태의 가정들이 아예 세를 들이고 집처럼 생활하는 공간이다 보니 특수한 관계들이 맺어진 것 같다. 그걸 보면서 우리가 아무리 설계를 하고 디자인을 통해 커뮤니티 형성을 유도한다 하더라도, 공간 관계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직접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림2] 싱글맘인 핼리와 모텔 관리인 아저씨 바비


곽 : 너무 문학적인 표현일 수도 있는데, 결국은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정말 불행할 것 같은 환경인데... 저렇게 좋은 사람(바비)도 있고. 힘든 상황을 사람들이 서로 알아주는 장면들도 있고. 우리가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는 그런 환경이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가에 따라 좋은 환경이 되는 것 같다, 결국. 아이들도 그냥 행복해 보이잖아요.



커뮤니티


강: 한국의 모텔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전형적인 미국 모텔이다. 편복도가 있고 실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주차장이 하나 있고. 매우 오픈된(개방적인) 형태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아이들은 (건축가가 신경 써서 만든 공간이 아닌) 후진 모텔인데도 공간을 활보하며 아주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며 재미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곽: 한국으로 치면 고시원 생각도 많이 났다. 미국 영화에서는 많이 등장하지만 한국에는 저런 모텔이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에서 딱 저런 느낌의 모텔이 나오는데, 그 영화에서는 공포스럽고 부정적인 장소로 묘사된다. 그런데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는 똑같은 삶의 장소일 뿐이다. 저기 사는 사람들이 '불쌍하다'라는 생각은 안 들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 법한 순간마다 의도적으로 귀여운 아이들, 엄마와 딸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삽입해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 좋았다. 그냥 볼 수 있게 하는 것. 불쌍한 사람들도 아니고, 슬픈 사람들도 아니고, 사람들로, 그 자체로 볼 수 있게 하는 것.


[그림3] 매직캐슬 모텔의 편복도


한: 나는 어릴 때 복도형 아파트에서 살았던 기억이 많이 떠올랐다. 옛날엔 많았지 않나, 최근에 왜 없어졌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때도 애들이랑 복도에서 막 뛰어놀고 그래서. 요즘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 사이에는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없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게 어느 정도 복도형 아파트(의 소실)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강: 주인공인 무니와 엄마 핼리는 보편적인 형태의 가정이 아니다. 그런데 무니가 키워지는 것은 그 세대 내에서만이 아니라, 저렇게 열린 공간에서 만나는 친구나 친구의 어머니 등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다. 그런 걸 통해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만약 퓨처랜드 모텔처럼 열려 있지 않고 일반적인 아파트처럼 프라이버시가 잘 보호된 공간에서였다면 저 가정 형태나 상황이 완전히 문제가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집 안에만 고립되어 있는 거지.


곽: 주인공 가족이 다른 모텔에서 못 자게 됐을 때 친구네 어머니한테 도움을 청하러 간다. 처음에 만났을 땐 되게 안 좋게 만났는데. 그 집에 가서 도움을 받고, 하룻밤 묵게 되고.



빈민 주거


홍: 나는 이 영화에서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는 아이들의 공간감이다. 도시는 나가봤자 큰 찻길, 빽빽한 건물밖에 없기 때문에 다양한 공간들이 안 나올 가능성이 높은데, 여기는 바로 옆에 나무가 나오고 뛰어가면 갑자기 학이 나오고… 주변의 재미있는 요소들을 아이들이 잘 찾아다니더라. 책상 밑이나 이웃에 있는 특이한 느낌의 집 등, 아이들이 호기심과 오감을 사용해서 찾아내는 독특한 공간들이 잘 나타났다. 그래서 아이들의 경험과 감각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는 빈민 주거(모텔이라고 하지만 빈민 주거잖아요.)의 해결방안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공간 자체보다는 내부 프로그램이나 운영 방식, 그러니까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도시 빈민 주거 이슈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방 같은 것'이 방으로 기능하는 것보다는 요즈음 많아지는 공유 주거와 같은 다양한 시도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 같다.


