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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Aug 26. 2022

사람, 시간, 서촌

13호_건축과 동화_일상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 W

게재 : Vol.13 건축과 동화, 2020년 겨울

 

 


빽빽한 건물들이 가득한 서울 안에서 서촌은 다른 곳인 것만 같다. 특히나 회사 건물이 즐비한 광화문 거리 옆에 있기에 분위기의 대비가 크다. 광화문을 채우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차들의 경적은 서촌에 들어서면 하나둘 사라진다.


서촌에 들어설 때마다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선, 건물의 높이가 낮다. 청와대가 근처에 있다 보니 건물 높이에 제한이 있어 생겨난 모습이다. 건물의 높이가 낮기에 건물의 규모에 압도되기보다는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외에도 서촌은 위치의 특성상 건축물 설계 규제가 까다로운 편이다.


이러한 규제로 인해 서촌에는 흥미로운 건축물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아늑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색다른 분위기 덕분인지 서촌은 많은 사람이 찾는 핫플레이스 중 하나이다.


그러나 서촌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서촌은 단순히 핫플레이스라 하기에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과 다양한 시간이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서촌의 시작점에는 흔히 인스타 감성이라 불리는 가게들이 즐비해 있다. 넓은 도로 양옆의 대부분은 식당과 카페들이다. 이 곳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평일에는 점심을 먹기 위한 광화문의 회사원들이 자주 찾으며, 주말에는 놀러 온 이삼십대로 가득하다. 많은 사람이 찾아도 넓게 정리된 길이기에 사람들이 서로 거리를 두고 걸을 수 있다. 서촌에 머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워낙 길이 넓고 차는 잘 안 다니다보니 자전거를 타기에 좋다. 배차간격이 긴 마을버스 대신 자전거 폐달을 밟는 것이 점점 익숙해진다.



서촌의 매력은 이 넓은 길에서 벗어나야 더 커진다. 곳곳에 보이는 골목들에는 독립서점, 카페 등 다양한 장소들이 숨어 있다. 특히 이런 골목에는 서촌에 남아있던 한옥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곳들과 일부러 입구를 숨겨놓은 곳들이 많다. 이들은 길가에 있는 가게들과는 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에서 골목 곳곳까지 돌아다닌다. 이때, 골목의 폭이 대부분 넓고 깔끔하게 포장이 되어있다. 이는 많은 사람이 돌아다니기 편하도록 시공한 것이 아닐까 싶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서촌에 머무는 사람들의 공간이 있다. 고층의 아파트는 아니지만, 오래된 빌라와 단독주택들이 주를 이룬다. 많은 사람들이 머무는 만큼, 사람 냄새 나는 공간들이 많다. 현재 선별진료소로 쓰여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졌으나, 보건소 1층 현관은 동네 사람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던 곳이다. 통인 시장 앞 정자에서는 어르신들이 모여 바둑을 두시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바쁘게 이곳저곳 발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들과 자리 잡고 앉아 근황을 묻는 동네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는 모습은 묘하다.



처음부터 서촌에 오가는 사람과 머무는 사람이 함께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머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나, 2012년부터 통인 시장의 엽전 도시락 마케팅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며 그들의 발걸음이 서촌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당시 서촌에 관광객이 유입되는 정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급격히 증가한 축에 속했다. 이로 인해 한동안 서촌에 관광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해 오래된 가게들이 밀려나게 되었다. 다행히도 현재 꿋꿋이 버티고 있는 몇몇 가게들이 깔끔한 외관의 가게들 사이사이에 있다. 그들이 함께하며 만들어내는 풍경은 현재의 서촌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는 것은 좋으나 서촌에 머무는 사람으로서 자주 찾아가던 동네 가게가 문을 닫으면 아쉬움이 크다. 최근에는 보행 환경 조성 사업을 한 번 더 시행하며 통인 시장 입구 쪽 보도를 정비했다. 집까지 가는 길이 깔끔해지는 것은 좋으나 서촌을 오가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정도가 점점 깊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종종 하게 된다.



시간



서촌은 그곳을 오가는 사람과 머무는 사람들이 섞이는 동시에, 여러 시간이 함께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선, 전통 시장인 통인 시장을 주축으로 골목골목 퍼져있는 주택들은 고층 빌딩이 들어서기 전 서울의 시간을 담고 있다. 집의 형태도 단독주택, 빌라부터 초창기 아파트의 모습까지 다양하다. 단, 요새 쉽게 볼 수 있는 고층 아파트는 하나도 없다. 사람들이 머무는 곳들을 둘러보며 언제쯤 지어졌을지, 어떻게 리모델링 된 것이며 이전의 형태는 어땠을지 생각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라진 이들의 시간을 담고 있는 곳들도 있다. 박노수 화백이 기거했던 고택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현재는 종로구 문화재단의 관리하에 박노수 화백의 작품이 전시되어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모든 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전시된 그림을 볼 때면 이 그림이 어디에서 어떻게 그려졌을지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다. 박노수 미술관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윤동주 하숙 터가 있다. 윤동주 시인이 연희 전문학교를 다닌 시절 하숙을 했던 곳이다. 다만, 이곳은 터만 표시되어 있고 현재는 주택이 지어져 사람이 살고 있다.


