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통이 : 겉모양은 그럴듯하나 속은 보잘것없는 물건이나 사람.
핸드폰을 새로 들였다.
딸이 사용하던 핸드폰을 받아 소중하게 사용하면서 십 년을 사용했다. 딸이 사용하던 시간을 더하면 사용하던 폰 회사의 시리즈 중에 빠른에 속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의 폰은 배터리가 더 이상 견딜 정도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으니 상태의 심각성에 대하여 빠른 인식이 필요함을 권고하고 나섰다.
수백 장의 사진과 수십 명의 이름이 어느 날 한 번에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메모장에 빽빽한 나의 스토리도 사라질 것만 같은 두려움도 나를 들썽거리게 했다.
우리가 가는 길은 내비게이션이, 친구의 이름과 전 직장의 후배들과 가족의 이름은 주소록과 카톡의 도움 없이는 찾지 못한다는 것과, 익숙한 손가락질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을 기억 속의 편린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단축번호 1,2,3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게 폰이 모든 기억을 잃는 것은 문명세계에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불행한 나를 마주하는 상황인 것이다. 핸드폰 없이 무인도에 조난을 당한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급한 마음에 딸에게 문제 해결을 부탁했다.
딸이 권한 핸드폰의 화면은 크고 넓었다. 손가락의 스치는 작은 터치로도 화면의 이동은 자연스러웠고 급한 마음의 손가락질은 모음과 자음의 형태를 만들지 못하고 저들끼리 따로 놀았다.
저렴한 보급폰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부모님의 효도폰에 적합한 상품이며 구입과 동시에 폰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믿지 못할 광고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오호라~~~ 살벌한 고통에 직면해 있는 나를 구하고 스토리가 있는 메모장과 생이별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이보다 기쁜 일이 없었다.
[딸 아빠가 가서 해결하고 올게] 나는 과장됐고
[그러지 마시고 같이 가요] 딸은 불안했고
[신분증 들고 가면 알아서 해줄 텐데 뭐] 나는 거만했고
[신경 쓰지 말고 거기 위치가 어디니?] 나는 내비게이션만 쳐다보면서 말하고 있었다.
나는 호기로웠다.
과거 나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핸드폰을 구매해 주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 경험으로 충분할 것 같은 자신감을 앞세워 호기로웠다.
강산이 두 번 변하기 전에 나는 딸의 폰을 새로 구매해 준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고, 나의 태도 또한 당당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에 오랜만에 젊은 아빠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강산이 두 번 변했다는 것은 내가 그동안 삶의 모든 것에 관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변화에 익숙한 것도 아님을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또한 보편적 가치나 일상적 개념에 익숙한 나는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소통하고 살았다. 그 이상은 덤으로 주는 서비스였고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손해 보는 일은 없었다.
덤으로 주겠다는 것은 이미 손에 쥐고 있는 것으로 충분했으니 필요 없는 일이었다. 적당히 만족스러웠다.
삶에 대한 오만불손한 태도는 어느새 많은 변화를 지나쳐가고 있었으며, 퇴화된 시력의 변화가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과물 정도라고 앙증맞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생각보다 폰의 카톡은 거대했다. 카톡으로 대화하는 시대에 카톡이 내장하고 있는 양은 생각보다 많았다.
친구의 카톡은 십 수년 이상 대화와 미디어를 간직하고 있어서 배가 불룩한 중년의 허리둘레처럼 빵빵했다. 배부른 모든 카톡의 히스토리는 강산이 한번 변하도록 그 자리에서 나와 함께 늙어 가고 있었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핸드폰의 내부에는 수많은 히스토리가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만든 것 같지만 그들이 스스로 들어와 있었다.
알지 못하는 것들이 언제 이렇게 거대한 왕국을 만들어 살고 있는지 신기했다.
분리수거도 하지 못했으니 십수 년 전의 물건이 문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도 함께 살고 있었다.
핸드폰을 구매하기 전에 대화 내용과 채팅방은 일정용량을 초과하지 않는 한 백업이 가능하지만 정리하기 어려운 사진, 동영상, 주고받은 링크, 파일, 대화와 채팅방을 백업하기 위하여 카카오톡의 톡** 서비스에 가입하고 월 구독료를 결제하고 백업을 진행했다.
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은 이름만 알고 있던 포클레인을 운전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었다.
구 핸드폰에 있던 캘린더, 전화번호, 사진, 사용하던 어플들 심지어 와이파이까지 핸드폰끼리 C타입 충전줄을
이용해서 신박하게 옮겨야 했다. 이것도 이름만 알고 있는 포클레인과 다르지 않았다. 실질문맹이었다.
모든 것은 딸의 노고가 더해져 마무리되었다.
나의 부연 설명을 오호라~~ , 혹은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속된 말로 거저 줘도 못 먹는 시대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이다. 핸드폰은 빙산의 일각이다. 나는 빙산의 일각과 강산의 변화를 다시 바라보고 살 것이다. 모르면 그저 그런 것이고 알고 나면 불편한 것이다.
오늘도 나만 굴통이 처럼 거기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