강 : 남미에 <토레 데 다비드(Torre de David)>라는 건물이 있다. 오피스 건물로 지어지다가 발주한 회사가 부도나면서 공사가 멈춰 버렸는데, 거기에 빈민들이 들어와서 살기 시작한 거다. 라멘구조 말고는 주어진 게 아무것도 없는 건물인데 사람들이 직접 블록을 가져와서 타일을 만들고 타이폴로지(Typology)를 만들어낸다. 그걸 보면 하드웨어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얘기처럼 소프트웨어 즉, 사람들이 거주하는 것이 (건물 자체보다) 우선되는 것 같다. 삶 속에서 오감으로 느끼는 것들이 물리적인 건축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곽 : 건축가가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어렸을 때 즐겁게 놀았던 걸 생각해 보면 잘 디자인된 놀이터보다는 동네 아파트의 '그렇게 쓰라고 만들어두지 않았던' 곳에 대한 기억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 공간들이 더 많이 생기려면 건축가들이 어떤 생각으로 디자인을 해야 할까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절대 '여기는 이 용도로 쓰십시오.'라고 지시하는 디자인이 나오면 안 될 것 같다. 오픈된 마인드로 많은 감각을 자극시키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강 : 평소에 왜 스위스에서 좋은 건축가들이 많이 나올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자연환경이 큰 영향을 미

치는 것 같기도 하다. 건축은 시각적인 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좋은 건축 또한 그 안에서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선 다양한 공간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다양한 결과물들이 나오려면.


한: 혹시 빈민가 범주의 도시 설계를 특정 건축가가 성공적으로 설계한 경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홍: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의 <Villa Verde Housing> 프로젝트가 감명 깊었다. 빈민가의 집을 만드는데, 틀만 만들고 반까지만 짓는다. 한번에 전부 지으면 돈이 많이 드니까. 반만 만들어놓고 그곳에서 살게 한 다음 돈을 벌면 나머지를 지어갈 수 있게 하는 집이다. 틀만 만들어 두었기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금씩 바꿀 수 있다. 다 똑같은 아파트처럼 일체화된 디자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식에 맞게 나머지를 만들어 나가는 시스템이 너무 좋아 보였다.


[그림4] <Villa Verde Housing>, Alejandro Aravena


박: 우리나라의 빈민가는 어떤 형태로 들어왔는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 봤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반지하에서의 삶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우리나라에는 어떻게 저런 형태의 '빈민의 삶'이 들어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되는 것 같다.


홍: <은혜공동체>라는 것이 있다. 공동주택인데 네 개의 부족이 산다. 여러 세대를 묶은 것을 하나의 부족이라고 하는데, 각 부족은 가정 형태가 비슷한 세대끼리 묶인다. 1부족은 한부모가정으로 구성된 세대들, 2부족은 핵가족, 3부족은 한부모가족인데 싱글맘, 4부족은 싱글대디 세대 식으로 그룹화한 다음 근처의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 둔 형태다.


부족들이 사는 공간이 스킵 플로어(skip floor)로 만들어져 있고 각 부족별로 하나의 공용공간을 공유한다. 그런데 그 공용공간이 부족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1부족 내에서 공유하는 공간이 주방 위주라면 다른 부족은 바(bar)나 영화관, 또 하나는 도서관, 또 다른 부족의 공용공간에는 또 다른 프로그램에 있는 식이다. 그 공간들이 다 열려 있기 때문에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의 공용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방은 1-2인 1실로 쓰고. 그런 식으로 한 건물 안에서 여러 세대가, 몇십 명이 사는 거다. 지하에는 공동체 내의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춤 연습 공간, 밴드 합주실, 아주 큰 부엌 등-이 있다. 집 안에서 이렇게 많은 활동들이 일어나는 거다. 동아리도 다양하고. 사실 나는 이게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아마 교회 단체에서 운영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 시스템이 기능할 수 있는 것 같다. 목사님이 관리자로서 집 전체를 관리하는 거지.

