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진료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무거운 침묵과 고정되지 않는 시선이 엘리베이터 안을 무겁게 내려앉게 했다.
환의를 입은 환자와 보호자의 침묵으로 좁은 엘리베이터는 스스러운 관계처럼 적당한 거리를 만들려고 애쓰고 있었다. 짧지만 놀라운 인내심과 오로지 N극만이 공존하는 공간이 된다
가방을 가슴높이로 올리고 숨을 참았다. 내려야 하는 층은 지하 2층이라 가장 깊숙하게 밀려 들어와 있었다.
모두가 함께 오도카니 제자리에 서서 내려가는 층수에 집중하는 것이 무거운 침묵에 대응하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침묵과 시선이 한 곳으로 밀려들어 온 순간 나는 숨이 멎었다.
나의 핸드폰 벨소리가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일순간의 침묵을 형영상조한 상태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구입한 백팩용 배낭은 구석구석 수납공간이 미로처럼 숨어 있다. 습관처럼 외출 시 넣어 다니는 책과, 핸드폰 충전기, 병원에서 확인한 진료확인서가 들어 있는 가방은 김광석을 찾아내지 못했다.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볼륨은 최대치로 올려놓은 것 같았다. 중저음의 김광석은 나 김광석이요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김광석 때문에 내가 부끄러운 것인지 나 때문에 김광석이 난감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곳 강물되리니
엘리베이터 안은 환자와 보호자로 가득 차서 내릴 수 없었다. 안으로 밀려와 있던 나도 내릴 수 없었지만 오늘따라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내리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모두가 김광석을 좋아하나 싶은 나는 와중에도 잔망스럽고 맹랑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병원 엘리베이터에는 김광석의 그대 잘 가라 혹은 무덤도 없이라는 구절을 함부로 꺼내 놓으면 안 되는 사람과 보호자가 타고 있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내가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애먼 김광석은 용감했고 나는 난감한 얼굴로 가방을 뒤집어엎어 버리고 싶었다. 계속되는 김광석의 외침 속에 핸드폰은 가방 속 어느 구석진 곳에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병원 엘리베이터에 그날 기분 좋은 사람이 타고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면 나의 실수는 낯 뜨거운
잘못에 근접해 가고 있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지만 미안해 죽을 것 같았다. 끝까지 그대 잘 가라고 손을 흔들고 나서야 벌건 얼굴로 내릴 수 있었다.
나는 김광석을 좋아한다. 그의 대체 불가한 음악성도 좋아하지만 그의 노래는 내가 사랑했던 님의 죽음과 함께 했던 순간에도 늘 한결같았기에 나는 그를 좋아한다.
천만의 아픔을 대신한 김광석만이 우리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나를 찾는 핸드폰 벨소리도 줄어들었다. 아마도 마케팅 부서의 직원이라면 벨소리는 소리 없이 사용했을 것이다. 이제 나를 찾는 벨소리 보다 핸드폰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은 나이가 된 것도 소리 내 그를 소환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상 2층에서 지하 2층까지 나는 김광석과 함께 내려갔다. 물론 미안함도 함께였지만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우울한 그대도, 고통스러운 그대도, 엘리베이터의 그대도 김광석과 함께 행복하기를 소원한다.
그곳이 고통받는 이들이 위로받기 어려운 병원의 엘리베이터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날 정신없는 늙은 사람의 주책을 부디 용서하고 김광석을 미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광석은 잘못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