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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Sep 16. 2022


유학생의 기억 속 고향 엿보기

11호_건축과 거리두기_일상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 F

게재 : Vol.11 건축과 거리두기, 2020년 봄

인터뷰이(참고) : 아이나, 멘리, 우형, 마이사



"너가 기억하는 고향은 어떤 모습이야?"


해외여행은 참 꿈같은 얘기가 되어버렸다. 가보 고 싶은 곳은 많이 남았는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코로나바이러스는 비행기가 뜨도록 놔두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전처럼 해외여행을 가 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는데,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건축학을 배우면서 이곳저곳의 유명한 건축물들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며 설계의 아이디어를 얻고는 했는데, 새로운 생각이 말라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대목이다. 


하지만 직접 발을 딛고 돌아다녀 봐야만 여행인가. 내가 갈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의 기억 속의 도시들을 끄집어 내보고 싶었다. 특히 한국에 서 건축을 배우고 있는 건축학과의 유학생들은 그들이 살던 곳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모르는 새로운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가는 기분이, 마치 비행기에 올라탈 때의 두근거리는 발걸음과 닮은 느낌이 든다. 이제 이 글에서는 유학생들이 살던 곳의 건축에 대해 인터뷰하면서 여행을 떠나보려고 한다.


인터뷰에 응해준 4명의 유학생은 우리에게 다 소 낯선 나라인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중국, 예멘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와 건축을 공부하고 있다. 그들의 고향에 대한 질문에서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길 기대한다.


Q. 본인이 살던 도시는 어디에 있는지 짧게 설명해달라.

아: 저는 카자흐스탄의 서쪽에 있는 도시인 아트라우(Atyrau)에서 살았어요. 우리 동네는 비교적 작았고, 기반시설이 좀 낙후된 도시 중 하나였어요. 인구는 18만 명쯤 돼요. 도시 한 가운데에는 우랄(Ural)이라는 이름 의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는 도시를 아시아와 유럽으로 나누는 호수라서 유명한 곳 중 하나이기도 해요. 우리 동네에는 멀지 않은 거리에 석유 공장이 있어서 외국인이 많이 살았어요. 그리고 또 다국적 기업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 외국인들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던 기억이 나요. 우리나라(카자흐스탄)의 큰 도시 중 하나인 알마티(Almaty) 까지는 비행기로 2 멀지 는 않아요.


멘: 나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인 아시가바트(Ashgabat)에서 왔어 요. 나의 두 부모님은 다른 도시에서 여기로 오셨고, 나는 아시가바트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부모님의 벌이는 꽤 넉넉하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는 Grajdanskaya street이라는 매우 낡은 거리에 있는 집에서 살았어요. 그 거리에는 도둑질하거나 싸움질을 일삼는 불량한 10대 애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그 길은 매우 무서운 도로였던 것으로 기억이 나요. 또 한편으로 이곳에는 또 내가 살면서 먹어 본 빵 중 가장 맛있는 빵을 파는 곳이 있는 곳 이기도 해요. 빵 이름은 탐디르(tamdyr)인데 가격도 매우 싸서 아이들도 곧 잘 사 먹을 수 있었어요. 이 맛있는 빵을 위해 다른 도시 사람들이 오기도 했는데, 나는 이걸 매일 사 먹을 수 있었어요! 하나를 사서 애들하고 나눠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한국에 있는 지금도 가끔 그때가 그리워요.


우: 중국 상하이에서 살았었고, 한국에서 비행기로 아마 2시간 정도 걸려요. 와이탄이랑 번화한 도시의 모습이 유명한 곳이고, 중국에서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라서 밤 풍경이 볼만해요.


[사진1] 상하이 전경


마: 높은 고지에 있는 예멘의 도시인 타이즈(Taiz)에서 살았는데, Jabal Sabr라는 산자락에 있는 도시였어요. 이 산 높이는 3000미터쯤 되는데 예멘의 수도에서 250여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에요. 여기는 예멘의 큰 도시 중 하나인데, 인구는 예멘 전체에서 3위인 도시이고 내가 사는 주의 주도이기도 해요. 여기는 또 꽃과 과일, 그리고 강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해서, ‘예멘의 다마스쿠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요. 도시 가운데에 있는 산의 맨 꼭대기에는 카이로 성(Cairo Castle)이라는 성이 있는데 이것으로도 유명한 곳이에요.


