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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Aug 22. 2022

SSS_stage, space, studio

13호_건축과 동화_일상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 B

게재 : Vol.13 건축과 동화, 2020년 겨울

 

극 예술이란 작가의 개입 없이 등장인물들의 대화 형식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예술작품을 의미한다. 영상기술이 등장하기 이전의 극은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공연하는 실연극만을 의미했다. 이후 영상기술이 등장, 발전하면서 카메라와 ‘편집’을 통해 관객들에게 이야기가 전달되는 영상극이 극 예술의 한 갈래로 자리 잡았다. 하나의 무대 위에서 이야기의 모든 시공간을 표현해야 하는 연극과 달리 영상극의 ‘편집’은 연극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웠던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하여 극에 담고 싶은 다양한 공간을 찾아 촬영하며 하나의극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극예술에서 공간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 변화가 일어나며기존의 연극에서는 하나의 무대 안에서 어떻게 공간을 표현할까에 집중한 기술과 기법들이, 영상극에서는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공간을 어떻게 보여주고 촬영할 수 있을까에 집중한 다양한방식들이 개발되었다. 본 에디터는 현시점에서 본인이 느낀 실연극과 영상극에서 공간을 만들고 표현하는 방식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실제 연극 영화계에서 다루는 공간과 시각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1. 실연극의 무대 공간

실연극에서의 모든 공간은 하나의 (혹은 관객들이 한 번에 지각할 수 있는 여러 개의) 무대 위에서 ‘무대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 만들어진 무대 공간에서공연을 실행함으로써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 무대 공간은 크게 자연 자체를 무대로 삼는 자연무대, 소품 등을 이용해 배경을 상징적으로 양식화한 중립 무대, 한 무대를 여러 개의 구획으로 임의 분할하고 그 안에 각각 다른 공간을 설정하여 꾸미는 구성 무대, 실제처럼 배경을 그린 여러 개의 막을 전환하 며 공간을 표현하는 착각 무대의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연출가는 하나의극에서 하나의 유형만을 채택해 공간을 표현할 수도, 장면에 맞게 여러 유형을 혼합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자연무대

자연 그대로를 무대로 사용


상징무대

소품을 이용해 배경을 상징적으로 표현


구성무대

한 무대를 여러개의 구획으로 나눔


착각무대

여러 개의 막을 전환시켜 공간의 이동을 표현


무대 공간은 극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장면의 시공간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기에 무대 공간의 구성에 가변성은 필수 고려 요소이다. 연출자는 눈앞의 빈 무대가 어떤 공간이든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다양한 무대 공간의 유형들을 적절히 활용해 무대를 빠르게 구성하고 전환하며 관객들에게 극을 선보이게 된다. 어떠한 공간을 만들어내든 무대에서 공간의 성립과 전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과의 합의이다. 대형 뮤지컬이나 연극 같은 경우에는 구성 무대나 착각 무대 등을 설계할 때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오브제나 배경을 통해 직관적인 무대를 만들어 일반적인 합의에 이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직관적인 무대 공간을 통해서만 관객과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소극장이나 저예산 연극의 경우에는 관객이 연출과 배우들이 표현하는 합의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방법으로 공간을 성립시킬 수 있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빈 무대에 평범한 책상 두 개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교복을 입은 학생 배우 두 명이 문제집을 푸는 장면이 있으면 책상과 책상을 둘러싼 공간은 교실이 된다. 조명이 꺼졌다가 켜졌을 때 정장을 입은 회사원 배우가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으면 관객들은 그 공간이 사무실로전환되었음을 받아들이고 책상과 그를 둘러싼 공간을 사무실로 인식해야 한다. 세 배우가 간격을 두고 서 있고 각각 대사나 행동을 통해 비 내리는 거리, 출근 시간 지하철역, 설계실 복도에 있다는 메시지를 표현하면 순식간에 배우가 서 있는 공간은 비 내리는 거리, 출근 시간 지하철역, 설계실 복도가 된다. 이렇듯 최소한의 오브제나 배우의 연기를 통해 공간을 나타낼 수도, 전환할 수도 있다. 여기에 조명의 색이나 세기, 범위를 달리하는 등의 연출을 추가함으로써 공간성은 더욱 심화된다.



 2. 영상극의 세트장에 대하여

영상술이 발전하며 편집기술을 통해 실연극에서의 무대 공간 제약에서 벗어나 다양한 공간을 이용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 으로 공간을 표현할 수 있었다면 영상극에서는 배우가 서 있는 장소가 교실임을 드러내기 위해 실제 교실의 형태를 가진 공간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이러한 실제적인 공간을 프레임에 담기 위해 제작진들은 사전에 공간을 답사하고 원하는 시간에 해당 공간을 찾아 촬영을 진행할 수도 있고(로케이션) 프레임에 담고자 하는 공간을 직접 만들고 조명 등의 연출을 더해 촬영을 할 수도 있다. (세트장, 스튜디오) 로케이션 촬영은 실제 공간을 배경으로 하므로 제외하고 지금부터 세트장 촬영 공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감독이 가상의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리고자 세트장을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감독이 실제 생각하는 공간은 우측과 같을 것이다. 여건이 된다면 정말 2층 건물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매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그렇다면 효율적인 촬영을 위해 세트장은 어떻게 구성될까.


