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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Aug 29. 2022

스툴로 보는 건축

13호_건축과 동화_프로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 L

게재 : Vol.13 건축과 동화, 2020년 겨울

 

 

가구는 작은 건축이다


stool[stu:l]
명사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의자, 스툴 


욕심은 현실을 만나 스툴 모양으로 작아진다

사람의 욕심은 끝나지 않는다는 격언을 요즘 방 책 상을 버리겠다고 수없이 선언하던 자신의 모습에 서 다시금 느끼고 있다. 근 10년을 동고동락하던 책상을 팽하려는 것도 결국은 끝도 없이 불어나는 욕심의 한 과정에 있는데,


 이 생각의 흐름을 짤막하게 설명하자면...


1. 디퓨저, 턴테이블 등 조그마한 소품에 꽂히거나 손에 들어오든 해서 아무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 한다.


2. 느낌 있는 소품과 함께하는 느낌 있는 예쁜 조명을 갈구한다.

(조명에 미쳐 살던 시기)


3. 소품과 조명까지 도장 찍어 놨더니 깨달은 점, 애초에 내 방에 있는 가구부터 난국이다. 이 수험생용 책상을 갖다 버리자.

(가구에 미쳐 살던 시기)


4. 아, 생각해보니 그 정도의 본격적임이라면 도배장판도 새로 해서 아예 다 뒤집는 게 훨씬 낫겠다.

(현실의 벽을 느끼고 초연해지는 시기) 로 설명할 수 있겠다...


이 중에서 가구에 미쳐 살던 시기에 일어났던 일이다. (정확히는 인테리어 전반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이었다.) 만약 버린다면 다시 사야할 책상에는 눈길도 안 주고, 한 스툴에 정신이 팔려 하마터면 지갑을 열어버릴 뻔한 것이 발단이었다.원래 의자를 보려 한 것이 아니라 작은 수납공간을 찾아보고 있었던 것인데...



서랍장 한 칸을 툭 떼어놓은 듯한 모양. 바닥에 놓아야 하니 살짝 단을 올렸다. 굉장히 심플하면서도 색감이 이뻐서 꽂히는 감이 있었다. 본래 기능인 조그마한 의자 에도 충실하지만 무언가를 수납하는 기능으로만 봐도 출중하다. 공간의 분위기를 이루는 소품으로도 합격점. 이 스툴에 한 참 눈을 떼지 못하다 겨우 마음을 접고 나니 생긴 건 이 스툴이라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흥미였다.



여기저기에 얕게 우물을 팠더니 그 결과는 스툴이었어



스툴은 의자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나무 그루터기처럼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의자를 뜻한다. 스툴은 편안하게 등을 기댈 수 있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부분들이 존재하지 않아 소파 등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하기보다는 간이, 보조 정도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형태가 간결하고 이동과 보관이 쉽기 때문에 어디서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심플한 디자인만큼 자유로운 변형이 가능해 의자뿐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그렇게 스툴은 현재에는 위에서 보았듯이 단순한 의자로의 역할에서 벗어나, 수납장, 화분 받침대 등 다양한 기능을 부가적으로 수행하면서 변수 덩어리 가구, 소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건축사적으로도 스툴은 건축가의 사상을 함축하는 오브제로서, 그들 각각의 건축의 상징으로서 만들어져 왔다. 어떻게 보면 등받이와 팔걸이가 있는 스탠다드한 의자와 비교해봤을 때, 비효율적이고, 공간만 충분하다면 굳이 대체품으로 둘 필요도 없는 ‘간이’, ‘임시’ 느낌이 나는 이 스툴이, 왜 꾸준히 만들어지고 오히려 각광까지 받는 걸까?


건축가가 예술가의 범위로 들어선 것은 그리 오래 전 얘기가 아니다. 건축에 대한 낭만, 건축가를 거대한 창조물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는 예술가로의 이미지로 바라본 것은 고딕 성당의 아름다움에 경외심을 가진 괴테와 같은 작가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한 이미지를 르코르뷔제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같은 유명 건축가들이 이용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아이콘으로서의 건축가이다.


이들은 자신의 건축 스타일을 비단 건축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구 디자인에도 손을 대면서, 일종의 자신의 건축 스타일을 담은 마스코트, 오브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에는 단지 이런 연유 외에도, 기술적으로 아직 건축물에 적용하기 어려웠던 기술들을 가구에라도 적용해보자는 현실적인 문제도 한몫 했다. 하지만 스케일 면으로만 봐도 가구와 같은 오브제는 비교적 한눈에 들어오는 오브제였기 때문에 많은 건축가들이 가구 디자인도 겸했다.



사람들은 의자를 애완동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피터 스미슨-



‘의자 디자인은 사회와 도시의 축소화 작 업이라고 할 수 있다. 금세기 들어서 그 현상이 유난히 두드러진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의자에 그가 예견한 도시 개념과 사회 개념이 완벽히 드러나 있다.’


이 시기의 스툴은, 더 나아가 가구는 건축가들 에게 있어서 일종의 상징이었다. 자신들의 스타일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오브제. 그것이 가구였다. 라고 한다면......