고층 아파트가 있기 전의 서울보다 더 오래전인, 전통의 시간이 깃든 곳도 있다. 서촌의 골목골목을 보면 여러 형태의 한옥들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사람이 사는 곳도 있으며, 상업 활동을 위해 개조를 거친 한옥 형태의 카페, 게스트 하우스들도 있다. 전통적인 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와 처마와 단정한 문양들이 주는 멋은 그대로이다. 실제로 서촌에는 663동의 한옥이 있으며, 서울시는 서촌 일대를 한옥 보존 지역, 역사문화지구로 지정해서 보존하고 관광 자원화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처럼 서촌에 다양한 시간이 함께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흔적이 남겨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러 지역에서 이전에 있던 건물들을 허물고 고층 건물을 짓는 것과 달리, 서촌에는 많은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전통시장이, 50년대에 지어진 단독주택이, 여러 인물이 기거하던 곳이, 한옥이, 많은 것들이 남겨져 있다. 물론 그대로 남겨진 것은 아니다. 전통 시장에는 지역 주민들보다 관광객이 더 많이 오고, 50년대 지어진 단독 주택은 편리한 형태로 개조되었으며, 한옥이었던 윤동주의 하숙집은 주택이 되었고, 한옥은 전통적인 형태에서 많이 벗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본질을 그대로 남겨두면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촌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 머무는 곳, 그리고 여러 시간대가 함께하고 있는 곳"


바쁜 도시, 서울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가끔 서촌을 거닐다 보면 이곳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매력에 많이들 찾게 되고, 관광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기도 했다. 현재는 많은 사람의 발걸음이 익선동, 합정동 등으로 옮겨가 이전보다 오래된 가게들이 문을 닫는 빈도는 줄어들었다.

서촌 특유의 분위기는 모두가 함께해야 유지될 수 있다. 관광 젠트리피케이션이 지속된다면, 서촌의 많은 공간은 획일화된 상업 공간들로 채워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촌 주민들의 일상이 깃든 공간이 사라지며 서촌만의 분위기가 사라지게 된다.


특히나 도시 관광에서 지역 주민과 관광객의 공존은 필수적이다. 관광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상업화와 지역 주민 이탈이 가속화되면 지역의 공간적 특성이 사라진다. 이는 해당 지역이 관광지로서 갖는 매력을 저하시켜서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기게 된다. 관광지 수명 주기 관점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쇠퇴 단계로 본다. 서울시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2015년에 서촌의 건물 용도 변경과 증축을 금지하는 일시적인 해결책을 내놓았었다.


그러나 주민들이 부동산을 통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자명한 상황에서 정부의 무조건적인 규제가 긍정적인 효과만 낳기는 어렵다. 강제적으로 머무는 사람들을 붙잡기 보다는 그들이 자발적으로 남아있어야한다. 앞의 방법은 말그대로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이다. 이와 다른 방법들로 서촌에 머무는 사람과 오가는 사람들이 공존해야 하며 서로 다른 시간대들도 계속해서 남겨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나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서도 안 되고, 무분별한 개발 사업이 진행되어서도 안 된다. 이를 지키기 위해 여러 사람의 노력도 필요하나 무엇보다도 서촌에 머무는 사람들의 역할이 커 보인다.


최근에는 서울시와 종로 구청의 주최로 서촌에서 도시 재생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일례로 서울시에서는 서촌 내 공공 한옥을 문화복합센터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상업 공간의 포화로 인해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적은 서촌에 공공 한옥은 주민들을 위한 공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한옥 형태를 유지하는 만큼, 서촌만의 색깔을 살리는 역할도 톡톡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주민들이 애정을 갖고 찾게 되는 공공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처할 수 있는 건축적 해결방안 중 하나라 생각된다. 정부가 짓는 공공시설에서 더 나아가 상업 시설들이 일부 공간을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구축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지 않을까 싶다.


앞서 언급한 공공한옥은 현재 임시로 도시 재생 센터인 '경복궁 서 측'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주민들이 지역에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골목길 큐레이팅을 진행하고, 정기 회의를 진행하는 등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는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지역 주민들이 함께하며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처할 수 있는 어떤 방안들이 나올지 기대되는 바이다. 서촌에 머무는 이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꾸준히 노력해서 앞으로도 지금의 서촌이 남아있길 바란다.



도판목록

사진 1-11 직접 촬영


참고문헌

도혜원, 변병설. (2017). 서울 서촌의 젠트리피케이션 요인분석 연구. 국토지리학회지

신현준. (2015). 오래된 서울에서 진정한 도시 동네 만들기의 곤란. 도시연구

박효연. (2016). 서촌 관광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한 연구. 관광레저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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