아마 아래처럼 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영상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프레임에 담는 일이다. 배우의 실제 이동 여부나 공간 이동의 방향은 프레임 속의 맥락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때문에 세트장 공간을 구성할 때 z 축 이동이 필요한 공간들도 xy 축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할 수 있고, 촬영의 편의를 위해 서로 붙어있는 방이라도 다른 공간으로 분리할 수 있다. 실제 건축에서 거실 아래 지하실이 있고 하나의 계단 참이 있는 지하실로 이동한다고 했을 때, 세트장은 거실 공간 옆에 지하실을 놓고 프레임에 담길 만큼의 계단만을 설치하고 나머지는 생략할 수 있다.



세트장 공간의 또 다른 특징은 높은 확률로 공간의 하나 이상의 면이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위에서 말한 프레임에 담기지 않는 공간은 생략할 수 있다는 것과 촬영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무대 위에서 관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실연극과 달리 영상극에서는 관객과 배우 사이를 영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통하게 되고 이를 위해서는 다수의 스태프들과 장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다수의 스태프들과 장비들이 카메라 프레임에 담기는 일은 극의 몰입도를 깨고현실성을 떨어뜨리므로 배우와 극에 필요한 배경들 이외에는 모두 프레임 밖, 카메라 뒤의 공간에 위치해야 한다. 더불어 하나의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장비들이 동시에 동원되어 상호작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효율적인 상호작용을 위해서는 장비들과 스태프들이 모여 있는 것이유리하다. 때문에 공간 내에서 프레임에 담기지 않는 벽면은 과감하게 개방하고 해당 벽면이 있어야 할 곳에 스태프들을 위한 충분한 공간과 시설을 배치하는 것이 좋은 영상극을 만들기에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영상극 촬영 현장을 직접 참관한 경험은 없어도 한 번쯤은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어본 경험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동안 사진사님은 스튜디오 천장의 조명 이외에 별도의 강렬한 조명 장비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간단한 사진 촬영에도 수많은 조명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영상극의 촬영에도 상당히 많은 양의 조명이 사용되는데 이 조명들은 스태프들이 위치한 면에서 뿐만 아니라 천장에서도다량 필요하다. 때문에 세트장 공간에는 천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세트장의 공간은 6면의 면으로 덮여 완결되는 일반적인 공간들과는 달리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영상 촬영을 위한 생략의 과정을 거쳐 미완결된 공간으로 완성된다.



스튜디오 내에 세트장을 만들어 촬영하는 모습. 공간의 한쪽 벽면을 없애고 그 뒤로 스태프들의 공간을 만들었다. 실제 태양이 아닌 강한 조명을 통해 낮 시간을 연출할 수 있다 (좌측 창문)EBS 다큐멘터리 '극한 직업 - 드라마 제작팀'



촬영이 진행되는 세트장의 한쪽 벽면이 없음을 과감하게 드러내었다. 뒤편의 계단도 연출 상 프레임에 보이는 부분까지만 설치 가능하다.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


끝으로 극예술의 공간을 실제 건축의 공간에 비유하며 글을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먼저 연극무대를 실제 건축에 빗대 보면 퐁피두 센터가 떠오른다. 각종 설비를 건물의 외부에 배치하여내부 공간의 성격에 따라 슬라브와 벽들의 배치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한 퐁피두 센터처럼 연극무대에서 공간은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자유롭게 공간을 만들어내고 전환할 수 있는 가변성을 가진다. 세트장 스튜디오는 스킵 플로어에 비유하고 싶다. 하나의 층이 완전한 층으로 존재하기보다 반 층 위아래의 공간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도 분리시켜 독립된 하나의 공간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한 스킵 플로어는 미완결된 공간들을 프레임에 담아 완전한 하나의 공간으로서 활약할 수 있게 하는 스튜디오의 공간들과 닮은 점이 많다.


실연극 무대와 영상극 스튜디오는 연출자나 감독이 상상하는 공간을 표현하고 이를 각각의주어진 공간 내에서 구현해 내는 방식에 있어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두 공간 모두 배우들이 연기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공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공통점이다. 처음 실연극과 영상극이 등장하고 현재에 이르는 동안 극 예술은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위한 다양한 기법들을 발전시켜왔고, 그 기법에는 보여주고 싶은 공간을 표현하는 기법도 포함된다. 극 예술에서 사용되는 무대 위, 혹은 프레임 밖의 공간이 실제 건축인들이 만드는 완결된공간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공간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발전을 이뤄내고자 하는 열정의 온도는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위한 공간과 삶을 위한 공간 모두 오늘보다 내일 더 성장하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참고문헌

안소영(2008). 뮤지컬 무대의 가변적 공간 구성에 관한 연구. 한국디자인학회 논문집 21-34

임종엽(2014). 연극과 건축 - 연극(演劇)의 空間, 극장(劇場)의 空間. 공연과 이론, (54), 164-176


도판목록

사진1 | 픽사베이(www.pixabay.com )

도판1-5 | 남수빈

사진2 | 유투브 채널 '디글Diggle' (www.youtube.com/c/디글Diggle)사진3 | 유투브 채널 'EBSDocumentary (EBS 다큐)' (www.youtube.com/user/ebsdocumentary) 


  

  


WRITTEN BY

프로잡담러 B | 남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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