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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용 Jul 24. 2020

'엄마가 된 애기'의 다음 이야기

어제 갑자기 일어난 일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미미의 두 번째 배 막내인 '애기'가 출산을 했던 것은 지난 글 '엄마가 된 애기'에서 상세히 기술했다.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의 글을 먼저 보시면 연결하기가 쉽다.

https://brunch.co.kr/@archicwy/102





 '애기'는 내가 모르는 인근 어딘가에서 출산을 했고 거기서 몇 마리인지 모를 새끼들을 키웠다. 젖이 모두 빨린 흔적으로 보아 여러 마리일 것으로 추정할 뿐이었다. 그런 '애기'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거의 5~6번씩 나의 공방, 즉 자신의 어릴 적 고향으로 와서 밥을 먹는다. 매일 일상이다. 먹은 후에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한참을 자신이 정한 자리에서 쉬었다 간다. 물론 내 손을 안 탄다. '애기'가 공방으로 들어올 때는 늘 당당하다. 다른 길고양이들처럼 몰래 와서 먹고 가는 게 아니라 들어오면서 "냐~~~~~오~~~ㅇ~~~ 으" 하며 들어온다. 번역하면 "뭐 하냐? 나 왔다!!!!" 일 것이다. 난 그럼 "애기 왔어? 많이 먹고 가거라." 라고 말해준다. 그럼 또 당당히 밥그릇으로 직진해 당당히 먹는다. 그런 '애기'를 보면 그저 귀여울 뿐이다. 그러기를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한다. 가끔씩은 통조림을 따주는데, 어려서부터 먹어봐서인지 정말 미칠듯 좋아한다.


어제도 '애기'는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그런데 오후에 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도 들렸던 것이다. 가끔 창고에서 머물고 있는 '나나'의 새끼들이 공방 안으로 들어온다. '애기'와는 이모뻘 사촌간이다. 그래서 '사촌끼리 친하네?'라고 생각하며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끼 고양이 소리가 계속 나길래 혹시 하는 맘으로 눈을 들어보니 새끼를 입에 물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런! 새끼 고양이들은 나나의 아이들이 아니라 '애기' 자신의 아이들이었다.



난로에 사용할 땔감을 쌓아 둔 사이사이에 숨어 들어가 있어서 몇 마리인지 다 알 수 없었지만, 기다리며 살펴보니 총 6마리였다. 조그만 몸으로 많이도 낳았다. 그러니 자기 몸 돌 볼 겨를이 없었겠지. 원래 '애기'는 처녀 때부터 새침데기 깔끔녀였다. 그러던 '애기'가 자기 몸을 거의 돌보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새끼를 많이 낳았겠구나 추측하고 있었는데, 그 결과를 직접 목격한 것이었다. 그런데 '애기'는 뭔가 불안한 듯 밖을 쳐다보며 서성거렸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불현듯 혹시 새끼를 잃어버렸나 싶어 평소 '애기'가 다니는 곳으로 나가 주변을 살펴봤다.


아니나 다를까 치즈 태비 새끼 한 마리가 목재를 쌓아둔 곳에 안쓰럽고 처량하게 앉아 있었다. "아이고야! 큰 일 날 뻔했구나." 하면서 그 아이를 낚아챘다. 그럼 총 7마리인가? 다른 여섯 마리는 몸이 작아도 동작이 빨라서 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 아이는 동작도 느리고 발육도 좋지 않았다. 눈에 눈곱도 많이 낀 걸로 봐서 어미에게 돌봄을 많이 받지 못한 듯싶었다. 어찌 됐든 '애기'에게 아이를 데려다준 후 또 나가 봤다. 혹시라도 더 있을지 몰라서... 하지만 더는 없었다.




어제 늦게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은 정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나 싶을 정도로 비가 많이 왔고, 아직도 오고 있다. 생각해 보면 '애기'가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인지 날짜를 기가 막히게 잘 잡았다. 하루 아니, 한 나절이라도 늦었다면 원래 기거하고 있는 곳에서 나오지 못할 뻔했을 것이다. 그곳의 환경이 어쩌면 새끼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비가 정말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거야 말로 '동물적 감각'인 것인가? '애기'의 대가족은 어젯밤을 실내에서 안전하게 보냈다. 아니 안전한 정도가 아니라 저 아이들은 생전 처음으로 모든 위험을 배제한 채 저렇게 배불리 먹었고 쉬었을 것이다.

저 새끼들 중에 치즈태비는 없다. 가까이 가면 새끼들이 도망가기에 멀리서 줌으로  찍어 화질이 구리다.


마지막에 내가 데려온 치즈 태비 새끼는 다른 아이들보다 확실이 늦다. 그래서이겠지만 내 손에 잡힌다. 아니 겁이 없는 것 같다. 어제는 장작더미 속에서 누군가 괴성을 질러대길래 그 아이인 줄 금방 알았다. 울음소리가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르기 때문이다. 막 퇴근하려던 참이었는데, 비명 소리가 계속 나길래 가봤다. 보니 아마 장작더미 틈 사이로 들어갔다 못 나오고 그 속에 끼인 것 같았다. 나도 놀라 위에서부터 긴 장작들을 하나씩 옆으로 옮기며 저  밑에 깊숙이 낀 아이를 겨우 꺼낼 수 있었다. 스스로도 놀라고 당황했던지 똥을 쌌고 몸에 꽤 묻어 있었다. 당연히 내 장갑에 잔뜩 발려 있었고, 어미인 '애기'에게 인계한 후 장갑은 쓰레기통으로...





