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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Sep 05. 2022

타자기로 세우는 벽, 연필로 올리는 지붕

13호_건축과 동화_특별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 L

게재 : Vol.13 건축과 동화, 2020년 겨울

 


‘아기 돼지 삼형제’는 어릴 때야 성실하고 꼼꼼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 실제로는 늑대는 무섭고 나쁜 동물이라는 교훈에서 그치는 동화였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우리에겐 다가오는 의미가 사뭇 달라진다. 부실 공사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동화, 건물을 지을 때 재료의 선택이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동화… 이제 그런 식으로 밖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늑대도 바람을 불어 댔으니 외부 요인 중 하나인 바람을 잘 표현했다고 볼 수 있겠다.


어떻게 이리 노골적으로 건축을 주요 소재로 삼은 소설이 또 있을까. 뭐, 주인공이 건축가이거나, 위처럼 대놓고 집을 짓고 부수는 정도는 손에 꼽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건축물은 대부분의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작품 내 공간을 구성하는 단계에서 그랜드 캐니언이나 숲 같은 배경이 아닌 이상 건축물들이 작품 배경의 빈칸을 채워 넣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주인공이 죽었나 보다고 생각한다. 문이 쾅 닫히고 열쇠가 자물쇠 안에서 삐걱대고 난 뒤, 모든 소리는 이곳에서 짓눌렸고 희미한 얼룩들이 지워지듯 모서리도, 그림자도 사라져 버렸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뻣뻣하게 굳었고, 더 이상 맞바람이 들이치거나 커튼이 살랑이지 않는다.
- 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문학작품에서 여러 소재들은, 어느 정도의 범주 내에서 특정한 의미와 용도를 상정하고 쓰인다. 재즈가 흘러나오는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우리는 재즈와 바를 통해 작품의 시대상을 유추할 수 있으며 또한 장면의 분위기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작품 속 소재들은 작품의 시대상이나 분위기, 주요한 감정이나 등장인물의 성격 등 작품 내의 속성을 결정하는 역할, 작품 내에서 특정한 장치나 도구로의 역할 등을 수행한다. 결론적으로 유형의 소재이든 무형의 소재이든, 쉬이 말해 각자 나름대로 문장에 배치된 합당한 용도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앞에 콜로세움이 펼쳐져 있으면 우리는 로마 시대가 배경임을 알 수 있다. 빅벤이 눈앞에 있다면 영국이 배경일 것이고. 대저택에 대리석 바닥은 집 주인의 속성 중 하나인 재력을 가늠할 수도 있으며, 이런 식의 특징들은 결과적으로 대상에 대한 독자의 인식을 만들어내는 요소로 작용한다. 특정 시간대와 맞물려서 건축물은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어두운 밤에 긴 복도를 지나간다는 것을 굳이 언급한 상황이라면, 위험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암시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작품의 배경을 채색하는 시공간에서 지대한 위치에 있는 건축물은 그만큼 다양한 기능으로 작품에서 사용된다.


 건축을 이루고 있는 개념들이나 이미지가 문학작품에서 어떻게 보여지고 있고 어떠한 관념으로 기능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우리는 단순히 벽은 벽, 문은 문을 넘어서 다양한 이미지로 요소들을 파악하고 이를 우리의 것에서 보여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만으로 워낙 많은 문학작품들이 있기에 모든 의미, 숨겨진 표현들을 이 글 하나에 다 담을 수는 없을 터이지만, 읽어왔던 문학 작품에서 이러한 식으로 특정 이미지들을 찾아내고 차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건축물들, 더 잘게 쪼개어 건축물의 구성요소들, 인테리어, 재료, 색감까지. 그들이 어떠한 의미로 작용하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려 한다.



종가의 번성은 일문의 뿌리가 깊고도 탄탄하게 뻗어 나가는 것과 같고, 문중의 창성은 일문의 줄기와 가지가 울창 무성하게 우거지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 혼불, 최명희



우리가 흔히 건축 이야기를 시작할 때, 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많은 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은 다른 일반 건물들과는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집이라는 개념은 다른 건축과 관련된 단어들이 유형적인 형태로 사용되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등장한다. 소설에서 벽돌담이 주제가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집은 그렇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면 쉬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포괄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형의 형태로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지엽적으로 부분부분의 특징을 얘기하는 것과 집 자체를 놓고 얘기하는 것에는 그 방식과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크다. 