Q. 그곳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바로 떠오르는 첫번째 이미지는 무엇인가?

아: 아트라우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당연히 강가죠. 강이 엄청 이쁘고 잔잔하니 고요해서 밤에 산책하기에도 좋아요. 밤산책으 로 강가의 도로를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멘: 낡은 길거리가 생각이 나요. 지금 아시가바트는 (재건축 등 공사를 해 서) 새 도시가 되어서 옛날의 낡은 모습은 좀처럼 찾기 힘들어졌지만, 내 기억 속의 아시가바트는 아직 낡은 거리와 건물이 즐비한 곳이에요. 어쩌면 나는 아직 새 도시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우: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도시에 지나는 넓은 강이랑 그 양옆으로 알록달록 빛나는 빌딩들이에요.


마: 무엇보다 역사적인 유적들이 많은 오래된 도시의 모습이 떠올라요. 그리고 타이즈는 고대 이슬람 시대부터 지금까지 예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예멘의 문화적 수도’로도 알려져, 가장 먼저 고풍스러운 도시 모습이 떠오르죠.


Q. 본인이 살던 집은 어떤 모습인가?

아: 제가 살던 집은 평범한 1층짜리 집인데, 앞에 넓은 마당이 있어서 종종 꽃이랑 과일나무를 심어서 길렀어요.


멘: 그냥 (한국의) 아파트 같은 집에 살았어요. 한국처럼 높은 아파트는 아니고, 4층 정도의 낮은 아파트에요. 그거 말고는 큰 차이는 없어요.


우: 집이 여러 개인데 그중 제일 자주 사는 집은 방 총 3개 있고 화장실 2 개 거실 2개 그리고 발코니 남북쪽 하나씩 있었어요. 인테리어는 대체로 모던한 디자인이고 검은색과 흰색, 갈색으로 인테리어 되어있던 기억이 나요. 벽에는 골동품 장식품 많고 집에는 분재 같은 것도 많았어요. 내방은 남쪽에 있어서 채광이 아주 좋아서 그냥 내 방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내 책상 옆에는 피아노가 있는데, 이제는 잘 안쳐서 그냥 책장처럼 쓰고 있어요. 그리고 제일 큰 방은 엄마의 침실이고 제일 작은 방은 엄마의 옷장 및 창고로 쓰고 있었던 기억이 나요.


마: 지하실이 있는 2층짜리 집에 살았고 11개의 방이 있었어요. 입구로 들어가면 1층으로 들어가면 큰 석재 아치가 있는데 이것이 집안에서 홀 과 나머지 방들을 나누고 있었죠. 홀에서 거실과 식당으로 작은 아치를 통해 연결됐고, 또 집에는 주방이랑 서재, 그리고 응접실이 있었어요. 2층은 4개의 침실, 그리고 독서실, 주방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거실이 있었어요.


Q. 집 주변 거리의 모습을 묘사해 달라.

아: 도시의 중심부에 살았기 때문에 강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집에 갈 수 있었어요. 이 길을 따라가는 중에는 신선한 식자재를 살 수 있는 전통 시장이 있어서 자주 들르곤 했어요. 거기서 좀 걷다 보면 우리 집이 나오는 데, 우리 집 주변은 그냥 아파트들만 있는 곳이라 별로 사람들이 놀러 올 만한 곳이 없어 꽤 조용한 편이었어요.


멘: 집 주변 거리에는 놀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었는데, 거리가 그냥 놀이터와 같았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 밖에서 애들과 많이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건물들은 3~4층 높이로 별로 높지도 않아서 정겨운 감도 있었고... 또 언제나 엄마들이 아이를 집으로 부르는 소리, 아니면 아이들한테 좀 조용히 놀라고 핀잔을 주는 소리, 집에 와서 밥 먹으라는 소리 등이 들려오곤 했어요.


우: 산책로 따라 10분 걸면 놀이터가 있고 동네에는 녹지가 엄청 많았어요. 인공연못 같은 것도 많고 (아파트 단지의) 정문은 큰길로 바로 이어졌어요. 정문에서는 경비원이 지키고 있어서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을 검사하고 방문하는 사람들의 방문기록을 적었어요. 그래서 외부인이 마음대로 들어가지는 못했어요. 여기서 5분 정도 걸으면 바로 기차역 있었고, 15분 정도 걸으면 백화점과 한국기업의 대형마트가 있었어요.


마: 우리 집은 넓은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딱히 주변 거리라고 부를 만 한 것이 있지는 않았는데. 굳이 말하자면 집 주변에는 돌 블록으로 만들어진 길이 있었어요.