한 부족이 열 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 분들 말씀을 들어 보니 월세로 낼 수도 있고 전세로 낼 수도 있는데 가격도 다르고 사용하는 공간의 크기도 다르더라. 가장 저렴한 경우에는 25만원이었다. 나는 이 사례가 '프로그램으로 잘 묶여 있는 공유주택'이라고 생각했다. 한 사람당 동아리 서너 개에 소속되어 있고 춤, 밴드, 멘토-멘티 관계도 있다. 공동체 자체가 활성화되어 있는 거다.


박: 프로그램만 들었을 땐 기숙사가 떠오른다. 기숙사들도 1층에 공부를 하는 공용공간이 있고 또 개별 공간이 있고 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어찌 보면 프로그램적으로는 특별히 다른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강: 부족들이 각각 공용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고 그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는 건가? 그 프로그램들은 해당 부족의 필요에 의해 나온 건가?


홍: 그런 것 같다.


박: 지금 찾아보니 (공간별로) 실내 구성에는 큰 차이가 없고 내부에 있는 가구들이 바뀌는 것 같다.


곽: 우리가 '이런 거 만들어야지' 라고 마음 먹었을 때 시도할 법한 형태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사례가 의도대로 잘 돌아갈 수 있는 것은 결국 교회이기 때문이 아닐까.


강: 강력한 소프트웨어인 거지.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경우와 다른 점이라면 순서의 문제가 아닐까? 은혜공동체의 경우에는 이미 존재하는 강력한 소프트웨어에 따른 건축이 나온 것이고, 이 영화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열린 평면, 가능성의 평면에서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커뮤니티가 만들어졌으니까. 그런 점에서 비교해볼 수 있는 사례인 것 같다.


박: 또 다르게 생각하면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인물들은 신앙이 아니라 '싼 가격'으로 묶인 거지.


: 자본주의에 의한...


곽: 그렇다. 이 경우에는 사람들을 묶는 것이 '계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김: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모텔 자체도 '사는(거주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 않나. 관리인은 계속 장기투숙은 불가능하다고 경고하고, 투숙자들은 편법을 써서 30일마다 나갔다 들어오는 식으로 거주를 이어 나간다.


곽: 그게 법으로 정해져 있는 걸까?


김: 아마 호텔 지배인이 정한 규칙 아닐까?


곽: 그런데 그럴 이유가 있나?



디즈니랜드; 'Decorated shed'


[그림5] 무니와 친구들이 함께 향하는 아이스크림 가게


강: 그렇긴 하네, 굳이. 돈 받는 건데. 얼마 전 학교 현대건축사 수업에서 벤투리(Robert Charles Venturi Jr.)가 이야기한 'Decorated shed' 개념이 나왔다. 영화에서도 그렇게 볼 수 있을 만한 건물들이 있더라. 아이스크림 건물, 오렌지 건물 등. 플로리다라는 장소가 디즈니랜드가 있는 곳, 관광지 주변이라 그런지 벤투리가 이야기한 라스베이거스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고.


곽: 『Learning from Las Vegas』. 엘리트 건축가들이 만들지 않은, 일상적인 건축을 조사해서 새로운 건축 방법론을 만들어 보자는 내용인데 영화에서 보니 그런 '일상적인 건축'이 나쁘지 않았다. 유치하다기보단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그것을 의도적으로 부각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고 자연발생적인 일상 건축이지만, 일단 화면에 예쁘게 잡히기는 하더라.


홍: 그 지점이 아주 역설적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그 예쁜 풍경에서 웃으면서 잘 뛰노는 모습이 도시빈민으로서 겪는 어려움과 대비를 이루며 부각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림6] 영화의 배경환경은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좋은 무대가 되고 있다.