 우리는 여기에서 집과, 집이 될 수 있는 주택과 아파트를 구분해야 한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전자는 무형의 개념이고, 후자는 유형의 개념이다.


 혼불은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언어의 가공할 만한 집약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다. 우리는 이 안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통적인 공감대와 관념의 뿌리를 매우 자세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대하소설을 읽다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는 집의 개념으로 기와집 같은 건물을 특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경리의 ‘토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땅을 근본으로 생각하고, 사는 공간을 집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땅으로 인식한다. 거기에 땅에 뿌리내린 일문을 더하여 사람들의 모임 또한 집의 개념에 포함시켰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저 문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집에 대한 유대감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데, 자신의 뿌리를 공간에 매어놓았다는 점에서, 또한 책을 읽다 보면 집을 자주 떠나 있는 주인공 강모에게 꾸준히 집으로 들려야 한다는 것이 의무처럼 느껴진다는 대목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뭐, 우리나라는 이렇고, 과연 외국은 어떨까.



그가 그나마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 사비나의 집이었다. 그녀는 매사에 신중하니 들킬 염려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화실에는 지나간 생의 추억, 행복했던 독신 생활의 자취가 남아있었다. 그는 빈 아파트를 메울 침대 하나를 샀고(그에게 다른 가구를 살 여력은 없었다.)......호텔을 나와 취리히의 집(테이블, 의자, 소파, 양탄자를 들여놓은 것도 오래 전 일이다.)으로 돌아가면서 토마시는 달팽이가 자신의 집을 메고 다니듯 자기도 자신의 삶의 방식을 휴대하고 다닌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을 느꼈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테라



 주인공 토마시는 프라하에서 취리히, 취리히에서 다시 프라하로, 마지막에는 시골까지, 작품 내에서 여러 번 거처를 바꾼다. 자의로 이사를 다닌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가 원래 살던 집에 대한 애착이 그리 큰 것은 아니었는데, 그의 성향을 우리는 위 문구에서 알 수 있다. 그의 삶의 방식이 집에 매여 있지 않기에, 거처를 옮기고 나서도 그 방식을 유지할 수 있고, 집이라는 공간에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반대로 그의 아내인 테레자는 자의로 이사를 가자고는 했지만, 집에 대한 애착이 큰 편으로 나오는데, 프라하에서의 행복하지 않은 삶으로 인해 취리히라는 외국으로 이사를 갔지만, 이를 버티지 못해 다시 프라하로 돌아가버린다. 익숙한 프라하와 이후에 가서는 여유로운 시골에서는 살 수 있었지만, 그 기저가 없던 취리히에서는 버티지 못했음을 통해 그녀의 삶의 방식은 공간에 매여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집에 대한 둘의 상반된 감정은 내적 갈등으로 보여지는 서로에 대한 골을 통해서 여러 상황에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토마시처럼 집에 얕은 유대감을 지닌 인물상들은 올가 토카르추크의 ‘방랑자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제목처럼 다양한 형태로 거처를 정하지 않고 방랑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처럼 집의 의미가 희미한 경우는 동유럽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이다. (체코 출신의 밀란 쿤테라, 폴란드 출신의 올가 토카르추크.) 역사적으로 불안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근현대 동유럽 역사를 살펴보면, 집이 흔히 우리가 알고 있던 것처럼 안전한 공간으로 인식될 수가 없었을 것이고, 화를 피해 옮겨다니면서 사는 생활은 위와 같은 삶의 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처럼 집에 대한 등장인물의 인식은, 집의 기본적인 인식과 얼마나 유사한지, 또는 이질적인지에 따라서 단순히 집 자체가 아니라 시대상, 배경 전반의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래서 집이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더 이상 인식되지 않을 경우에는 등장인물이 마땅히 뿌리를 내려놓을 공간이 없어 글을 읽는 동안 묘한 긴장감의 기류를 부여하는 역할도 한다. 또한 위 문구(가구들을 나열하는 그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런 형태여야 진정한 나의 집이다.’ 하는 설정이 언급될 때도 있는데, 이런 경우 또한 그의 충족 여부가 일종의 복선이나 감정선에 영향을 주는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시간여행을 한다고 쳤을 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어느 시간대에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주변 경관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는 소설 속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특정한 건축물의 형태는 단순히 시공간 정보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배경 지식을 내포하고 있다. 주변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에 대한 인물의 감정은 어떠한지 살펴본다면 그 배경을 쉬이 알 수 있다. 그러한 예시들을 살펴보자.