Q. 자신의 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의미 있는 장소는 어디인가?

아: 도시에 있는 다리가 가장 의미 있는 장소 같아요. 이 다리는 우리 도시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 역할을 하면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우리 도시에 있는 장소 중 가장 상징적인 장소인 것 같아요. 다리를 천천히 건너면서 느낌과 의미가 다른 두 가지 다른 구역을 구경해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것 같아요.


멘: 아마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밤에 가는 근처의 공원인데요. 공원으로 가족끼리 혹은 친구들이랑 소풍을 가곤 했던 기억이 종종 나서, 좋은 추 억이 많이 맺혀있는 곳이에요.


우: 상하이하면 아무래도 와이탄이죠. 다양한 스타일의 건물들이 많이 있어 건축학도가 아니더라도 눈이 즐거운 뿐만 아니라 상하이의 번화한 모습을 한눈에 즐길 수 있는 곳이에요. 상하이는 정말 다양한 문화가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이렇게 형형색색의 다양한 건물들이 그런 상하이의 문화적 다양성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해요.


마: 도시 중심에 있는 산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거기에 올라가면 도시 전체를 볼 수 있거든요. 그리고 밤에 간다면 도시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에요. 감동적인 광경이니까 우리 도시에 들르게 된다면 소개해주고 싶은 곳이에요.


Q. 추천해주고 싶은 현지의 숨은 건축여행지가 있는가?

아: 우리 도시에 오면 먼저 모스크를 방문해 보기를 추천해요. 내가 사는 도시는 많이 낙후되어 있기 때문에, 딱히 볼 만한 것이 많지는 않아요, 그런 와중에 이 모스크는 잘 꾸며져 있기 때문에 여행자로서 방문하기에는 좋은 곳일 거예요. 그리고 한국에서 이슬람 건축이 생소한 만큼 모스크에 들러 보는 게 좀 색다른 경험이 될 거예요.


멘: 딱히 숨은 명소는 아니지만, 중립기념비(Neutrality monument)라 고 우리나라가 중립을 지키기로 하면서 설치한 기념비가 있는데, 여기에 올라가서 보는 전망이 엄청 좋아요. 세 개의 기둥으로 카메라 삼각대처럼 받쳐져 있어서 되게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어요.


[사진2] 투르크메니스탄의 중립기념관


우: 쓰난루를 추천하고 싶어요. 쓰난루(思南路)는 옛 프랑스의 조계지였는데, 그래서 고풍스러운 서양식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와이탄하고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이런 건물들에 예쁜 카페나 식당도 많아서 둘러보고 잠깐 머물러보기 좋아요. 특히 쓰난공관(思南公馆)에는 *타 벅스 리저브 매장이 있는데 여기가 분위기도 되게 좋아요.


마: 예멘의 수도인 사나(Sana'a)의 구도심과 사막의 맨해튼이라고 불 리는 시밤(Shibam)을 추천해주고 싶어요. 말 그대로 맨해튼처럼 아파트를 닮은 건물들이 사막 한가운데에 모여 있어요. 엄청 오래된 건물들임에 도 불구하고 높은 건물들이 많아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되어 있어요.


[사진3] 시밤의 도시 전경


Q. 추가질문+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고향에서 건축과 관련 하여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아: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딱히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아 요. 졸업하면 바로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한국 외의 다른 나라에서 학업을 이어나가고 싶고, 우리나라가 아니라 그곳에서 일자리를 찾고 싶어요.

멘: 나는 우리나라의 환경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건축을 배워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고, 또 자연과 잘 연결되고 융화되는 건축을 하고 싶어요.


우: 구체적이진 않지만, 고향에 돌아가면 개인 주택을 설계하면서 일을 하고 싶어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는데, 건축 공부를 하다 보니 한사람에게 꼭 맞는 주택을 지어주는 일에 매력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만약 일하게 되면 인테리어를 전문적으로 하는 건축가가 되 고 싶어요. 그리고 중국에는 아직 미개발된 도시가 많아서 그런 개인 주택 설계가 또 뜨고 있기도 하거든요.


마: 졸업하면, 경험을 얻기 위해 여기 한국에서 어느 정도 일을 한 다음 예멘으로 돌아가 건축일을 하고 싶어요. 예멘에서는 몇몇 군데에서 전쟁 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그동안 많은 건물이 전쟁으로 파괴되었어요. 그래서 졸업하고 예멘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전쟁 때문에 파괴된 곳들을 복원하고, 우리나라가 가진 소중한 전통건축을 파괴로부터 보호하는 데에 힘쓰고 싶어요.



  


WRITTEN BY

프로잡담러 F | 신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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