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담 Sep 02. 2022

무비나이뜨 : 소공녀

11호_건축과 거리두기_프로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Z

게재 : Vol.11 건축과 거리두기, 2020년 봄



소공녀(2017)

감독 : 전고운, 각본 : 전고운, 출연 : 이솜, 안재홍

참여 : 김ㅁㅅ, 박ㅈㅇ, 신ㄷㅎ, 유ㄷㅇ, 이ㅈㅎ, 이ㅈㅎ, 정ㄱㅇ, 조ㅅㄱ, 최ㅈㄱ, 홍ㅇㅎ


2020년 7월 4일 밤, 성수동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영화 소공녀를 함께 본 후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공녀는 해가 바뀌며 담뱃값과 월세마저 오르자 좋아하는 위스키와 담배가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집을 포기하고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는 주인공 미소의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1


“영화에서 미소가 집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을 내려놓은 것이 잘못된 것처럼 보이게 연출했다가, 현실의 삶을 안락하게 하는 사람들의 삶이 잘못된 것처럼 보이게 연출했다가. 계속 섞어서 헷갈리게 했죠. 그래서 저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든 고통에 빠지면 안 되는데, 어떤 선택을 하든 모두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그리며 감독이 우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런 현실이 잘못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 같아요.” 


“돈 많은 친구 있잖아요. 부잣집에 시집간 친구. 그 친구는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고 있지만, 제가 보기엔 포기한 게 많아 보였어요. 미소의 친구들이 미소보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마음 안의 무언가를 포기하며 살아가는 걸 보면서, 단순히 미소가 집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


‘집이 없다’는 말이 정말로 머물 곳이 없다는 것으로 쓰이는 것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필요한 것을 전부 가방 속에 넣고 이곳저곳에서 살아보는 미소의 삶이 그 누구의 삶보다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 묘했다. 이사를 하거나 대청소를 할 때마다 고민하다가 버리는 무언가처럼, 미소에게 집 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었을 뿐이다. 미소는 집을 어떻게 정의했을까 궁금해졌다. 집은 꼭 한 곳이어야 하는 것일까? 혹은 혈연으로 엮인 누군가, 또는 결혼한 배우자와 함께 사는 곳이어야 하는 것일까?


미소는 단지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집을 찾아갔다. 사실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는 것이 일시적인 해답이라는 것은 미소가 가장 잘 알았을 것이다. 결정을 내린 순간의 미소에게 집은, 내가 함께하고 싶은 누군가와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었을까. ‘집’과 영원성이 커다란 간극을 보이는 사회에서, 자신이 꿈꾸는 행복을 얻기 위해 여러 집을 움직이는 미소가 어쩌면 가장 영리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


“미소가 마지막에 친구들을 다 위로해주잖아요. 기분이 이상했어요. 다들 미소를 잘못된 선택을 한, 도와줘야 할 사람으로 바라봤지만, 내심 미소를 부러워한 것 같았고요. 부잣집에 시집간 친구나, 돈을 위해 링거를 맞으면서까지 일하는 친구, 아내가 떠나간 집에서 매일 술을 마시며 사는 친구도 돈이 없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공간에 서 떠나지 못했잖아요. 집이 뭔가 행복하고 안락한 공간이 아니라, 돈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떠날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린 현실. 그런 현실이 되게 슬퍼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좀 웃기기는 하지만.”


건축을 공부하며 내가 공부하는 것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축은 아주 다르다는 것을 종종 느꼈다. “젊을 땐 집을 사지 않고 돈을 모 아서 노년기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집을 짓겠다”는 말을 들은 누군가 가 “빚을 내서라도 최대한 빨리 집을 사는 것이 똑똑한 거야” 라고 했을 때, 건축의 가치를 생각하던 내 모습이 초라 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집이 팔리지 않으면 그 집에서 살고 싶지 않더라도 이사를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적당한 집”을 거대한 대출금으로 사는 행위는 아마도 집을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사회가 되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강남구 한복판에 위치한 녹물이 흐르는 아파트가 수십억을 호가하고, 피부병을 호소하면서도 재건축을 기다리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기묘하게 느껴진다.



#3


“집을 가졌지만 아무도 편안하게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사실 그래서 집을 우선순위로 두면 안 되는 게 아닌가, 저 영화만 보면. 집을 우선순위로 삼고, 다른 무언가를 포기했는데 행복하지 않잖아요. 근데 왜 집을 선택해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드네요.” 


“저는 그 집에 대해서. 그 친구들이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불행했던 이유 중 하나가, 그 집이 어떻게 보면 자기가 구한 집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부모님이나 돈 많은 시댁, 이런 식으로. 그 집을 누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영향력을 굉장히 많이 끌어들였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불행했던 건 아닐까.