분수의 수반에서 물이 졸졸 흘렀고, 그 주위에 석공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흉측하게 생긴 붉은 벽돌집 벽을 타고 철제 사다리가 달려 있었고, 이 집들은 너무 추한 나머지 그 추함 때문에 아름다워 보였다. 그 뒤로 탑, 회랑, 금빛 기둥이 있는 조그만 아랍풍 궁전이 꼭대기에 있는 또 다른 건물과 이어졌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테라



 유럽 사람들의 시선에서의 뉴욕.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업화가 진행된 미국 도시의 집들을, 유럽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시와 비교하여 추하다고, 덜 세련되었다고 느낀다. 그 추함이 오히려 아름다워 보이는 연유에는 아마도 두 가지 추측이 있는데, 저러한 작은 요소요소에선 추함을 느꼈지만, 뉴욕 자체의 스케일에서 나오는 웅장함을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불행한 유럽에서의 삶과 비교하여 더 나은 뉴욕에서의 생활이 그 시선에 영향을 미쳤다고도 할 수 있다. 특정 부류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글에서 유럽사람들은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 미국 사람들은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 등에 시선을 돌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심정 같아서는 비록 겨울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집을 구하고 싶었다. 오는 이, 가는 이도 없는 산기슭에 풀잎으로 지붕을 엮은 한칸 띠집을 짓고 아랫목이 따끈하게 군불을 때면, 갈자리 방바닥에서 따뜻한 흙 냄새가 피어오른다.
 - 혼불, 최명희



 우리나라 전통적인 시선에서의 이상적인 집. 누항사가 그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툭하면 지금 생활을 팽개쳐버리고 산속에 초가집을 지어 걱정없이 살고 싶다고 외치며 머릿속에 짓는 그 집이다. 물론 현재에서는 저런 마음이 들었다고 산에 들어가진 않겠지만,(현대에 와서는 귀농 정도로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 저러한 마인드가 전반에 깔려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조용히 생활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형성된 이상적인 집과 생활양식의 디테일을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오히려 휴게소가 영업을 하기는 할지 염려되었다. 이렇게 통행량이 적은 길에서 장사가 될 리 없다. 양철 지붕과 묵직한 유리문. 문너머로 보이는 테이블 좌석에는 아무도 없다.
 - 야경, 요네자와 호노부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광경이다. 아무도 없는 아파트 복도라던지, 아무도 없는 도로의 건물이라던지. 양철 지붕은 낡은 건물임을 나타내는 효과적인 표현이고, 묵직한 유리문은 단순히 시각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열었을 때 느껴지는 무게와 소리까지 결합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단순히 건물의 형태를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상황과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



대문을 경계선으로 그네가 한 발을 길목으로 내디뎠을 때, 강모는 순간적으로 새로운 올가미에 걸리고 말았다는 것을 절감한 것이었다. - 혼불, 최명희



대문과 같은 문이라는 건축 요소는 사건의 반전이나 상황의 대비 등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된다. 위 글에서 강모는 사고를 치고 집을 나오면서 장남이라는 자신의 처지와는 반대되는 감정으로, 사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좌불안석의 집안에서 나오면서, 지금까지는 자유로웠던 바깥에서의 생활도 또한 집안에 구속될 것임을 느낀 강모가 올가미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이렇듯 어떠한 상황의 변화를 암시하는 기점이 되는 도구가 문과 같은 단어이다.



