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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용 Jan 25. 2021

길고양이 목의 방울을 벗겨줬다

슬픈 고양이를 만났다. 며칠이 지나는 동안 그 녀석 생각이 떠나지 않아 아내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 길고양이는 놀랍게도 방울을 달고 있었다. 공방에서 작업하는 중 희미하지만 지속적으로 딸랑딸랑 소리가 나서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나가 봤다. 공방 문 열리는 인기척에 놀란 냥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사료 앞에서 머뭇거리다 돌아섰다. 길고양이들 먹으라고 문 근처 화분 뒤쪽에 사료와 물을 놓아두었는데, 그걸 못 먹고 간 것이다. 다시 얼른 들어가 닭고기 통조림 하나를 가지고 나왔지만, 이미 딸랑딸랑 소리는 희미하게 점점 멀어졌고, 소리를 쫓아갔지만 더 이상 그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누군가 키우다 버렸던지 아니면 실수로 집을 나온 후 길을 잃었든지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 녀석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참으로 암담한 느낌이 들었다. 목에 달린 방울 때문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리가 난다. 고정적으로 사료를 먹을 데가 없을 테니 사냥이라도 해야 하는데, 방울소리 때문에 못 한다. 다른 고양이들과 친하게 무리 지어 살 수도 없다. 어떻게 먹고살란 말인가.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나 같으면 살아갈 의지도 힘도 없었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런 상황 속에서 지금껏 살아온 것 자체가 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녀석을 만난 날은 눈이 많이 왔고 몹시 추웠다. 그런 날 그 아이는 어디에서 무얼 먹으며 어떻게 버틸까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나 없을 때라도 다시 와서 바깥에 떠 놓은 사료를 먹고 가면 좋겠다 싶어 그동안 사용했던 그릇 대신 사료를 두 배로 넣을 수 있는 그릇을 놓았다. 원래 하루에도 몇 번씩 비어 있으면 다시 채워주곤 했는데, 혹시 그릇이 비었을 때 오면 또 못 먹을까 봐 그릇을 아예 큰 것으로 바꾼 것이다. 꼭 내 손으로 그 녀석의 방울을 떼 주고 싶은데 다시 만날 수 있을 런지... 생각할수록 짠하고 불쌍했다.     


그런 마음이 통했는지 며칠이 지난 토요일 어둑한 저녁때, 작업하는 중 미세하게 방울소리가 다시 들렸다. 부리나케 나와 봤더니 그 녀석이 와서 사료를 먹고 있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닭고기 통조림을 가지고 와서 쨍쨍 치며 오라고 유혹했더니 쪼르르 달려오는 게 아닌가. 다행히도 잘 먹었다. 배가 몹시 고팠을 것이다. 가까이 앉아서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목을 조르고 있는 목줄 흔적이 역력했다. 방울도 흔들리며 슬픈 소리를 냈다. 참 순한 녀석이었다. 친해질 수 있겠다 싶었다. 허겁지겁 순식간에 먹어 치우길래 통조림을 하나 더 까서 한 숟가락 씩 공방을 향해 점점 안쪽으로 놓았다.


녀석은 닭고기가 먹고는 싶은데 낯선 공간의 경계선에서 조심조심 마음을 졸이는 듯했지만 결국 닭고기를 쫓아 안으로 들어온 순간 문을 세게 당겨 닫았다. 사실 문이 무거워 처음 시도엔 실패했다. 다행히도 두 번째 시도에 성공했는데, 문 안쪽으로 밀어 넣을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긴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손을 사용했다면 그 녀석의 입장에선 내 손이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방울을 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손을 대지 않고 문을 닫을 수 있을 때를 기다렸던 것이었다. 그렇게 포획을 성공했다. 직접 잡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공방 안으로 들여놨으니 며칠 함께 지내다 보면 방울을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갇힌 녀석은 냐옹 거리며 불안한 심정으로 공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살피기 시작했지만, 나는 크게 웃었고 마음이 날아갈 정도로 기뻤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지만 일부러 출근해서 숨어있는 녀석을 찾아봤다. 어디 숨었는지 찾기 쉽지 않았지만 오래지 않아 결국 찾았고 안심을 시켜가며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높은 곳에 있었기에 뭔가를 밟고 올라간 내 다리가 약간 불안했다. 게다가 목줄은 한 손으로 풀 수 없는 구조라 카메라 찍기를 포기하고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터치하며 풀기를 시도했다. 내 손길이 닿자 불안해하면서도 해치지 않을 사람이라 생각했는지 가만히 있었다. 착한 녀석 같으니라고. 참 다행이었다. 목줄 상태나 묶였던 깊은 흔적으로 보아 목이 꽤 졸릴 정도로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푸는 과정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진 못 했지만 방울 소리 없이 한 발씩 내딛는 녀석의 눈빛에서 기쁨인지 환희인지, 슬픔인지 회한인지 모를 미묘한 감정이 흐르는 듯했다. 조용한 자신의 발걸음을 얼마 만에 느꼈을까? 나도 기쁜데, 녀석은 얼마나 더 기쁠까. 방울아, 이젠 더 활발하게 잘 지내길 바란다. 내 곁에 있어도 좋고.   



  


이틀 동안 잘 돌봐줬다. 귓 속도 깨끗했고 밥도 잘 먹었다. 여기저기 쉴 만한 곳을 잘 찾아 쉬길래 적응하길 바랬으나 방금 전에 방울이가 떠났다. 목줄과 방울만 남긴 채. 얼마 전 목재를 들이면서 지게차가 공방 문을 미는 실수를 했다. 그 때문에 문이 안쪽으로 약간 휘었는데 완전히 닫아도 틈새가 생기게 됐다. 마침 바람이 세게 불어 문이 안으로 밀리며 그 틈이 좀 더 벌어졌는데 방울이가 그 틈을 힘으로 당겨 더 벌리고 빠져나간 것이다. 닭고기보다 자유를 더 원했겠지. 며칠 더 보호하며 잘 먹이고 싶었는데 아쉽다. 그래도 목줄과 방울을 벗겨준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지 모른다.







녀석이 유유히 사라진 어두운 곳을 향해 얘기했다.

"방울아, 추위 잘 견디고 언제든 와서 밥을 먹길 바란다.

혹시 다시 만나면 내가 진심으로 반겨 주고 닭고기 통조림 또 주마.

건강하게 잘 살아라!"라고.





앞으로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들으면 방울이가 생각나겠지.

남겨진 방울은 또 하나의 짧은 추억이 되어 얘깃거리를 만들어 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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