최소 단위, 스툴



그러한 가구 중에서도 의자 계열은 압도적으로 자주 선택되는 친구이다. 아무래도 그 범용성에 있어서도 압도적이다. 테이블은 거실에, 책상은 서재에, 침대는 안방에. 하지만 의자는? 의자는 어디에나 있다. 또 그 크기면에서나, 용도 면에서나 의자는 디자인 양식의 최소단위로 기능해왔다. 그런 긴 역사와 더불어 권력과 지위의 상징까지 얻고 나니 의자는 일종의 문화적 상징으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스툴은 최소 단위의 최소 단위라는 느낌으로 건축 스타일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대상 중 하나가 되었다. 알바 알토의 ‘스툴60’ 은 건축가가 디자인한 가구의 대표격 예시이기도 하면서 원초적인 스툴의 형태를 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디자인이다. 알바 알토는 그 당시 나와 있었던 금속이나 유리같은 재료보다도 나무에 집중한 인물이다. 그 스타일은 가구 디자인에서도 사진과 같이 잘 드러나는데, 그는 열을 통해 나무를 휘게 하는 독창적인 기술을 통해서 단순 접합했을 때의 안정성을 나무 라는 재료만으로 해결함과 동시에 겹쳐서 놓을 수 있는 등 편의성이 대폭 증대된 스툴 디자인을 내놓았다. 단순히 스툴 디자인 자체의 완벽함도 또한 놀라운 것이지만, 우리는 이 스툴이 알바 알토의 건축 스타일, 기술을 집약한 결정체처럼 보임을 눈치채어야 한다.



솔직히 카페 가면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스툴엔 가방 정도나 올려놓고..어?



현재에 들어서는 어떨까. 현재에 들어서 우리나라에서 독창적인 디자인의 가구는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하면 바로 카페에서 볼 수 있겠다. 가구 쇼룸을 겸하는 카페들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카페는 단순히 커피와 그 외 음료, 디저트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공간을 본 눈을 판매하는 곳이 되었다.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공간만으로는 경쟁력을 상향평준화시킬 수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다른 경험을 추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물론 가장 쉬운 방법인 카페 겸 바는 어려운 일도 아니며, 갤러리카페, 드로잉카페 등 다른 요소를 추가하는 것이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는 데에는 손색이 없는 방법이긴 했다.) 독특한 인테리어와 소품을 통해서 소비자들의 보는 눈을 즐겁게 하려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것이 결국 다양한 형태의 스툴이 등장하는 서막이 되겠다. 대부분의 이러한 류의 카페들은 좁기 마련인데, 그러한 공간적 한계를 해결할 훌륭한 가구가 바로 스툴이었던 것. 또한 비교적 낮은 높이의 테이블이 대부분인 카페에서는 그 높이와 맞는 의자라 하면 스툴이 딱일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다가 등받이에 팔걸이도 없는 그 태생적 불편함이 이유 모를 과거의 향수까지 불러일으켜 주니 바닥에 앉아 생활하던 우리나라 에서 영문 모를 서양 가구인 스툴이 각광받는 것은 어쩌면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거기에 더하여 요즘에는 단순히 독특한 디자인의 스툴인 것만이 아니라 의자라는 기능에 부가적인 기능까지 수행할 수 있게 디자인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를 카페의 인테리어 디자인 관점에서 이유를 찾아보자면 수납공간이 있는 스툴은 그 내부에 소품이나 책 등을 배치해 의자까지도 공간에 스며들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전반적으로 바라보았을 때에는 스툴에 다른 기능을 접목시키려는 시도 자체가 신선한 디자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볼수가 있겠다. ‘Stool365’는 ‘제로랩’에서 지난 1년간 하루에 하나의 스툴을 디자인한다는 컨셉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로, 이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기능주의적인 스툴의 형태를 잘 살펴볼수 있다. 굴뚝 조명 스툴 등 조명이 접목된 스툴이 있는가 하면, 화분 받이 스툴, 옷장 스툴 등 수납물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수납공간을 지닌 스툴도 산재해 있었다. 단순히 편의성에 기반한 기능성이나, 디자인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가구 구성에 있어서 변수 창출이 가능한 형태의 디자인이 등장한다는 점, 또한 그 와중에도 훌륭한 오브제, 소품으로도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스툴의 현위치를 우리는 변수덩어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스툴의 다양한 디자인은 기능성이라는 요소가 미적 신선함에 어느정도 지분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 기능주의 건축의 대표격인 헤르만 헤르츠버거의 건축 스타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능주의 건축은 우선순위를 디자인의 미적 아름다움에 두고 있지 않다. 모든 구조의 디자인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기능주의 건축에 걸맞게 모든 부분부분이 저마다의 기능적인 당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렇기 때문에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스툴 디자인의 동향이 어느정도 기능주의 건축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과정을 살펴보면 어찌 되었든 의도한 용도들이 기능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 디자인이 충분히 미적인 측면에서 각광을 받고, 아이코닉화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내에서 반대로 기능주의적인 건축 양식도 비슷한 형태로 미래에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다.



참고문헌

데얀 수직, (2014), 바이 디자인, 홍시커뮤니케이션 헤르만 헤르츠버거, (2009), 

헤르만 헤르츠버거의 건축 수업, 효형출판 리처드 웨스턴, (2012), 

건축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 시드포스트 인스타그램 @stool365


도판출처

사진 1-2, 5  개인 촬영

사진 3 https://hivemodern.com/pages/product478/knoll-mies-van-der-rohe-barcelona-chair 

사진 4 https://www.artek.fi/en/products/stool-60 사진 5 기 인스타그램 @stool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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