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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Aug 15. 2022

<장화홍련전>으로 보는 소설 속 공간 들여다보기

13호_건축과 동화_특별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 B

게재 : Vol.13 건축과 동화, 2020년 겨울

 

모든 이야기에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 즉 세계관이 존재한다. 그 세계관은 작가의 상상 속에서 새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실제 존재하는 세계의 일부일 수도 있다. 작가는 자신이 정한 이야기의 세계관 속의 특정 도시, 공간, 시간 안에서 사건을 전개시킨다. 만약 이야기의 세계관이 실제 시공간을 배경으로 했다면 우리는 이야기의 맥락을 읽으며 주인공이 살아 숨쉬는 공간을 실제적으로 재구성해볼 수 있지 않을까? 고전 소설 <장화홍련전>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되짚어가며 장화와 홍련이가 고난을 겪고 사건이 해결되는 공간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1.<장화홍련전>


소설 <장화홍련전>은 조선 세종 재위 시절 평안도 지방에서 일어났던 ‘계모의 학대로 인한 두 자매의 사망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로, 조선 전기 북부지방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평안도에서 좌수의 관직을 하던 배무룡에게는 어렵게 얻은 두 딸 장화와 홍련이가 있었다. 장화와 홍련이의 생모는 자매를 낳고 얼마되지 않아 사망하였는데, 이후 부인으로 들어와 장쇠를 포함한 세 아들을 낳은 허씨가 배 좌수의 총애를 받는 장화와 홍련이를 없애고자 하여 음모를 꾸민다. 허씨의 음모로 죽은 자매가 귀신이 되어 새로 부임한 평안도 부사에게 억울함을 토로하고 평안도 부사가 허씨의 음모를 밝혀내며 자매는 한을 풀고 허씨와 허씨를 도운 첫째 아들 장쇠는 벌을 받는 권선징악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소설에서 장화와 홍련의 아버지 배무룡은 ‘좌수’의 관직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조선 전기에 좌수는 지방 자치기구였던 향청의 가장 높은 직임으로, 품계로 따지면 종3품의 부사보다는 낮고 종 7-9품의 별감보다는 높은 관직이다. 보통 3품 이상의 관직은 상류층, 그 이하의 관직을 가진 양반이나 생활이 넉넉한 중인 계급까지는 중류층으로 분류하였기에 배 좌수의 가옥은 중류층의 가옥구조를 따른다고 간주할 수 있다. 더불어 소설 내용에 다르면 배 좌수 가는 최종적으로 배 좌수 부부와 장화, 홍련 두 자매, 그리고 세 아들 형제로 이루어진 가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장화홍련전>의 배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보자. 



2. 조선시대 중류주택


조선시대 중류주택은 기본적으로 서민주택의 양식을 따른다. 서민주택은 주인의 직업이나 세부 계층에 따라 구성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지역의 기후적 특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아 평면이 구성된다. 기후와 지역성에 따른 주택양식은 크게 강원도 북부에서 함경도, 평안북도 일대의 북부형, 황해도 남부와 평안도에 분포하는 서부형, 경기도를 중심으로 하여 황해도 남부, 강원도 충청도 일대에 해당하는 중부형, 경상도 전라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남부형, 그리고 제주도형으로 나눌 수 있다.


북부형은 냉대 기후에 속하는 지역으로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보다 혹한기에 대비하는데 집중한 난방 중심의 평면 배치를 가진다. 대청을 두지 않고 부엌 칸을 중심으로 서쪽과 북쪽으로 마굿간과 창고가, 동쪽으로는 방들이 日자 혹은 田자 모양으로 붙어 하나의 평면을 구성한다. 북부지방보다는 온화한 기후의 서부지방에서는 안채와 사랑채의 채를 구분하여 짓되, 대청을 놓지 않고 방들을 一자형으로 배치한다. 이때 건물들을 부지 방향을 따라 배치하여 안마당을 부지의 중앙에 놓는 것이 일반적이고 부엌을 부지의 모퉁이에 놓는다. 가장 단순한 평면형태로 서부지방 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의 다소 가난한 가구의 주택에 두루 사용되기도 한다. 중부형에서부터는 평면에 대청을 포함시킨다. 중부형 주택은 대청의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한쪽에 다시 1,2개의 방을 붙여 안채를 구성한 뒤 안채의 끝에 부엌을 배치한 ㄱ자 형태의 배치를 취한다. 남부형 주택은 대청 좌우로 방들을 배치하고 안방 끝에 부엌을 배치하여 一자형의 안채를 구성하고, 여기에 각 방과 대청 앞에 툇마루를 설치해 마루의 비중을 높였다. 제주도형은 남부형과 같이 방들이 대청 좌우로 배치되되 두 개의 방이 나란히 붙은 日자 형의 방들이 대청 좌우로 각각 놓이게 된다. 이 중 <장화홍련전>의 배경은 평안도 지방이므로 이들의 주택은 서부형 주택양식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중류주택은 위의 기본적인 서민주택 평면을 따르되, 낮은 대문이 솟을대문으로 대체되고 하인들의 방인 행랑채가 본채와 분리되어 솟을 대문 옆으로 자리하며 서민주택에서는 볼 수 없거나 그 규모가 작았던 각종 옥외 공간이 추가된다. 더불어 안채는 반드시 대문 이외에 중문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안채와 사랑채 이외에 사당과 별당을 따로 두기도 한다. 원래 서부형 주택에는 대청을 두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 중류주택에서는 북부와 서부 지방이라도 대청을 마련한다. 이때 서부지방 주택에서는 중남부지방들처럼 방들의 중간에 대청을 놓지 않고 매스의 끝(부엌과 반대방향)에 놓는다.