[그림7] 디즈니랜드를 배경으로 한 무니와 단짝 스쿠티의 도피


곽: 이 영화가 동화같긴 한데 건물들을 보면 '껍데기만 동화같은' 느낌을 준다. 마지막에 아이들이 디즈니랜드로 도망치는 장면에서도 디즈니랜드는 진짜 꿈나라가 아니라 '만들어진 꿈나라'니까. 그런 의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이 역설적으로 작용해 마지막 마무리가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디즈니랜드 씬도 하늘의 색감이 이상해질 정도로 일부러 튀게 찍었지 않나. 이걸 과장해서 예쁘게 찍었단 걸 관객들이 알 수 있도록.



(아이를 기르는) 커뮤니티


홍: 바비는 관리인으로서 (이 커뮤니티를) 계속 지키고 싶었을 것 같다. 모텔에 사는 사람들이 아무리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어서 계속 건물 외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수리하겠다고 하고, 관리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강: 겉으로는 까칠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속은 엄청 따뜻하다는 게 모든 행동에서 다 보인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가는 인물이다. 특히 영화의 말미에서 핼리(무니의 엄마)와 아동복지국 직원이 싸우게 되었을 때. 바비가 보기엔 (핼리가) 돈을 쉽게 버니 뭔가 수상하지만 일단 무니는 핼리의 딸이니 그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 같다. 방문객이 오면 무조건 본인에게 데려오라고. 그 장면을 포함해 모든 면에서 애정이 간다.


박: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가 떠올랐다. 예전에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을 여럿 낳은 한 여성이 또 다른 남자와 도망가고, 그 후 아파트에 아이들끼리만 남겨져서 살면서 일어난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실화에서는 더 비극적이었는데 영화에서도 결국 그 아이들 중 한 명이 죽고 아이들끼리 장례식을 치른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아이들이 디즈니랜드로 도망간 후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두 영화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짚자면 어른의 존재일 것이다. 이 영화에는 비교적 '제대로 된' 부모라고 볼 수 있는―아이의 일탈을 제재하는― 바비라는 어른이 있다. 그런 부모의 존재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그림8] 무니의 엄마 핼리는 무니의 친구같은 존재이다


강: 아프리카 속담 중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딱 이 경우에 적용되는 것 같다.


곽: 일반적 양육의 관점에서 보자면 (핼리가 무니를) 안 좋은 방식으로 기르는 것 같지만,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저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보호자는 저 엄마인데, 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거주의 틀


강: 오히려 제도권에서의 방식이 안 맞는 사람들이다. 건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건축가가 짜서 준 틀보다는 그들만의 룰을 갖고 삶을 살아가는 거지. 그 방식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그들은 나름대로 잘 하고 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아동보호국 사람들이 주인공 세대에 찾아와 갈등이 일어난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는 정부와 격리가 옳은 조치인데 나는 가족의 편을 들게 되고 그들의 생각에 설득된다.


곽: 건축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물리적으로 '좋은 가정, 좋은 교육'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들이 그대로 살 수 있게 하는 제반 환경이다. 엄마를 '좋은 엄마'로 바꾸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니다. 돈이 있었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이 생활을 유지할 만큼의 돈만 있다면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테니까.) 건축을 어떻게 제안할 것인가와도 조금 맞물려 있는 것 같다.


홍: 정부나 전문가들, 계획을 하거나 사람들의 일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들을 만드는 사람들이 중요한 것 같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잘 짜야 한다. 공간을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내용이 중요하다.


강: 그 내용의 답은 당사자가 아니면 찾기 힘든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선 (건축가 등의 전문가들이 개입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데, 왜냐하면 완벽하게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답을 제시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건축가가)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지을 때, 영화를 통해 보는 아이들의 삶이라든지 일반 범주 밖의 가정들의 삶을 이해했다 해도 그걸로는 부족하다. 그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있으니 프로그램은 당사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앞서 언급된 '토레 데 다비드'나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의 사례들은 사용자들이 직접 건축에 개입하므로 이에 부합한다.


