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될 것인가, 광인이 될 것인가.
본 보고서는 영화 <부고니아>를 관람 후, 주인공 테디의 광기와 집착에서 얻은 영감 + 휴먼1 연구소장에게
내재되어 있던 통찰과 음모론적 망상의 관점에서 작성하게 되었음.
편향된 시선과 허무주의적, 비관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본 보고서 열람에 주의를 바람. 또한 이 보고서의 내용이 휴먼1 연구소장의 사고방식 전부가 아닌, 휴먼 분석을 위한 실험적 단면임을 인지하길 바람.
본 리뷰는 인상비평과 창조적 비평, 실험적 에세이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개인의 지적 재산임을 명시합니다.
© 휴먼1 연구소장
영화 부고니아 시놉시스
기필코 지구를 지켜라! 벌들은 사라지고, 지구는 병들고 있고, 인류는 고통받고 있다. 거대 바이오 기업의 물류센터 직원인 ‘테디’는 이 모든 것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외계인의 지구침공 계획 때문이고, 사장 ‘미셸’이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굳게 믿는다. 오랜 준비 끝, 함께 사는 사촌 동생 ‘돈’과 함께 결국 ‘미셸’을 납치하는데 성공한 ‘테디’. 그는 지하실에 ‘미셸’을 감금한 채 지구를 찾아온 이유와 앞으로의 음모를 캐묻지만 자신은 외계인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는 ‘미셸’ 과연 ‘테디’는 ‘미셸’에게서 원하는 답을 얻고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여러분. 제가 느낀 건데요. 술을 마시면 머리가 나빠져요. 진짜로. 바보가 됩니다. 온갖 약물과 신경안정제, 폭력적인 영상, 뇌를 자극하는 것들은 인간을 바보로 만듭니다. 커피, 담배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에 대한 대안이 있을까요? 뉴월드오더. 세상을 지배하는 극소수의 인간들은 위에서 나열한 것들로 인간을 바보로 만들고 지배합니다. 왜냐?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신세계 질서입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인구를 감축하고 하나의 정부로 인간을 지배하려는 것입니다. 왜냐? 지구 자원은 한정적이고 이대로 가다간 환경오염 때문에 지구에서 살 수가 없으니까요. 또 그뿐만 아니고 인간은 본디 악한 성정을 지니고 태어나 자기밖에 모르며 유전적으로 이기적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을 짓밟아야만 합니다.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실현되지 못하는 공상에 불과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의 궁극적 목표 공산주의도 공상에 불과한 것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텐데 신봉자들이 우습지요. 순진할 만큼 멍청하거나 시커먼 속내를 숨긴 위선자들뿐입니다. 자본주의는 어떻습니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보다 솔직하지만 비정하고 물질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인간성 상실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흔히들 영혼을 판다고 하지요? 돈을 위해서는 영혼도 팝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무엇이 숭고한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집니다. 사실 자본가와 권력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따듯한 집에서 굶지 않고 가족들과 하루를 보낼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에게 공평한 건 시간뿐입니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추상 개념은 조작하거나 개인이 독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신과 같은 가치입니다. 존재하지만 개입하지 않고 믿을 수 있지만 잊어버리기 십상이지요. 자본가와 권력가들은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늙음입니다. 물론 보통의 사람들도 그것들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지본가와 권력가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시간을 착취합니다. 본질적으로는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교묘하게 뺏어가는 거지요. 이념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동체를 위해 할당량을 채워야만 한다고 말하지요. 인간은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눈 뜨는 것을 힘들어하는 이유이며, 잠들기 전에 온갖 고통이 밀려오는 이유입니다. 유토피아와 천국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아주 깊은 내면의 무의식이 일깨워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인간의 삶은 살아갈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모른 척하며 견디는 것입니다. 살아갈 이유라고 했지만 사실은 모두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가 수치와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선악과를 먹은 순간 우리를 최면 상태로 만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진짜로 그것을 먹었다는 말이 아니라, 먹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Words)에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주장은 인간이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면서도 신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최면 같은 것입니다. 자본가와 권력가는 이와 반대입니다. 몇몇의 이념가들도 유효합니다. 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신과 같아지고 싶은 시도입니다. 그들도 두렵습니다. 아침과 밤이. 자기 자신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이. 그것이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누군가를 착취하고 죽입니다. 연약한 센티멘털.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음 속에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순간부터 죽어 있는 것입니다. 죽음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만 하는 질서란 없습니다. 오로지 혼돈과 파괴입니다. 인간은 혼돈과 파괴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것이 아담과 하와가 먹은 선악과의 진실입니다. 그들은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동안 카인이 아벨을 죽이고 방주가 생명을 실어 나르고 지혜로운 솔로몬 왕이 타락하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며 왕을 끌어내리고 공장이 지어지고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꾸는 죽음의 꿈, 낙원을 배반한 죄의식의 꿈속.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물론 그것은 나의 말(Words)입니다. 과연 신이 있는 걸까 싶은 우스운 질서와 규칙 속 차별. 왜 하와와 아담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인가 의문스러운. 이것은 삶을 살아내기 위한 내 망상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