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의 동안거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그의 생각 속에 머무는 것이었고 지나온 세월처럼 변하지 않는 모습도 그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붙여 달라지는 것이라면 아마도 내 욕심을 끼워 넣어 더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의 동안거는 언제나 조용했고 때로는 생각보다 거창하거나, 요란스럽기도 했다. 소리는 나에게도 충분히 크기를 가늠할 수 있도록 시작을 알리는 태평소처럼 한옥타브 높은 소리였다.
나름의 준비는 있었겠지만 하겠다고 했으니 바라볼 뿐이었다. 숙소를 정하고 달포를 넘기는 것도 아니고 들고
나는 것을 그의 공간에서 준비했으며 지치면 이제 끝내야지 하고 그의 공간에서 나오면 그만 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그의 안압이 테니스 공처럼 부풀어 올랐다. 시작부터 그는 예상치 못한 화두와 대면 했다.
그 높은 안압이 가져온 화두가 그를 가두기 시작했고, 취미 삼아 시작한 운동으로 지역예선을 거쳐야 하는
묘한 딜레마에 깊게 빠져 든 것 같았다.
심심하게 그를 붙잡는 것과 다른 것이었다. 조금도 대처가 가능한 범위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고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불안과 고통은 크기와 관계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확연한 것은 고통보다 불안이었다.
그의 동안거는 시작부터 현실 속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불안으로 몸집을 불려 가면서 커지는 듯 보였다.
나는 그와 사십 년을 함께 하면서 다양한 모습의 동안거를 보며 살았다.
때로는 완고했고 고집스러웠고 때때로 충실한 결과를 마주하는 모습을 마주할 때도 있었으니 그의 노력으로 마주한 결과만 보면 나름 그에게 반짝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했다. 지금까지 그가 격은 고통뿐만 아니라 심한 내상도 슬기롭게 이겨냈고 자신의 인생을 싫어하는 무채색으로 물들지 않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면, 이번일은 8회 말 원아웃에 게임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처럼 어려워했다는 것이다.
그는 순간의 기분이 엉망인 상태로 오늘 하루를 그 보다 더한 엉망으로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 기분에 휩싸여 지나가는 기분에 태클을 걸고 지나쳐 가지 못하게 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그 답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는 알약을 흘려도 이유가 생겼고, 모든 것이 가치 없는 불편한 이유와 원인이 되기에 충분했다.
마주하는 이유보다 결과에 대한 반응이 예민해졌다.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평소 그의 모습과 거리가 있었다.
허둥대는 모습은 최악의 결과를 그 사람 혼자서 보고 온듯했다. 나는 그동안 이보다 최악의 순간을 그의 등뒤에서 차마 고개를 돌려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슬픔이 내게 전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그의 위로 안에 있었다.
남편과 함께하는 작은 공간이 더없이 옹색해지면서 좁아졌다. 옹색함이 간격을 밀어내도 우리의 대화는 모든
상황을 현명하게 회복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낯섦을 숨길 수 없도록 좁아졌다.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의 해결방법이 있어서 가능했지만 그 안에는
부부의 독특한 방법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익숙한 행동패턴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남편은 동안거 중에 무엇을 얻을까? 내게 없는 것을 새롭게 찾을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이렇게 결과를 해결
해야 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다. 찾으려는 것과 결과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고 극명하게 달랐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이 언제부터 그의 전부가 되었을까? 그가 또 손에 든 패를 들고 마지막 결단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자의적으로 노력해서 해결할 수 없는 선에 또 서 있구나 그래서 저 사람은 저렇게 당황하고 있구나
아직도 그의 모든 것은 진행 중이다. 나의 기척이 그에게 전해져 그가 문을 열고 나를 바라보기를 기다린다.
젊은 날에는 그가 무엇을 하든 끝의 모든 것이 과정인 듯싶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결과일 따름인 듯 초조해 보였다 (김애란 : 서른)
과정은 다시 갈 수 있지만 결과는 그를 선택의 기로에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