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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Aug 08. 2022

전주에는 초코파이만 있는 게 아니다

12호_건축과 보름달_특별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 I

게재 : Vol.12 건축과 보름달, 2020년 여름



와! 한옥마을 아시는구나!


 


1. 전주=한옥마을


바야흐로 7년 전, 내가 "나 전주로 이사 간다"라고 말하면 친구 열 명 중 아홉 명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아! 비빔밥!"이라고 말했다. 전주는 비빔밥과 동치되는 단어였다. 이 무슨 천안 특산물이 호두과자라는 것 같은 말인가? 그야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는 한반도 지도에 지역별로 생산되는 특산물 그림을 그려놓고 가르쳤었고, 개중 '전주 비빔밥'은 외우기 쉬운 조합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다. 전주는 바로 한옥마을이다. "본가는 전주에 있습니다." 하면 "아~ 저 한옥마을 가 봤어요!"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자매품으로는 "저 초코파이 진짜 좋아해요!" 도 있다. 전주의 특산물은 이제 초코파이가 된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실 내가 가진 전주의 첫인상 또한 한옥마을이다. 2013년 12월, 중학교 3년을 끝내고 졸업을 앞둔 시점이어서였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타지로 다 함께 놀러 와서였는지, 쌀쌀한 겨울밤 한옥마을을 인파를 따라 가족들과 함께 걸으며 '관광'했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내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따뜻한 빛이 흐르는 야경이 아직 선명하다. 서울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이것대로 고즈넉한 맛이 있다고, 북촌 한옥마을은 낮이, 전주 한옥마을은 밤이 더 멋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또한 기억하고 있다. 이 생각은 전주 한옥마을은 (본가에서 한 시간 걸리는) 동네가 되고 북촌 한옥마을은 관광지보다 제 2의 서식지에 가까워진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사 온 후 만난 전주의 지인들은 한옥마을이 화제로 나올 때마다 한 마디씩 아쉬운 소리를 얹었다. 그들은 현재의 한옥마을을 연민한다. 과거에 비해 좋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관광지로서의 한옥마을을 호평한 관광객으로선 그 불만의 말들이 ―그들의 초코파이에 대한 저평가만큼이나― '원주민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 배경을 모르지 않으므로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다. 그들에게 한옥마을은 오랫동안 삶의 배경 중 하나였다. 그 장소성이 관광지로서의 정체성에 먹혀 버렸단 것이 불평의 주된 내용이다.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던 것을 깊이 공감하게 된 것은 친구의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을 때였다. 어젯밤 야자를 빼고 사라졌던 친구에게 어디를 다녀왔냐고 물으니 한옥마을의 정자에 올라가 퍼져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평일 저녁에 가끔 가서 그러고 있는다고 했다. 거기서는 한옥마을의 저녁 정경이 한눈에 보인다고. 보지 않아도 떠올릴 수 있는 심상이었다. 과연 한복을 입은 인파와 길거리 음식으로 대체하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경험이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말에 한적한 평일 오후 해가 기울어갈 즈음, 따뜻한 빛이 흐르는 적막한 거리를 걷기를 좋아한다고 답할 수 있는 것은 이곳 주민의 특권일 것이다.




2. 형성 배경


누군가에겐 소풍지, 누군가에겐 초코파이의 원산지인 한옥마을은 일제강점기 일제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이 한옥을 짓기 시작하면서 발전했다. 그렇게 교동과 풍남문 일대에 700여 채의 한옥이 지어졌다. 당시 근대 도시형 한옥들로 형성된 부촌이었던 마을은 전주의 핵심지 역할을 수행하며 교육, 문화, 상업 등을 폭넓게 담당했다. 하지만 제조업의 발전 및 외곽으로의 중심지 이전에 따라 쇠퇴하였고, 한옥 보존을 위한 엄격한 건축 규제 때문에 자본주의의 선택 또한 받지 못한 채 퇴락해 갔다.


