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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용 Jun 29. 2020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

오늘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지 25주년 되는 날이다. 이제는 뉴스에도 나오지 않고 많이 잊혔지만, 나는 여전히 매년 6월 29일이면 그때가 떠올라 마음이 착잡해진다. 있어야 할 건축물이 사라져 버렸고, 자욱했던 먼지 속 아수라장이 된 현장의 모습은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다. 두 동 중 무너지지 않고 남은 한쪽 건물 지하에서 무너져버린 곳을 향해 콘크리트를 깨뜨리며 구조 활동을 벌였는데, 작업 중 장비에 연료가 떨어져 중단되기도 했었다. 곁에서 보조하던 나는 소나기 빗줄기를 뚫고 인근 주유소로 기름을 얻으러 울면서 뛰어다녔다. 얼굴에 뿌리는 세찬 빗줄기 덕분에 눈물은 흐려졌지만, 그 빗줄기가 슬픔까지 쓸어내지는 못했었다. 처음 한 곳에서 거절당했고 두 번째 주유소에서 얼마간의 기름을 주신 덕분에 콘크리트 파쇄 작업은 다시 진행되었었다. 구조되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환호했고,  반대로 이미 시신이 되어 버린 분을 목격할 때면 안타까움과 슬픔이 복받쳤다. 이런 기억들은 내가 죽는 날까지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삼풍백화점 사건은 내 인생에 커다란 교훈을 주었고 '건축은 사랑이다'라는 나의 건축 철학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 그날을 다시 기억하며 이전에 썼던 글을 옮겨 본다.




“속보입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  

1995년 6월 29일 서울의 강남에서 건축역사상 가장 처참한 사건이 터졌다. 바로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것이다. 그날 평화롭게 평소 때와 다름없이 일하던 중 오후 5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라디오에서 들려온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은 잠시 뉴스를 듣던 모든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이내 필자와 동료들은 백화점의 벽 일부가 조금 부서졌다거나 건물 일부에 손상이 갔다고 해야지 저렇게 방송을 하면 마치 건물 전체가 무너진 줄 알 것 아니냐며 각자 한 마디씩 했었다. 


하지만 뭔가 심상치 않다 생각이 들어 서둘러 일을 마치고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삼풍백화점으로 자전거를 타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도착 직후 눈앞에 펼쳐지는 처음 경험하는 그 광경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건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건물 대신 하늘을 날아다니는 시커먼 석면 덩어리들과 시멘트 가루며 온갖 흩어진 옷가지와 물건들. 크고 화려했던 백화점 건물은 온데간데없고 그 잔해만이 마치 폭격을 받은 것처럼 무너지고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피를 흘리며 구조대의 도움을 받으며 들것에 실려 나오는 사람들과 허둥지둥 뛰어다니며 피할 곳을 찾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그곳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정신을 차리고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강남성모병원(지금은 서울성모병원)에 헌혈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타고 왔던 자전거로 정신없이 달려가서 응급실로 뛰어들어가 헌혈을 자청했지만, 당시 상황을 몰랐던 병원에서는 보존하는 피가 많으니 헌혈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지금 저 언덕 너머에서 큰일이 났으니 피가 많이 필요할 것이라 헌혈을 해야 한다고 수 분 동안 옥신각신했다. 그런데 그사이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이 헌혈을 하기 위해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그제야 병원 측에서도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부랴부랴 헌혈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헌혈하는 동안 말로 표현 못 할 무언가로 인해 마음이 뭉클해졌는데,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여 피조차 나누고자 하는 우리나라 국민의 뜨거운 사랑에 감동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중간의 '삼풍백화점'이라는 글자는 당시 헌혈증이 여러개 있었던 필자가 기억하기 위해 쓴 것이다.


그다음 날부터 야간 봉사활동을 자원했고 3일간 그곳에서 인명구조 활동을 했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아침까지 그곳에서 봉사했는데, 백화점이 무너진 다음 날 밤 인명구조를 위해 지하층의 벽을 깨는 데 사용되는 ‘해머 드릴’의 연료가 바닥나 기름을 구하기 위해 퍼붓듯이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주변 주유소를 뛰어다니며, 건물 잔해 속에 깔렸던 생명을 살려달라고 하늘을 향해 외쳤던 가슴 울림이 지금도 느껴지는 듯하다. 지상 5층 건물이 지하 2층 깊이까지 내려앉아 버렸으니 사람이 살아 있을 리 만무했지만, 그래도 그 잔해 속에서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죽음과 싸우며 며칠씩 버티고 있다가 구조되는 사람들을 보는 감격은 아마도 현장에 있지 않았던 분들은 잘 모를 것이다. 


지하 2층에서 지하 4층을 오가며 무너진 잔해 사이에 조그만 틈이라도 있으면 “사람 있어요? 살아 있으면 소리 좀 내주세요.”라고 목이 터지라 외치며 기어 다녔다. 그때 그 무너진 건물 속에서 ‘건축은 사랑이다.’라고 생각했다. 사랑으로 건축하였다면 건물이 왜 무너지겠는가? 내 부모 내 형제가 살 집을 짓듯이 건축을 사랑으로 했더라면 말이다.


구조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건물은 우르릉 쾅쾅 굉음을 여러 번 냈었고 작업을 하던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었다. 자기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에 열중하던 사람들조차도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소리가 날 때마다 긴장감을 놓지 않고 있다가 ‘무너지면 나도 죽는다.’라는 생각에 자동차용 경사로 쪽으로 죽을힘을 다해 뛰었는데, 위험에 처했을 때 자기 생명을 보존하고자 하는 것은 정말 ‘본능’ 임을 느꼈다. 한 번은 굉음에 놀라 경사로를 향해 힘껏 도망치는데 함께 그 자리를 급히 피하던 구급차가 경사로를 올라가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이미 많이 온 비 때문에 진흙이 범벅된 경사로는 아주 미끄러워 구급차는 계속 헛바퀴를 돌다가 결국 바퀴가 터졌으며, 그 차를 지나쳐 달려 나오면서 스쳐본 그 당황해하던 운전자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기 혼자 도망가기를 멈추고 구급차를 밀어서 바깥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던 몇몇 사람들도 있었다. 다행히도 다시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몇 초 후 밖에서 그들을 다시 보았을 땐 정말 부끄러웠다. 죽을 각오로 그곳에 들어가서 자원봉사를 한 것인데, 위험에 처했을 때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다니 말이다.


마음을 추스른 후 나왔던 길로 또다시 들어가 그렇게 보낸 3일간의 밤과 아침은 나의 평생에 깊은 의미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때 현장에서 보았던 일그러진 안경테와 지하 2층 깊이에 있던 옥상의 방수제 조각은 건축사인 필자에게 지금도 교훈하고 있다. ‘건축은 사랑’이라고 말이다.

     

앞줄 왼쪽 원 안이 필자. 삼풍백화점 구조 봉사요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고 후 기독신문과 한 인터뷰 기사







내가 운영하고 있는 '아키조TV'에서 그때에 대한 이야기를 한 영상이다. 

일반 대중이 건축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길 바라며 운영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7aQCub48i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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