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똑똑하게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남은 시간을 테트리스처럼 허망하게 내려놓아서는 안된다는 강박에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상대방의 화투패를 읽어야 내 손이 가벼워지는 것처럼 남은 시간에 대한 무게를 짐작해야 한다.
남아 있는 시간의 총량에서 무료한 무게감을 빼낸 시간과 나머지 시간의 무게를 저울질하고 칸수를 계산하고
가감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불필요한 생각도 버리는 박스에 넣지 못하고 손에 든 색 바랜 책처럼 갈등이 깊어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외면한다고 다음 차례로 온전하게 내려앉는 것도 욕심이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안압이 높아요. 녹내장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소리를 듣고 머리가 지근거리기 시작했다. 높은 안압의 작용인지 심리적 압박 때문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정상적인 안압이 10~20의 범위 안에 있다면 나의 안압은 한여름 햇볕에 노출된 테니스 공처럼 38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이들이 한번 아프고 회복하면 재롱거리가 늘어난다고 한다. 반대로 늙어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우리도 비슷
했으면 싶었다. 늙은이의 과욕이라도 그랬으면 싶었다. 그러면 나의 두려움이 조금 묽어지리라 생각했다.
환자분 혹시 하시는 일이 뭔가요? 젊은 여의사가 물었다.
보통 정형외과 의사는 환자의 생계수단과 상처부위의 회복연관성을 생각하고 입원기간을 결정하며 회복시간도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주고받을 때가 있다.
젊은 여의사의 질문은 안과 검사실의 건조한 분위기와 공기처럼 의미 없이 느껴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건조한 우리의 보이지 않는 대화만 떠다녔다.
불이 꺼진 치료실에 턱을 괘고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한 나는 뜻밖의 질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저로 홍채를 치료하기 전에 환자를 안정시키기 위해서였을까? 치료의 난이도가 치료 전의 상태 보다
어려워질 가능성을 암시하는 질문일까? 나는 잠시 답을 찾지 못했다.
손목 터널 증후군 수술로 출혈을 잡지 못해 반복되는 수술을 할 때 나는 병실 벽이 좁아지는 폐쇄 공포증을 느낀 적이 있었다. 천장은 내려앉고 벽은 나를 통로 가까이 밀어냈다.
안과의사의 질문은 그 정형외과 의사의 말투를 연상시켰다.
젊은 의사는 왜 그렇게 질문했을까? 안과의사가 왜 그랬을까?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내가 나에게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나는 적응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안압은 38을 지나고 있었다. 또 한 번 천장이 코앞까지 내려오는 참담함을 마주하고 서 있게 된 것이다.
눈으로 세상을 보고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지금 안과에 와 있으며 내 눈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인가 강조하는 것처럼 눈을 앞세워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글을 씁니다. 나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었으니까 거짓된 말은 아니었다.
여의사는 작가인가요 되묻지 않았다. 되물었으면 작가라고 말했을까? 작가이고 싶습니다라고 한발 물러나 대답했을까? 지금도 궁금했다. 그리고 낯설었다.
선생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지 몰랐어요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이 말이 먼저였을까?
젊은 여의사는 환자와 협의하지 않았다. 자신의 지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환자를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수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레이저 치료로 낮추어가는 안압은 한계가 있습니다. 다음 진료에는 결정을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나는 불과 열흘 전에 안압의 정상범위와 한여름에 코트에 놓여 있는 테니스 공의 압력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루트가 들어간 방정식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고약한 취미를 가진 과외 선생일 뿐이었다.
이제 삶의 결정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결국 나는 수술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삶에 아무런 결정권도 없이 언제나 그렇게 수술대에 눕고 싶지는 않다. 시간을 똑똑하게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갑자기 내려야 하는 결정이나 심사숙고하는 결정이나 오그라든 마음을 펴지 못하는 것은 매 한 가지 아니던가
말이다. 우리는 불편함으로 동판에 꾹꾹 눌러 새겨진 통증만 고통스럽게 기억한다.
나는 동안거중에 있으며 나의 야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너에게 소중한 것은 언제부터 소중했니? 잘 생각해 봐 소중한 것은 그렇게 취급하는 것이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