그러던 중 극적으로 재기를 위한 동력을 얻게 된다. 전주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대회 장소로 선정된 것이다. 관광도시 전주를 목표로 한 부흥은 성공적이었으며, 이는 오랫동안 '잘 보존된 한옥 군락'이었던 한옥마을이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 한옥촌이자 전국 유일의 도심 한옥군'인 관광지로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3. 관광지로의 개발


3-1. 공간 문화적 흐름

한옥마을이라 하면 객사를 중심으로 한 다수의 중요 문화재 집결지여야겠으나, 포털에 '전주 한옥마을'을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사진은 주로 다른 것들이다. 대중화된 코스는 대략 '한복 대여점에서 한복 입기―입구의 전동성당에서 사진 찍기―돌담길 따라 걸으며 사진 스팟 찾기―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유명 길거리 음식들 도장 깨기'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더할 나위 없는 관광 투어 루트다.


한옥마을을 관광지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본토인이 경계하고 타지인이 찾아드는 한옥마을의 ‘관광지로서의 정체성’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먼저 수치를 통해 찾아보기로 했다. 한옥마을의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총 947동(이 중 735동이 한옥이다)의 건물에 575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다. 분야에 따라 세분하자면 숙박업체 203개, 식음료업체 183개, 기타 판매 및 대여업체 189개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주관적인 경험을 덧입혀 보자. 나의 체감상 한옥마을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길거리 음식점과 기념품점, 때때로 한옥 펜션이다.


다른 한옥마을인 서울 북촌(더하여 서촌까지) 한옥마을도 거주지보다는 장소로서 인식되는 편이지만, 전주 한옥마을과는 장소의 유형이 다르다. 그 차이점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러한 구성요소의 차이일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에는 다른 두 장소에 비해 길거리 음식점과 기념품점 등의 업체 비중이 높아 '관광지' 느낌을 강화하고 있다. 그것도 입구에서 이어지는 메인 대로를 따라 줄지어 있어서 더더욱 그렇다. 친구들이 불평하는 것은 바로 이 풍경이 아닐까.


3-2. 근방 지역의 흐름

각자 체감하는 바가 어떻든 관광지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진 한옥마을은 그에 적합한 건물 유형과 상권이 대부분을 장악한 상태다. 지역의 수요가 커지면 땅값과 임대료가 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 또한 아주 자연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조그만 식당과 카페, 혹은 자기 몫의 작은 공간이 필요한 작업자들이 향하는 곳은 그 근방이다.


한옥마을의 근방에는 객사와 남부시장이 있다. 객사는 전주의 명실상부 '핫 플레이스'다. 지방 도시에서 들을 수 있다는 "몇 시에 시내에서 만나!"의 '시내'를 담당하고 있다는 말이다. 시내답게 여느 도심지에서 볼 수 있는 식당, 카페, 옷가게, 서점 등이 혼재해 있다. 다채로운 먹거리과 감각 있는 마케팅으로 떠오른 남부시장 또한 그에 못지않다. 여름밤 정기적으로 열리는 큰 규모의 야시장과 개성 있는 간판을 단 청년 창업자들이 모인 '청년몰'이 유명세의 큰 지분을 차지한다. 대로변을 따라 한옥마을과 이어지는 이들은 관광코스로 엮이기에도 좋으므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며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가장 핫한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전주우체국에서부터 다가동까지의 400m 남짓한 웨딩 거리, 일명 '웨리단길'이다. 2003년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조성된 후 결혼 관련 업소들이 다수 입주하며 웨딩거리로서의 정체성을 얻었으나 결혼 인구가 감소하고 결혼식이 간소화됨에 따라 쇠퇴하게 되었다. 이곳을 부흥시킨 것은 바로 예술인들이다. 한옥마을의 관광 명소화에 따라 옆 구역인 동문예술거리의 지가가 상승했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내몰린 이들이 입지와 지대가 균형 잡힌 웨딩거리로 모여들게 된 것이다. 각종 공방과 예술 강좌 공간, 편집샵, 화방, 플리마켓 등의 공간이 골목 여기저기에 자리 잡자 자연히 이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요즘은 여기에 소소하게 힙한 가게들이 더해지면서 밤을 밝히는 추세다. 개성이 확실한 술집과 시즌별로 메뉴가 바뀌는 식당 등, '내 공간' 삼기에 좋은 가게들이 골목의 주를 이룬다.