암키와 수키와가 서로 이를 맞물고 그물코같이 단단하게 얽혀 단번에 덮어 씌울 듯 거대한 날개를 펼치던 지붕. 괴조의 주둥이처럼 허공으로 치솟아 솟구치던 용마루가 순식간에 자기에게로 내리 꽂히는 아찔함에 강모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 혼불, 최명희


지붕과 천장은 무언가를 덮는다는 기능 때문에, 용마루나 동상, 첨탑과 같은 형태의 요소들은 그 극적인 모양 때문에 인물에게 위압감 등의 특정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사용된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밤에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는 인물은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이 방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한다던지, 외로움을 느낀다던지, 천장이 내려앉을 것만 같은 중압감을 느끼는 장면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백작의 침실과 즉흥적으로 꾸민 이 서재는 구조가 똑같았지만, 그럼에도 두 방은 백작의 기분에 전혀 다른 영향을 미쳤다……옆방(침대, 농, 책상이 있는 방)은 실제적 필요성의 영역에 남아있는 반면, 이 서재(책, ‘대사’, 옐레나의 초상화가 있는 방)은 정신에 더 필수적인 방식으로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 두 방이 차이가 나는 더 큰 요인은 아마도 방이 생겨난 연원 때문일 것이다. 통제와 관리와 타인의 의도 아래 존재하는 방이 실제보다 더 작아 보인다고 한다면, 비밀리에 존재하는 방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상상하는 만큼 넓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혁명 이후로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 밖으로 평생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된 주인공 로스토프 백작은 호텔 구조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빼앗긴 스위트룸 대신 빈 공간을 이용해 비밀 공간을 제작한다. 실제적 필요성과 정신적 필요성, 공개된 공간과 비밀스런 공간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서 작가는 단순히 공간의 분리를 설명하는 것 뿐만 아니라 백작의 생활양식과 태도까지 설명한다. 집이라는 공간을 인물과 동치시켜 인물의 내면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그 집의 구성과 인테리어를 통해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효과적으로 인물상을 표현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이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파기 위해서 올라가는 거지.’
 - 당신 인생의 이야기 ‘바빌론의 탑’, 테드 창



처음에 집 짓는 소설은 손에 꼽는다고 했는데, 말 그대로 없지는 않다. 테드 창의 단편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 첫번째 이야기 ‘바빌론의 탑’이 그 증거이다. 물론 작가가 작가인 만큼 평범하게 벽돌집을 짓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하늘의 천장을 뚫고 그 위로 올라가기 위해 탑을 쌓는 좀 더 숭고한 목표를 지닌 광부들의 이야기이다.


 바빌론의 탑은 굉장히 오래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부터에서 기묘함이 다분히 묻어난다. 대부분의 건물이 높게 짓고 그 아래를, 그 안을 바라본다고 하면, 바빌론의 탑은 그렇게 높게 짓고도 더 위를 바라보는 건물이라는점이다. 탑은 위로 올라가기 위한 경사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 생성된 작은 마을들은 부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탑의 형태는 올라가는 사람들의 이동통로로서 편의를 위한 형태로 지어져 왔고, 탑의 주민들은 그에 적응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바빌론의 탑은 상징이다. 노골적으로 탑에 벽돌을 나르고 올리는 장면을 작가는 설명하고 있지만, 또 걸맞은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몇 세기에 걸쳐 쌓아 올려지면서 궁극적으로 이 탑은 상징이 되라고 만들어진다. 어떤 사람은 종교적인 의미에서 이 이야기를 받아들일 것이고, 건축학도라면 어쩌면 이 글에서 초고층빌딩이 왜 만들어지는가, 초고층빌딩에서 높이가 과연 합당한 당위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 상징성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내가 그랬다.). 꼭 그렇게 글에서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바빌론의 탑’은 실질적 주인공이 건축물인, 그 건축물의 주 목적과 내용이 주된 스토리의 진행이 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독특한 형식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어떻게 보면 제 프로젝트의 시나리오를 짜는데 있어서 최고의 레퍼런스가 아닐까?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건축물들이나 건축적 요소, 집이 어떻게 소설 속에서 사용되는지 알아보았다. 건물을 사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에, 그 생활양식은 건축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덕분에 작가들은 건축물을 설명하고 표현하는 것 만으로도 상황이나 인물상을 에둘러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 모든 방식의 건축물이 소설 속에서 사용되는 예시를 소개하지는 못하겠지만, 다양한 소설들을 읽으면서 어떠한 요소가 어떠한 감정과 상황하고 연결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효과적으로 우리네 업에서 그 요소들을 공감대에 맞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최명희, (1996), 혼불, 매안

올가 토카르추크, (2019), 방랑자들, 민음사

에이모 토울스, (2018), 모스크바의 신사, 현대문학

테드 창, (2016),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엘리

요네자와 호노부, (2015), 야경, 엘릭시르

밀란 쿤테라, (199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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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잡담러 L |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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