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부터 행복은 시작됩니다.
행복이 앞서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불편한 흠결 앞에서 새로운 행복이 출발하는 것이지요.
눈이 잘 보이지 않아도 그만큼이라도 보이는 것은 행복한 것이고, 걷는 것이 불편해도 조금 걷는 행운이 함께 한다면 행복한 것입니다. 잘 보이지 않아서 불편하지만 그만큼이라도 보인다면 행복한 것이지요.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행복이지만 남아있는 것이 불편함이 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커피를 원하는 만큼 마실 수 없을 때가 올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늦은 시간에도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생각이 부족한 시간도 분명 올 것입니다. 앞뒤를 가늠하지 못하겠지만 남아있다는 사실 만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안경점에서 측정한 저의 교정시력은 0.9와 0.6입니다. 시력은 때로 좋아지고 안 보이고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제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시력을 안경으로 교정하여도 맑고 선명함을 더 이상 기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높은 안압은 항상 저를 불안하게 합니다.
안경점의 선생님은 손상된 시력이 회복할 수 없는 한계점을 만난 것이고 더 선명하면 어지러울 수 있고, 어지러움을 최소화하려면 여기에서 기대를 멈춰야 한다고 하더군요.
슬프게도 저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행복하려고 해도 두려움은 가까이 있습니다.
저는 당뇨병으로 오래도록 고생했습니다.
퇴직 전에 하지의 혈류가 심장으로 합류하지 못하면서 발은 붓고 검붉게 물들어 갔습니다. 보기에 흉했습니다
보행은 불편해졌고 움직임이 더 어려워졌지요. 잘 보이지 않는 교정시력으로도 늦은 단풍잎 같은 제 몸은 선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봐도 충분하게 보이는 불편함이 존재했습니다.
다시 또 한 번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도 따뜻한 커피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걸음이 남아 있고, 편의점까지 가로수 옆을 지나갈 수 있고, 화장실을 찾아갈 수 있는 발걸음이 아직 저에게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할까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시력의 한계점에서 편의점의 가로수에서 갑자기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바라보는 시력의 관점을 새로운 시각의 관점으로 달리하면 거기서부터 행복하고, 커피를 들고 돌아서는 테이블까지의 거리가 가깝지 않을까
기대를 가져봅니다.
보이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니 행복해라 행복해라 나를 윽박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지 않나요?
어렵지 않은 일을 어렵게 마주하고 살아왔으니 행복하고 싶은 것이 과한 욕심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거기서부터 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삶을 욕심으로 더하고 빼내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지요.
쓰는 욕심도 과할 뻔했습니다. 오랜 꿈을 이룬 것이 스스로 출중한 능력을 발휘해서 이루어 낸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갈 뻔했습니다. 지금보다 선명한 주제를 찾아내는 능력과 스스로 넘쳐나는 어휘를 주체하지 못하면서 오호라를 입에 달고 착각 속에 사는 사람 말입니다.
힘들게 저와 마주하지 않아도 나를 선명한 작가님들과 줄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여행도 즐겁게 다녀오고, 쌓아둔 책도 매일 바라만 보고, 가와나를 잊을 때쯤 자판을 바라볼 수 있는 저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행복 속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생각 없이 불행한 것은 시간문제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부족한 어휘와 주체적 주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족한 출발점과 과정 속에서 어리석은 사람처럼 살아도 저는 행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행한 일입니다. 스스로 합리화한다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강박이 그를 위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몰래 훔쳐낸 말들이 아름답지도 않을 것입니다. 한 줄이 세월과 같이 흘러가도 보이는 만큼의 시력으로 씀을 바라볼 수 있다면 나는 끝에서 마지막이라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남을 위해 행복을 덜어낼 수 있는 마음도 더불어 커져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나의 회복할 수 없는 시력과 불편한 걸음걸이와 편안한 씀이 더 소중해지는 가을입니다. 느낌으로 행복해지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갑자기 추워진 계절과 함께 겨울 이불이 따뜻합니다. 저도 따뜻한 행복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도 가을 코트와 마주하면서 행복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