4. 원주민과의 인터뷰

나는 아직 이방인이다. 적을 옮긴 지 햇수로는 7년이 되었지만 전주에서 지내는 내내 내가 발 디뎌 본 곳이라고는 학교와 집과 학원, 기껏해야 학원 근처의 카페를 탐방하는 정도가 다였다. 대학 진학 후로는 방학에나 간간이 들러서 내 방 침대에만 들러붙어 있다가 다시 상경하기 일쑤니 전주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 턱이 없다. 그러니 장소의 변화나 아쉬움에 대해서는 나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발붙이고 살아온 사람에게 의견을 들어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5년여 전 야자를 빼고 한옥마을에 산책을 다녀왔던 친구에게 솔직한 성토를 요청했다.


1. 현재의 한옥마을에 어떤 아쉬움을 느끼나?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상업화. 한옥마을의 골목을 돌아다니자면 전부 다 주전부리 가게거나 한복 대여점이다. 이런 풍경에 위화감과 큰 아쉬움을 느낀다.


2. 관광지화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체감하나? 어떤 차이인가?

우선 경기전이 무료입장이었다. 어린이집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소풍이나 현장학습을 가자고 하면 무조건 경기전(한옥마을) 또는 전주동물원이었다. 전주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가장 만만하게 나갈 만한 곳.


- I: 그래서 고등학교에서 현장학습 장소 투표하면 무조건 에버랜드/롯데월드가 나왔구나.

그렇지. 일단 전주는 벗어나고 보자고.



아… 베테랑칼국수 맛이 바뀌었다. 어릴 때가 맛있었는데. 문꼬치 자리에 2층짜리 파리바게트가 있었다는 건 너무 TMI인가?


- I : 상업화가 이루어진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하나?

대략 2014년쯤부터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전후를 비교해 보라면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사실 상업화는 아주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던 것 같다. 그즈음 본격적으로 관광지로서의 정체성이 커졌을 뿐이고.


3. 타지 친구들이 한옥마을을 방문한다면 소개해줄 곳이나 추천할 코스가 있나?

한옥마을에 가면 하와이안 레시피와 노매딕에 가야 한다. (주: 하와이안 레시피는 수제커리와 디저트를 파는 음식점이고 노매딕 브루잉 컴퍼니는 수제맥주 양조장이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한옥마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들이다.) 전주 친구들과 놀러 가거나 혼자 나들이 나갈 땐 주로 저기에 들른다.


상업화가 별로라느니 너무 많이 변했다느니 불평하고 있긴 하지만, 관광객에게라면 한복 체험을 하며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사진을 찍는 코스가 괜찮은 것 같다. 나도 타지의 관광지에 가면 그렇게 즐긴다. 길거리의 주전부리들도 괜히 유명해진 게 아니다. 정말로 맛있는 것들이 몇 있으니 찾아서 먹어보면 좋다.


한옥마을 옆구리로 빠져나오면 이어지는 오목교와 남천교 위의 정자에서는 일대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 앉아서 쉬면 좋다. 소소하게 볼거리라면 밤에 경기전 앞에서 버스킹을 하기도 하니 가 봐도 괜찮다. 이런 식으로 여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하루면 충분히 다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밤의 풍경을 반드시 봐야 하니, 관광객이라면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라.


참고문헌

저자미상. (연도미상). 전주한옥마을 공식 웹사이트. http://hanok.jeonju.go.kr

임병식. (2002). 전주 웨딩거리가 뜬다. http://www.domin.co.kr

김보현. (2017). 동문예술거리 예술인은 어디로 갔나. http://www.jjan.kr

천경석. (2019). 전북의 길, 길에서 미래를 찾다. https://www.jjan.kr





WRITTEN BY

프로잡담러 I |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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