홍: 너무 제 3의 입장에서만 봐선 안 될 것 같다. 직접 사용자가 되었다고 생각해야만 무언가 좋은 것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강: 다른 프로그램이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주거에는 그런 부분이 아주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자하 하디드가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지으면서 한국에 잘 오지도 않았지만 먹히긴 한다. 왜냐하면 그건 공공건축으로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아파트가 욕을 많이 먹는 것 같기도 하고.


박: 나는 그런 의미에서 아파트가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삶에서 기본적인 주거 기능만 주어지고, 똑같은 주거 기능을 가진 공간을 거기에 사는 사람이 직접 꾸미는 거니까. 같은 라인의 집이라도 1005호와 1006호가 다르게 생겼지 않나. 그 모듈 안에서 공간을 개인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아파트는 부정적인 것이 아닌 것 같다.


곽: 똑같은 아파트 라인의 집들을 똑같은 높이에서 찍어서 만든 사진 작품이 있다. 그런데 보면 다 아주 다르게 생겼다. 몰딩도 어떤 사람은 체리색으로, 다른 사람은 베이지로 하고, 벽지도 다 다르고.


강: 국립현대미술관의 《문명: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전시에서 세계 모든 도시의 호텔 사진을 찍은 작품을 본 적 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호텔 평면 디자인은 똑같으니까 방은 다 똑같은데, 창 밖을 보면 어디에는 서울타워가 있고 어디에는 에펠탑이 있고. 그런 작품도 있었고, 우리나라의 아파트 내부를 가족들의 모습과 함께 찍은 작품도 있었는데 (앞서 언급된) 그 작품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곽 : 어떤 환경을 주더라도 개인화는 알아서 다 한다.



틀의 가능성을 여는 것


박: 최근 몇년 사이 한국에서 주택 용도로 만든 건물 안에 카페나 술집 같은 가게가 들어오는 것이 유행을 타고 있다. 밖에서 봐서는 그냥 주택인 것 같은데 안을 보니 뜬금없이 카페가 등장하고, 그 내부 공간은 카페 주인만의 감성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고. 그런 것―'집을 다르게 보게 하는 것'―에 사람들이 왜 열광하는지도 생각해볼 만한 것 같다.


[그림9] <Final Wooden House>, Sou Fujimoto


홍: 가능성이 많은 공간, 다양한 행위를 할 수 있고 개인이 알아서 맞춰갈 수 있는(개인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공간이 매우 종요하다는 결론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소우 후지모토가 만든 <파이널 우든 하우스(Final Wooden House)>는 감성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거의 파빌리온의 성격에 가까워져 버린 사례다. 나무 도막을 올려놓고 사람 스케일에 맞춰서 세 단계로 나눴다. 앉아있을 때 적당한 높이, 앉았을 때 책상정도 되는 높이, 그리고 바닥 높이. 나무 블럭을 다양한 방식으로 쌓아서 이렇게 앉으면 의자와 책상이 되고 조금 많이 연결되면 침대가 되고 하는 식으로 다양한 활동이 자연스레 일어날 수 있게 만들었다. 그게 주택으로 기능하기를 원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열어 주면 살기가 쉽지 않다.


곽: 그런 건 좀 당황스러울 것 같다.


박: 나는 방금 자료 사진을 보고 좀 웃겼다. 우리도 막 그냥 밤 새다가 책상에서 자고, 그러니까 책상이 침대가 되고. 이런 게 떠올라서.


홍: 가능성의 경계가 정말 애매한 것 같다. 어렵다.


곽: 그렇지. 아예 열어줘버리면 (주거 시스템보다는) 예술작품처럼 느껴지니까.