3. 장화 홍련이의 집


배 좌수 가의 가족구성은 부부와 두 딸에서 세명의 아들이 추가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따라서 안채는 안방과 두 딸을 위한 온돌방, 사랑채는 배 좌수의 큰 사랑방과 아들들을 위한 작은 사랑방으로 구성될 것이다. 허씨가 장화 홍련 자매가 잠든 틈을 타 계략을 꾸밀 때 두 자매는 같은 침실을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자배들의 방은 온돌방 하나에 부속 생활 공간인 웃방 하나가 딸린 형태가 적당할 듯하다. 배 좌수가 원래부터 아들을 원했기에 작은 사랑방이 하나정도는 존재했겠지만 세 아들을 모두 한방을 쓸 수는 없었을테니 一자형 사랑채 매스의 한쪽으로 방향을 꺽어 작은 사랑방 두 개를 증축하는 방향으로 평면을 구성해보았다.


 본문에 보면 ‘장쇠(첫째 아들)가 삼간 마루를 구르며 장화가 나오기를 재촉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장쇠가 장화를 기다리던 안채의 대청의 규모가 삼간 이상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대청의 크기를 근거로 전체적인 방의 크기를 구해보고자 한다. 아래의 중부지방 중류주택인 무교동 신씨 가의 안채와 사랑채의 대청과 방의 비율(툇간 제외)은 각각 7:6과 5:2이다. 북부지방 양식을 따르는 중류 주택, 강원도 정선 이종후 가옥의 경우에는 안채와 사랑채의 방과 대청의 비율이 각각 9:4와 11:4인 것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사랑채의 대청 비율이 안채의 대청 비율보다 작으며 각 방의 크기는 작은방은 1칸, 큰 방은 1.5-2칸 크기이다. 


따라서 중부형과 북부형 주택의 중간인 서부형 주택인 배 좌수의 가옥은 방과 대청의 비율은 안채는 약 5:3, 사랑채는 약 7:2가 될 것이다. 따라서 안채의 대청이 3칸이므로 안방을 2칸, 장화와 홍련 자매방을 1.5칸으로 설정하고 여분의 방을 1칸으로 두었다. 사랑채에는 배 좌수의 방과 아들들의 방 사이에 2칸짜리 대청을 놓고 배 좌수의 사랑방은 2칸, 침방은 1.5칸, 아들들의 방은 각각 1칸씩으로 설정하여 평면을 구성했다.


 지금까지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에서 서사가 펼쳐지는 주요 공간을 본문의 내용과 당시 조선시대 주택의 양상에 근거하여 구성해보았다. 제한된 정보와 상상만으로 진행하다 보니 고증이 다소 부족한 점은 너그럽게 봐주시기 바란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또 읽기를 권하며 아이들이 이야기를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힘을 기름으로써 성장하기를 바라왔다. 엄마 아빠가 보여주신 그림책을 통해 세상의 생김새를 조금씩 배워가던 아이는 몇 페이지마다 삽화가 등장하는 동화책을 거쳐, 이제는 텍스트만으로 이야기의 배경을 상상하여 이해하고 심지어는 텍스트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 문제를 풀어내는 경지에 이른 어른이가 되었다. 이제 그 어른이들은 삽화의 도움 없이도 서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모든 어른이들이 같은 이야기를 보고 같은 배경을 상상하지는 못한다. 그 배경이 설령 실제를 바탕으로 했을지라도. 나름 본인이 아는 한에서 고증을 따라 머릿속으로 서사의 배경을 뚝딱뚝딱 그려보지만 역시 어른이 1과 어른이 2의 머릿속 홍련이의 방은 다르게 생겼다. 이 글은 <장화홍련전>을 읽은 수많은 어른이들 중 에디터 B 어른이의 머릿속에서 장화홍련전의 이미지를 그리는 과정을 밖으로 끌어내어 적어 내린, 정돈된 의식의 흐름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참고문헌

김정기. (2017). <창산 김정기 저작집 - 주택사편 한국주택사연구>. 최종규(번역). 학연문화사. 187-195


도판목록

도판 1-5 | <창산 김정기 저작집 - 주택사편 한국주택사연구> 에 수록된 도판을 일러스트화

도판 6 | 강원도 농업기술원(www.ares.gangwon.kr)의 도판을 일러스트화

도판 7 | 우리역사넷(http://contents.history.go,kr) 의 도판을 일러스트화

도판 8-9 | 남수빈


 

 


WRITTEN BY

프로잡담러 B | 남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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