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원죄 의식과 90도 기울어진 유토피아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길 바람.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관람했고 그때 찌끄려놓은 감상문이 있어서 그걸 참고하여 작성함.
충분히 기대하고 보았음에도 그해 보았던 한국 영화 중 가장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인의 지적 재산임을 명시합니다
© 휴먼1 연구소장
시놉시스
“아파트는 주민의 것”
온 세상을 집어삼킨 대지진, 그리고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서울.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오직 황궁 아파트만은 그대로다.
소문을 들은 외부 생존자들이 황궁 아파트로 몰려들자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는 입주민들.
생존을 위해 하나가 된 그들은 새로운 주민 대표 ‘영탁’을 중심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아선 채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새로운 규칙을 만든다.
덕분에 지옥 같은 바깥세상과 달리 주민들에겐 더없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유토피아 황궁 아파트.
하지만 끝이 없는 생존의 위기 속 그들 사이에서도 예상치 못한 갈등이 시작되는데...!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 규칙 따르거나 떠나거나.
오프닝 속 낯설게 하기
오프닝 시퀀스에서 아파트 공화국이 되기 이전 한국 현대사의 아파트 준공 아카이브 영상들을 교차적으로 편집해 보여주는데, 백남준 미디어 아트를 처음 관람했을 때와 같은 위화감을 느꼈다. 풍화된 듯한 영상과 배경음악 때문도 있겠지만 마치, 이것이 미래! 하면서 팡파르를 터트리지만 관람자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괴이함마저 느끼게 되는. 그 이질적인 괴이함을 지나 현재 우리는 피부처럼 익숙해진 콘크리트 덩어리를 유토피아라 믿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여성과 남성, 가족의 형태로 발현되는 원죄 의식
이병헌이 맡은 배역 이름이 모세범인 것을 보면 성경적 상징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세의 기적을 일으킨 모세의 지도자적 면모를 닮아 있음은 둘째 치고, 영화를 보면서 남성이 가진 원죄 의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이야기가 아닌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속 카인 인류 첫 살인의 순간을 예시로 드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모세범은 모세의 가면을 쓴 카인(영탁)이다.
사회의 시스템(가부장제, 재난) 속에서 남성은 피로써 만들어진 원죄를 지고 살아야 하며 그렇게 만들어진 규율과 통제 속에서 평화를 찾고 그 평화가 깨지면 또다시 피와 폭력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 원죄를 거부하고 살아가려는 남성은 시스템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도균).
남성으로 대표되는 캐릭터가 영탁이라면 여성으로 대표되는 캐릭터는 명화이다. 명화의 캐릭터에서 보이는 여성성은 인간적이기보다 오염을 거부한 이상적 상징에 가깝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휴먼의 눈으로 명화를 보고 있자면 답답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을 납득시키고 싶어진다. 그녀는 간호사 출신으로 다친 이웃을 치료하고 살리는 일을 한다. 그렇다면 이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여성이 가진 원죄는 무엇일까? 예상했다시피 아이를 낳는 것이다.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비극의 굴레를 상속받을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 여성의 원죄이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거나 그와 관계없다 해도 원죄를 짊어지게 될 아이를 낳아야 하는 어머니의 죄인 것이다. 인물들의 원죄는 서로 관계하고 있다. 남성은 피로부터 가족을 지켜야 하고 여성은 그 속에서 남편과 자식이 희생되는 것을 목격해야 한다.
명화는 결혼한 여성들 중 유일하게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이다(그렇게 보여진다). 남편인 민성의 대사가 이를 시사한다.
둘 다 '잘못'한 건 없는데
잘못한 거 같고……
영화 속 원죄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어린아이와 명화, 그리고 903호 소녀다. 영화 후반부 영탁은 무결한 903호 소녀를 절벽에서 밀어버린 뒤 구역질을 한다. 일말의 인간성마저 상실해 버린 자신에게 구역감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90도 기울어진 유토피아
민성은 성당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말한 막연히 감각하던 잘못, 그에 대한 미안함, 명화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고 죽음으로써 원죄에서 해방된다. 피와 폭력이 가득한 세상에 남편이라는 단 하나의 가족마저 잃은 명화는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 걸까? 그녀는 우연히 길 위에서 무정부주의로 보이는 무리에 합류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규율과 통제가 없으며 명화의 과거를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깨끗하고 안락한 집을 찾아 들어가게 된다. 그들이 집안에 발을 들이는 순간 앵글이 회전하며 그 집이 사실 90도 기울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층고도 높고 깨끗한, 다만 90도 기울어졌을 뿐인. 그것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유토피아가 아니었을까. 가족의 형태라는 것은 아직까진 원죄를 벗어날 수 없는 모양새다. 미래의 가족의 형태란 현재 우리가 보기에 나이브하거나 공상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나 익숙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에게 아파트가 그러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