숫자가 바뀌는 순간이라 정확하게 찍히지는 않았지만 420g정도다. 2개월령 치곤 몸무게가 너무 적다. '애기'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일거고, 새끼들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일거다.  







아침에 출근해 문을 열어 보니 '애기'가 있고 아이들이 활발하게 뛰놀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 다른 점은 '미미'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미미'가 누구냐고? 바로 '애기'의 친엄마다. 미미는 오드아이라 고양이 세계에서 늘 왕따를 당했다. 심지어 자기 새끼들에게도 그랬다. 항상 혼자였고, 어디 나가서 심하게 다쳐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 미미가 불쌍해서 내보내지 않고 공방 내에서 돌봐주었다. 아침에 문을 열면 미미가 뛰어나와 마당에서 몸을 굴리며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고 하늘을 쳐다본 후 나와 눈인사를 나누곤 했는데, 그런 미미가 뛰어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미미의 잠자리는 늘 2층이었기에 2층으로 올라가 봤다. 침울한 표정으로 구석에 처박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미미에게는 충격일 수 있겠지. 자신의 영역에 느닷없이 고양이 새끼 군단이 나타났으니... 그런데 따지고 보면 미미의 외손주들이다. 미미의 엄마였던 '나비' 때부터 생각해 보면 '미미'를 거쳐 '애기' 그리고 그 새끼들까지 길고양이 한가족 4대째다.

3대가 한 컷에 들어왔다. 그런데 손자가 외할머니에게 하악질을 해대고 뒤돌아선다. 그 연약한 치즈태비의 다른 면모를 봤다. 미미는 이게 뭔 일인가 하는 표정이다.


 


미미는 정말이지 쇼크를 받은 것 같았다. 비 오는 날 겨우 비 맞지 않는 컨테이너 계단에 앉아 하염없이 상념에 젖어 있었다. 길고양이들의 생태계를 잘 모르지만, 무언가 그들만의 암묵적인 룰 같은 게 있는 것 같았다. 어미가 지극정성으로 새끼들을 돌보다가 어느 정도 자라게 되면 그 자리를 새끼들에게 물려주고 어미는 떠나는 것이다. 나비가 그랬고, 미미의 자매인 나나가 그랬다. 지금 창고에는 나나와 새끼들이 있지만, 그들이 오기까지는 다 성장한 미미의 첫배 새끼와 나나의 첫배 새끼들이 지내고 있었는데, 나나가 두번째 배의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들어오니 자리를 양보하고 다 떠나버렸다. 그게 길고양이들의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는 생태계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떠난 아이들이 가끔씩 나타나서 밥을 먹곤 한다. 그러면 여전히 나 혼자 반갑다.



그 관점으로 생각해 보면 미미에겐 '애기'가 새끼들을 데리고 들어온 것이 진짜 충격일 수 있겠다. 미미는 어쩌면 비 오는 하늘을 쳐다보며 '난 어디로 가야 하나?'를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미가 자신의 혈육들과 더 친해지고 떠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다시 '애기' 얘기로 돌아와 보면, 새끼가 너무 많아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중에서도 약한 아이에겐 정을 더 떼는 것 같다. 어제 치즈 태비 몸에 똥이 묻은 채 그대로 인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 내 손에 잡히는 유일한 녀석이니 내 손에 똥 묻은 몸을 만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똥을 내가 물수건으로 닦아 줬다. '애기'는 옆에서 보고 있고. 아이고야! 이 무슨 오지랖인가!






비가 너무 많이 와 공방 문 틈으로 넘치는 빗물이 새 들어온다. 습기를 말릴 겸 밤새 난로도 약하게 때고 있다. 새끼들이 따뜻한 게 좋은지 난로 옆 평평한 장작 위에서, 그리고 미미의 캣타워에서 잠들어 있는 것을 보니 좀 편히 쉴 수 있도록 아키조 커넥터를 이용해 평상을 만들어 줬다. 나도 오늘은 겸사겸사 퇴근하지 않고 주변 정리도 할 겸 공방에서 묵을 생각이다.






'애기'와 새끼들은 나에게 온 귀한 손님일까, 식구일까?

코로나로 인해 여러 상황이 좋지 않고 나도 영향을 많이 받고 있지만, 이 생명들이 내 품에 들어온 게 하늘의 뜻이라면 받아들여야겠지. 빗소리도 좀 잦아들고 삐약삐약 시끄럽던 소리들이 잠잠해진 걸 보니 다 잠들었나 보다. 이 밤 이심전심으로 맘이 복잡한 건 나와 미미뿐이다.

평소 미미의 자리가 아닌데, 저기 올라가 있는 것은 나를 지켜 보고 싶기 때문인것 같다. 선반의 앞에서 올라간 것이 아니고 2층에서 틈을 이용해 내려온 것이다.






아무튼 이 꼬마들이 모두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 '애기'도 태어나고 자란 고향 같은 이곳에서 건강히 몸 추스리면 좋겠다. 젖 뗄 무렵 중성화를 잘 시킬 수 있으면 좋겠고, 미미도 자손들과 화목하게 오래 살면 좋겠다.

지금은 그 외에 뭘 더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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