그 돈 많은 친구도 시댁 눈치를 굉장히 많이 보고, 피아노 쳤던 친 구도 가족들에게 굉장히 얽혀서 되게 불행하고. 그런 것들을 봤을 때 집이 있는 것도 있는 거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온전히 나의 집으로 얻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집에서 살고 있었으니까요.”


언젠가 마감 시즌에 집에서는 새 옷을 가져오고 입은 옷을 가 져다 두기만 하고, 씻는 것부터 밥, 잠을 모두 학교에서 해결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교수님에게 받은 크리틱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휴대폰 녹음기를 켰는데, 녹음파일이 ‘집’이라는 제목으로 저장 되었다. (원래는 녹음한 장소의 주소로 저장한다) 머무는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내가 설계실에서 모든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한 순간이었다. 사실 마감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집에 가면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커지곤 했는데, 오히려 설계 실에서는 같은 반 친구들과 서로의 존재에 감사를 느끼며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휴대폰이 의도치 않게 ‘집’으로 저장한 설계실이, 그 순간 나에게 가장 편한 집으로 느껴졌던 것은 확실하다.



#4


“오늘 아침에 엄마하고 집 얘기를 하다가 왔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엄마는 집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게 뭐냐’고 물었거든요. 엄마가 ‘평 생 살 집을 구하고 싶다’ 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두 번째로 중요한 게 뭐냐, 고 했더니 엄마가 집값이 올랐으면 좋겠대요. ”


평생 살 집과 값이 많이 오르는 집은 서로 부딪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의 집값이 오르더라도 팔지 않으면 집값이 오르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고, 집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여 빚을 지고 집을 산다. 때문에 계속해서 집값이 오른다. 결과적으로 집값은 과하게 오르게 되고, 모두가 돈 때문에 살고 싶은 곳에 살지 못하거나, 살고 싶지 않은 곳에서 억지로 사는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결혼을 한 지인이 신혼집을 구할 때, 인생 주기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집을 정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지인에게는 장기적으로 이사를 할 계획이 있었다. 신혼집은 출퇴근이 편한 수도권의 아파트에서 시작하고, 아이가 생기면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필로티 1층으 로 이사를 하고, 아이가 좀 크면 학교와 학원가 등이 모여 있는 교육 환 경이 좋은 곳으로, 등의 나름 상세한 계획이었다. 부부의 취향이나 기호는 모두 삭제된 채, 모두가 좋다고 말하는 것이 남은 모습이 어쩐지 조금 슬프기도 했다.



#5


“이번에 본 광고 중에서, 어떤 가족들에게 각자 살고 싶은 집을 그리라고 한 광고가 있었어요. 부모님들은 다들 평수에 맞춘 평면 등을 그렸고, 아이들은 강아지와 가족이 뛰노는 집을 그렸어요. 박공 지붕에. (일동 웃음) 부모님들 그림의 공통점은 모두 가족이 빠져 있다는 것이었죠. 숫자로 정형화할 수 있는 것들만 남아 있었어요. 반 면에 아이들의 그림에는 소프트웨어가 가장 중요하게 그려졌어요.. ”


“패밀리 닥터라고 있잖아요. 가정을 평생 담당하는.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패밀리 닥터처럼 건축가가 가정과 매칭되어 집을 지어주고, 관리해주고, 또는 건축과 관련한 조언이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


신기하게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살고 싶은 집으로 박공지붕을 가진 단독주택을 그린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점점 자라 지금의 어른들이 된다. 의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누가 잘못되었고 잘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점점 자라나며 스스로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어 특정 평수의 평면을 그리게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수많은 아파트를 보고 자란 경험과 도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익숙한 아파트, 또는 특정 평수의 평면을 그리는 것일 수도 있다. 핵심은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미 아파트가 지어진 땅에 다시 단독주택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쟁이 나서 한 반도가 전부 폐허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아파트는 영원한 집의 대명사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고민이 필요하다. 구조의 단순화를 이용해 내부 공간을 새롭게 만드는 리노베이션이 유행하는 것처럼, 아파트 평면도 최소한의 효율만 남긴 채 고객에 맞는 형태로 변해갈 수 있다면. 아파트의 단독주택화가 일어난다면, 건축가들까지도 만족하며 두 가지 형태의 장점을 모두 갖춘 한국형 아파트에 살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다들 그럼 건축가가 되는 게 꿈이신가요?” 

“생각을 좀..” 

“분명 시작은 그랬는데, 지금은..” 

“일단 전 아니에요.” 

“저도 아마..” 

“건축학과를 나와서 건축가가 된다는 게, 약간 미소가 되는 기분이죠.” 

(일동 웃음)


  

  


WRITTEN BY

프로잡담러 Z | PJW

                    

매거진의 이전글 스툴로 보는 건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