강: 그래서 건축가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인가 하는 것이 항상 논란이 되는 것 같다. '열어준다'고 하면 그냥 큰 실을 하나 주면 되는 것인지, 더 세부적으로 프로그램을 정교하게 짜서 줘야 하는 것인지.


곽: 다양하게 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확실히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론 주택을 설계할 때 옵션을 주는 것―제한하는 것―과 사용자에게 맞는 환경을 주는 것은 좀 대립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거주자를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과 그를 위한 공간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


박: 사람들이 가능성을 열어 두는 건축을 그렇게 좋아하나? 노래 추천이나 영화 추천을 받는 걸 보면,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은 찾아주는 걸 좋아하지 찾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그걸 좋아하냐고 물어봤을 때, DIY(Do It Yourself)를 하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 어떻게 생각할지가 궁금하다.


강: 그런('찾아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좀 많은 것 같다. 바쁘니까. 그래서 평면이 어느 정도 획일화된 게 대량으로 공급되는 거고. 아파트처럼.


박: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공간을 구성한다기보다는, 예를 들어 '이 벽을 뚫고 뭔가를 만들어야겠다' 하는 게 아니라 '이 벽을 어떻게 꾸며야겠다' 하는 소극적인 꾸미기를 하니까. 어느 정도는 건축가가 제한을 두면 그 안에서 사람들이 각자 개인화를 해 나가는 거지.



새로운 공간 유형


강: 그래서 카페 같은 것들이 주거평면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 같다. 집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을 꾸미는 걸 지칭하는 단어가 있던데, '나래바' 처럼.


박: 우리가 대화하고 있는 이 공간은 원래 술집인가?


강: 내 생각엔 여길 카페로 쓰다 장사가 잘 안 돼서(웃음) 바꾼 것 같은데,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곽: 이런 것도 일종의 공유공간이지. 저녁에는 돈만 내면 아무나 대관해서 쓸 수 있게 하니까.


김: 파티룸이라라는 새로운 공간 유형이 최근에 생기긴 했다.


박: 그런데 또 그런 공간을 사람들이 찾게 되는 데에는 SNS 등에서 '보여지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 공간이 건축적으로 좋아서 갈 수도 있겠지만, 공간 방문의 이유에는 예쁜 공간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도 있을 법 하다.


강: 요즘은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예전의 커뮤니티가 물리적 커뮤니티였다면 지금은 SNS를 통해 보이지 않는 커뮤니티들이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 커뮤니티를 위해, 소통하기 위해 내가 뭔가를 해야 하고, 보여 줘야 하고. 그래서 대림미술관 같은(포토스팟으로 유명한) 곳에 사람들이 많이 가서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한다. 물론 그런 시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유공간


곽: 일부러 그걸 노리고 (전시 주최 측에서도) 포토제닉한 작품들을 많이 놓는다. 이러한 상황들을 보면 '공유'가 되게 핫하다고는 느껴지지만 공유 주거는 잘 안 되고 있는 느낌이다.


박: 프로그램이 (기존 목적과 다르게) 전환되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와 반대되는 경우가 에어비앤비다. 퓨처랜드 모텔은 숙박 시설을 주거 용도로 사용했다면 에어비앤비는 주거 시설을 숙박 용도로 사용한다. 문자 그대로의 '공유 주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주거 시설을 숙박을 위해 내 주는 경우는 많아도 타인과 함께 살기 위한 집을 짓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곽: 맞다. 한 공간을 시간별로 나눠서 각각 다른 사람이 사용하게 하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요즘 아파트를 하나 사서 각 방을 쓰고 거실을 공유하는 서비스가 있는데, 찾아보니 매출이 별로 안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주거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운영이 잘 되고 있는 사례들을 보면 오히려 필수적인 기능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커뮤니티를 공유하거나 이미지를 공유하거나―앞서 말한 파티룸처럼― 하는 경우다.


