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카페를 찾아 떠난다고 했다. 카페를 방문하거나 카페에 간다라고 말하지 않고 왜 찾아 떠난다고 했을까? 커피 한잔에 노트북을 펼치고 핸드폰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테이블은 황학동 시장의 좌판과 다르지 않았다.
주인의 입장에서 이런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카페주인의 표정을 살피고 온전하게 작가만의 서재를 옮겨 놓기에 기대해도 좋은 곳을 찾아가려고 했다.
주인의 표정도 카페의 문화에 속했고 주인의 착한 배려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작가에게는 작가만의 서재가 있지만 노트북을 들고 자신이 편하게 느끼는 카페를 찾아 떠나는 것은 그만의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카페는 글쓰기에 적합한 곳이 아닐 수도 있지만 작가만의 기준에 맞는 카페를 선호하고 자신의 산책길과 동선이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을 선호했다. 창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계절의 변화를 살피거나 알 수 없는 사연에 마음을 열고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카페를 선택하는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찾는 수고를 줄여 자신이 만족하는 곳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애니마에서 함께 일하는 부부는 적당한 커피값으로 동네 카페의 문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내어주었고, 부부의 배려는 내가 카페 애니마를 방문하는 목적과 다르지 않았다.
칠 년 삼 개월 동안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개인사정으로 카페 애니마의 영업을 종료하고 강릉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강릉은 아내의 고향입니다.
강릉에서도 카페 애니마로 살겠습니다.
강릉까지 오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족처럼 염려해 주시는 말씀을 잊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가겠습니다.
하루에도 달라지는 커피의 맛을 변함없이 예쁘다 라고 해주셔서 새로운 도전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강릉은 아내와 제게도 먼 곳이지만 애니마의 커피와 함께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제가 강릉으로 떠나기 전에 적립하신 포인트는 개수와 무관하게 애니마의 커피로 보상하겠습니다.
그동안 부부는 카페를 찾아준 손님의 사랑으로 행복했으며 아내의 고향까지 영업종료에 담고 있었다.
장문의 안내문은 깨알 같은 손 글씨로 테이블마다 놓여 있었다. 자주 방문하던 카페의 영업종료 안내문을 바라보는 눈길이 오래 머물다 사라졌다.
영업종료 안내문에는 곡진한 마음을 꾹꾹 눌러 고마움을 전했고 주인의 감사함과 손님의 서운함이 같은 색으로 채색되어 가는 것 같았다.
병원 야외 휴게실에 작은 봄이 머물고 있었다. 겨울 속을 걸어와 봄의 문을 열고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모두에게 더없이 만족스러운 봄 빛이었다.
작은 봄 야외 휴게실에 같은 색의 환의를 입고 있는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위로하고 위로받고 있었지만 지난겨울을 못 마땅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울의 추위는 그들에게 회복의 시간을 더디게 했으며 문밖걸음의 용기를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딸은 엄마의 엄마처럼 말하고 있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목울대를 간간히 넘으려 할 뿐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작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위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뿐, 딸을 향한 표정 속에 미안함이 가득해 보였다.
엄마는 딸의 머리카락을 귀뒤로 단정하게 넘겨주며 말했다.
“학교에 잘 다녀와”.
“엄마 이렇게 밖에 나오니까 좋지?”
“길조심 차조심하고 다녀와”.
“우리 자주 나올까? 오늘은 따뜻해서 너무 좋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 해?”
“엄마 그거 알아? 언니보다 내가 엄마를 더 사랑하고 많이 좋아하는 거?”
“학교 마치고 집으로 바로 오는 거야?”
“엄마 퇴원하면 우리 강릉에 갈까?”
딸은 엄마를 바라보며 웃었고 엄마는 말없이 웃으며 듣고 있었다.
강릉에는 딸의 무엇이 있을까?
강릉에는 엄마의 딸이 살고 있을까? 딸의 언니가 살고 있을까?
강릉에는 엄마의 오랜 기억이 남아 있는 걸까?
강릉은 모두에게 다가와 위로가 될 수 있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엄마는 이렇게 말했고 딸은 엄마의 미소를 그렇게 알아듣고 있었다. 작은 봄빛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