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는 그랬을까?
ooo님 맞으시죠?
뺑소니로 신고가 들어와서 연락드립니다 oo경찰서로 오십시오
뺑소니라니 사실 여부를 떠나서 정신이 아득하게 내려앉았다. 경찰서에 오라는 말도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처럼 철렁한 일인데 뺑소니라니 철렁한 마음이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보이스 피싱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이제는 이런 걸로 사람을 못 살게 하는군 하던 때도 아니었다.
누가 나를 무엇 때문에 뺑소니 범으로 신고를 하고 경찰서에서 나를 찾는 상황을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경찰의 상황설명과 지명은 낯설었다.
차적으로 신고가 들어와 차적조회후 연락을 하는 것이며 상대방이 나와 대화를 했다는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경찰관의 설명으로 나는 상당히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 같았다.
"oo 일까지 oo 경찰서로 오십시오".
전화를 받은 날부터 3일 후에 경찰서에 보잔다. 3일 후? 3일을 내려앉은 마음으로 걸어 다니기 조차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 입에서 내려앉은 마음으로 다니기 조차 어려운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는 말이 나와 버렸다
"아닙니다 내일 가겠습니다 내일은 안될까요"?
경찰관은 말이 없었다 달력을 보고 날자를 조정하는 것인지, 업무를 보는 중이라 내 말을 흘려 들었는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통상 경찰관과의 대화는 피의자(?)가 말을 끊거나 채근하는 말에 궁색한 답변을 할 때 사용하는 상대방의 정연하지 못한 답변에서 보이는 태도가 침묵일 수 있다. 짧은 순간이지만 경찰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 그럼 내일 오시고 경찰서에 오셔서 ooo 경사를 찾으세요"
전화를 끊고 나는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갑자기 받은 전화에 경찰서라는 말에 압도되어 그랬을까? 아니 뺑소니에 압도되어 뺑소니범(?)에 처한 상황을 꼼꼼하게 되묻지도 못했다.
전화를 끊고 왜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는지 되묻고 있었지만 다시 전화를 걸 용기도 나지 않았으며 하지도 못했다.
오라는 날자는 3일 후인데 그동안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고 나는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답변을 궁리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잘못을 했는지도 살펴볼 일이었다.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질문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음으로 해서 범자가 붙는 범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내일 가겠습니다"는 또 무슨 맹랑한 말 같지도 않은 말이란 말인가?
이쯤 되면 없던 일도 있는 것처럼 한쪽으로 기울고, 무엇인가 있을 것 같은 확신이 고개를 들고 나올 것 만 같았다. 그날은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누군가 손가락으로 나를 지목하고 서 있었다.
경찰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제 발로 오라는 날자보다 서둘러 왔으니 어째야 하는지 궁리할 틈을 내게 주어야 했지만 어제는 잠자리에서
손가락질만 당하고 한숨도 자지 못하고 왔으니 제정신일리가 없었다.
숨만 쉬고 살아도 오라는 곳이 여기 말고 어느 곳이 제 발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을까? 싶은 곳이었다.
짜증이 한껏 올라왔다. 그제야 나를 꿈속에서 손가락질을 당하게 했던 얼굴을 보고 싶었다.
"ooo경사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경찰서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담당 경찰관을 찾았다. 경사계급장을 달고 정복을 입은 경찰관이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접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사고가 있었다고 추정하는 지역과 사고경위를 설명하며 위치를 확인하고 진위 여부에 대한 확인을 시작했지만 경찰관이 설명하는 곳은 거주지와 다른 곳이었다. 하지만 내가 다른 용무로 방문하거나 지나쳐 올 수도 있었기 때문에 담당 결찰관은 개연성 여부를 캐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사고지점을 업무상으로 혹은 개인의 사적 용무로 지나쳐 온 경우가 있다고 하여도 내가 그곳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면 선생님 차량을 제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차량을 가지고 오셨나요"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을 함께 확인하고 특별한 접촉사고의 흔적이나 인사사고의 차량파손을 확인했지만
특별한 사고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담당경찰관은 한쪽 의자에 자기가 지명할 때까지 앉아 있기를 권하면서 다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중년의 남성이 담당 경사를 찾아와 자신을 소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그분과 대화를 하셨으니 그분의 얼굴을 아시겠지요 지금 여기에 그분이 계시니 선생님이 찾아보시겠습니까?"
일순간 경찰서 안이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사복 경찰들이 한 마디씩 했다
"저는 아닙니다"
"저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 소리도 할 수 없었지만 그 사람은 나를 찾지 못했다 물론 나와도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나를 지목하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차량 번호를 잘못 알고 있는 경우 일 수 있습니다. 유사한 차량번호를 조회해서 수사를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다음에 연락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경찰관은 신고자가 돌아간 후 나를 보고 상황을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설명은 간단했지만 아득한 정신줄을 부여잡고 있는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는데 오래 걸렸다.
"보통 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경찰서에서 오라면 오라는 날자에 오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경찰관이 신고자와 나를 대면시켰으면 상황은 내가 원하는 결말이 아닐 수도 있었다. 두 사람을 대면시켰을 때 그 사람이 나를 지목해서 나를 뺑소니범의 입장에 세웠을지 아니라고 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아득한 순간이었다.
지금은 다른 방법으로 피해신고를 할 수도 있으며 확인절차도 어렵지 않게 처리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또한 내게 과도한 피해를 준 가해자에게 피해 사실에 대한 무고죄를 물을 수 도 있지만 과거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억울한 피해 사실을 벗어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때가 있었을 뿐이다.
"하물며 오라는 날자보다 빨리 오겠다는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