강: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것. PC방이나 노래방도 그렇고. 이제 가면 갈수록 그게 조금 더 세분화되는 것 같다.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프로그램과 서비스들이―방탈출―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박: 사람들이 PC'방'이나 노래'방' 등으로 도망가는... 숨는다고 표현하기엔 좀 그렇지만, 어쨌든 숨는 이유는 지금까지 건축가들이 적당한 공공의 장소를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적당한 거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쌓아나갈 만한 그런 공간들을.



공유공간: 카페


홍: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한국에 카페가 제일 많다고들 말한다. 집에 거실이 있고, 방도 잘 꾸미면 카페 용도로 쓸 수 있는데 굳이 왜 카페에 나와서 공부를 하거나 온갖 일들을 다 할까.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을 만나고, 공부도 하고 회의도 하고. 카페 이슈나 방 문화는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김: 『알파하우스를 꿈꾸다』라는 책에서 카페라는 공간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말한 대로 카페는 커피 마시는 곳인데, 사실 그 기능은 집 공간만 꾸미면 굳이 거기까지 안 나가도 다 누릴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카페로 나가는 것은 그 공간이―단순히 커피집을 넘어선― 제 3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공간 유형의 특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알파룸'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옛날 중세시대에 있었던 살롱 문화와 고려시대에 양반들이 시 쓰고 대작하고 했던 정자, 그리고 현대로 이어지는 카페. 인간이 질 높은 삶을 누리려면 그런 제 삼의 공간이 필요하다. 주거 공간도, 워크 스페이스도 아닌, 어떤 용도에도 국한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적당히 노출된 공간이. 그런 정의를 내렸었다. 


강: 홍익대학교 유현준 교수님께서는 카페를 (둘러싼 현상들을) 현대적인 의미의 거실이라고 하셨다. 예전에는 대가족의 경우 방에서 나오면 마당이 있었고, 시간이 지나 지금은 마당이 아파트의 거실이 되었다. 거기가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는 공간이었는데 1인 가구가 아주 많아진 요즘은 그렇지 않다. 대학생들은 특히나 더 그렇고, 그러다 보니 주거단위가 완전히 그냥 방 하나가 되어 버렸다. '원룸.' 거기에서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려면 이제는 거실이 아니라 카페를 가야 하는 거다. 녹지가 부족해서 상황이 이렇게 흘러왔다는 말도 하셨다. 뉴욕을 예시로 들었는데, 그곳은 녹지계획이 잘 되어 있어서 도보로 5분-10분이면 공원이 나온다. 하지만 한국에는 앉아서 쉴 만한 그런 공간이 없다 보니 계속 카페로 향하는 거라고. 사실 밥을 먹거나 영화를 봤는데 나와서 갈 데가 없으니 카페로 가지 않나.


김: 어디 가서 앉아있으려고 해도 의자가 있는 마땅한 곳이 없으니까. 공원이 있으면 갈 텐데.



마치며.

건축가는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적절한 개입은 어느 선에서 일어나야 하는지, 월권하여 거주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면 어디까지 계획해야 하는 것인지. 과연 아이디어만으로 그려낸 스케치가 거기서 직접 삶을 가꿔 나갈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가능한 일일지.


무지개와 디즈니랜드, 저물어가는 하늘 아래 휴양지의 풍경까지. 나열되는 이미지들을 보면 얼핏 전혀 '건축적이지 않은'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플로리다 프로젝트> 속의 사람들과 그들이 이루는 커뮤니티, 모텔에서의 삶의 모습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배경이 되는 공간들은 꽤 직접적으로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여전히 그 고민의 답은 모르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거주자들의 삶이 빚어내는 가능성을 믿고 그를 해치지 않되 적당히 지탱해줄 만큼의 틀을 만드는 것이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커뮤니티 이슈에 집중하여 선택했던 이 영화의 모든 면면에서 예상치 못하게 건축과 마주쳤던 것처럼, 건축은 사회와 개인의 삶에 깊숙하고 다양하게 관여하고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WRITTEN BY

프로잡담러 I |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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