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우리는 편지 위에서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다

by 잔머리 토마토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하는 도구로 편지를 떠올리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릴 적 편지는 어버이날 연례행사에 따라오는 숙제 같은 것이었다.

내용도 대부분 비슷했다. 마치 일기처럼.


부모님께 쓰는 편지는 주로 과거에 대한 회한과 미래의 다짐이 포함되었다.

to로 시작해서 from으로 끝나는 틀 안에서, 나름의 기승전결을 갖춘 편지를 써 내려가곤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엔 진심이 담기기도 했다.


편지를 쓴다는 건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 편지지를 꺼내 고르고, 책상에 앉아 무슨 말을 쓸지 머리를 싸맨다. 빈 공간은 허용되지 않기에 빽빽하고 성실하게 쓴다. 다 쓰면 봉투에 넣고 아끼던 스티커 하나를 골라 봉인한다. 글자가 마음에 안 들거나 문장이 어색하면 다시 새로운 편지지를 꺼내서 쓰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편지 쓰기는 참 번거롭고도 각별한 행위다.





하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편지는 보낸 편지보다는 '받은 편지'다.

내게 그것은 아빠의 편지였다.


기숙학원에 입소해 재수를 하던 시절,

표현에 서툰 아빠는 종이 위에서는 이상하리만큼 따스했다.


온갖 격려와 응원의 문장들.

30년 넘게 기자로 살아온 아빠의 편지는 그를 닮아 성실하게 도착했다.

오늘은 또 어떤 내용이 와 있을까, 선생님이 전달해 주는 그 편지에 또 힘을 얻고 일주일을 살아냈다.

어쩌면 실제로는 볼 수 없는, 편지 속에서만 존재하는 아빠의 모습이 반가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 편지 속 문장 중 하나인 '터널 끝에 반드시 빛은 있다'는 말은

마음의 서랍 속에 넣어두고 힘들 때마다 꺼내어 본다.

아프고 시렸던 무채색의 시간 속에 그 편지는 연고 같은 존재로 남아있다.


장문의 카톡 대신에 장문의 편지를 써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꾹꾹 눌러쓴 글씨,

조금은 나를 내려놓고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

읽음 표시도, 답장 따위도 필요 없는 그 마음.


가끔은 편지 쓰기가 그립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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