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행:스님들이 참선을 하다가 잠시 방선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당신 십 년은 늙어 보인다.
이 사람 뭔가 보이나?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무지막지한 말을 가볍게 하고 있구나 싶었다.
와이프에게도 어설프거나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눈에 보일정도면 나는 지금 몹시 당황하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할 거야, 저렇게 할 거야, 그곳에 가보고 싶어, 에서 이렇게 하고 싶었어 그런 길을 가고 싶었어 그곳에 가보고 싶었어 로 시제의 변화가 끼어들기 시작했다.
읽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의 외연을 그 자리에 못 박아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간간한 동치미 국물에 밍밍한 물만 더해가면 식은 뭇국이 되어가는 이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몸이 삐걱거리는 증상은 다양했다. 당뇨가 없어도 지탱하기 어려운 몸이 다양한 조미료로 맛을 내고 거기에 욕심을 부려 인공조미료를 더했으니 오묘한 맛으로 미각을 상실해 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상을 벗어나는 소리가 자연스러웠고 와중에 눈은 다른 문제였다. 나의 안압은 모니터 커서의 위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시력은 두 칸 정도 내려앉는듯했고 그나마 선명했던 물체가 보이지 않았다.
녹내장, 시력, 수술 등의 단어들이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타고 당구 동영상을 밀어냈다.
동안거 기간에 읽어야 할 대출도서 5권을 반납했다. 벽에 붙은 동안거 수칙도 소리 내 떼어냈다. 동안거의 기대가 무너지면서 평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나를 의기소침하게 했다.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모든 것을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방지턱은 멈추라고 있는 것이 아니며 천천히 가라는 신호라고, 넘고 나면 다시 평탄한 길이 나온다고
(코나조아)
거리의 이정표와 킬로수 제한 숫자가 분별되지 않았다. 맑은 하늘은 맑은 하늘대로 있었지만 그 하늘아래
가고, 오고, 서고처럼 우리를 제한적으로 규제하는 멈추시오 돌아가시오가 보이지 않았다. 화살표시는 직감과 느낌으로 방향을 알 수 있었다. 한 번에 이렇게 맛이 가는구나 싶었다
함께 살아왔던 익숙한 출발선이 갑자기 지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내 몸이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사회적
규칙을 새로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건강한 사람은 바라는 것이 많아 하지만 아픈 사람은 바라는 것이 한 가지밖에 없어
(강이슬 안 느끼한 산문집)
지금도 친구들의 카톡은 붉은 주식 포인트로 가득하다, 세상은 이처럼 반짝인다. 저들에게는 반짝이는 아름다움이다.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고 부정하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질 수 없어서 그렇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세상은 저 스스로 아름답고 반짝 거린다. 어떤 것은 단지 나의 애착인형처럼 한편으로 단지 소중할 뿐이다.
모든 것이 평등하게 아름답지 않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내게만 아름다울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남들에게 아름다운 것은 작은 시샘으로 족하다. 꼭 내 것이 될 필요성은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아름답지 않았던 것이나 그들에게 존재하던 아름다움이 분명 있었으니까 모든 것은 공평하고 아름답다.
지금 네가 느끼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억울함이야 그래서 그렇게 견디기 힘든 거야.
우리가 힘든 건 내속에 소용돌이치는 감정 때문이지 벌어진 일 때문이 아니야(어른의 어휘력)
내 삶의 욕심에서 벗어나야 나도 아름답지 않을까? 나는 동안거 속에서 두려움과 슬픔을 가득 안고 포행길에 내려섰다. 그런다고 나는 깨닫고 위로받을 수 있을까? 새로움을 마주 할 수 있을까?
나의 야훼는 나의 질문에 답을 하실까?
읽고 쓰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을까?.
그것은 나에게만 소중한 것일까?
나는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