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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용 Jul 12. 2016

석수장이 눈 깜작이부터 배운다

속담으로 한옥 배우기


1. 돌을 쪼는 석수장이가 돌가루가 눈에 들어갈까 봐 눈을 깜작거리는 것부터 배운다는 뜻으로, 일의 내용보다도 형식부터 본뜨려 드는 것을 비꼬는 말  

2. 처음에는 쉽고 낮은 기술부터 배우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건축에서 매우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안정성이고, 이를 위한 대표적인 소재가 바로 돌이다. 돌은 가공하기가 어렵긴 해도 한번 만들어 놓으면 어지간해서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건축 자재로 이용되고 있으며, 돌을 가공하는 사람을 ‘석수’ 또는 ‘석수장이’라고 부른다. 


현대건축에서 돌을 사용하는 곳은 수직으로 쌓은 벽이나 기둥은 물론이고 난이도가 높은 지붕에도 가능하지만, 한옥에서는 돌을 사용하는 부위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주로 건물 하부의 기단이나 계단, 기초 등 비교적 제한적으로 사용할 뿐이었다. 또는 담장이나 벽체 하부에 네모나게 다듬어 만든 사괴석으로 쓰기는 했으나 건물 위쪽에 돌이 사용된 예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드물게는 지붕의 모서리에 길게 내민 추녀가 너무 길게 나온 경우 뒤집히지 않도록 무겁고 큰 돌을 지붕 속 추녀 안쪽 윗부분에 올려놓기도 했다고 한다. 건물 위쪽에 돌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들어 올리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벽체의 재료가 나무나 흙이라 그 위에 큰 돌을 올리는 것은 구조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돌은 거의 화강석이었는데, 나무나 흙에 비해 가공이 매우 어려웠던 것도 그 이유였다. 


드라마 토지 촬영지로 유명한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대부분 한옥에서 돌이 사용된 곳은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건축물의 하부에 쓰인 정도이다.


채석장에서 돌을 채취할 때는 강철 쐐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바위에 20~30cm의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고 그 구멍 안에 긴 목재를 두들겨 박았다. 그런 후 물을 부어두면 목재의 부피가 커지게 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연달아 뚫린 구멍을 따라 커다란 바위가 덩어리째 떨어져 나간다. 돌은 누르는 힘, 즉 압축력에는 대단히 강하지만 늘어나는 힘인 인장력에는 매우 약하다. 따라서 연달아 뚫린 구멍 속의 나무가 물을 먹고 부피가 늘어나 인장력이 생기면 제아무리 강한 돌일지라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뚝 떨어지게 된다. 적당한 크기의 돌을 떼어낸 후 다듬을 때는 ‘정’을 사용한다. 망치로 정을 내려칠 때마다 소리가 크게 나서 저절로 눈이 깜박이게 되는데, 이는 경험이 많은 석수장이나 이제 갓 입문한 초짜 기술자나 같을 것이다. 그런데, 경험이 많은 이는 오랜 시간 동안 작업을 하다 보니 망치소리에도 눈을 깜박이는 게 덜 할 수도 있지만, 초보자는 당연히 쨍쨍 소리가 날 때마다 눈을 깜박이게 되니 ‘석수장이 눈 깜작이부터 배운다’라는 속담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채석장에서 채취한 바위는 구멍뚫린 흔적이 있다. 인장력에 약한 바위의 특성을 이용해 채취한 흔적이다


왜 눈을 깜박일까?

눈을 깜박이는 것은 자율신경의 작용이다. 의지나 생각에 좌우되지 않고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는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재채기를 할 때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을 질끈 감게 되는데, 내부의 공기압력이 높아지면서 자칫 눈알이 튀어나갈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눈, 코, 입, 귀는 속에서 다 연결되어 있어서 강한 압력이 생기면 어느 곳에서도 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감기에 걸렸을 때 코가 막혀서 세게 풀면 내부 압력이 높아져 귀가 먹먹해진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안약을 넣었는데, 쓰디쓴 맛이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것은 눈에 넣은 약이 혀의 깊은 부분까지 흘러왔기 때문이다. 하품을 하면 눈이 감기거나 작아지고 눈물샘이 눌려서 눈물이 새 나온다. 이처럼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신경이 자율신경이고 이는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즉 반사운동도 결국 자율신경 활동의 일종이며, 뇌가 인지한 후 그 지시를 따르기에는 시간이 몹시 촉박하여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경우 몸이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는 것이다. 이는 마치 권투선수가 날아오는 상대방의 주먹을 순식간에 피하는 것이나, 뜨거운 것을 만졌을 때 재빨리 손을 떼는 것과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망치와 정을 이용해 돌을 다듬을 때도 상당한 소음이 발생한다. 이때 그 소음은 압력이 되어 고막에 자극을 주게 되고 그 자극은 귀속의 신경계에 전달되면서 함께 연결된 부위에도 위험요인이 발생했음을 알게 한다. 그래서 그 압력 때문에 눈이 튀어나가지 않도록 저절로 깜박이게 되는 것이다. 경험이 많은 기술자일수록 그 정도 소음과 압력 때문에 몸의 각 기관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의지적으로 눈을 덜 깜박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돌을 다루는 일은 소음뿐 아니라 분진에 의한 피해도 생길 수 있어 장기간 석수 일을 해온 기술자의 경우 호흡기 계통의 질환이 발생하기 쉽다고 하니 건강을 위해 작업 환경에도 신경 써야 할 필요가 있다.


석수장이 www.flickr.com@Steven Lilley
석수장이가 다루는 주요 자재인 돌, 즉 암석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변성암, 화성암, 그리고 퇴적암이 그것이다. 

각각의 특성과 조성 원리는 그 이름이 말해주는 것처럼 상당히 다르다. 특징과 쓰임새를 간략히 살펴보면, 우선 ‘변성암(變成巖)’이란 열과 압력에 의해 성질이 변한 돌이란 뜻이다. 대표적으로 대리석이 이에 속하는데, 결정이 작은 석회암의 일종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많이 생산되며 건축과 조각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영어로는 마블(Marble)이라 하는데, 원래의 성분은 석회질이다. 주성분이 석회질인 조개껍데기가 바다 속에서 쌓이고 또 쌓이면서 오랜 시간 동안 눌려 압력을 받게 된다. 그리고 땅 속 깊은 곳 마그마의 뜨거운 열에 노출되어 성질이 변해버린 돌이 바로 대리석이다. 대리석으로 불리는 이유는 중국의 윈난성 서부 ‘대리’란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리석이 발견되는 지역은 아주 오랜 옛날에는 바다였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진흙을 빚은 후 유약을 발라 1300도 이상의 불에 구우면 도자기가 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진흙과 도자기는 완전히 다른 결과물인 것 같지만, 사실상 원재료가 같다. 이 원리로 만들어진 돌이 대리석이다. 대리석은 건축용 자재로 사용되는 고급 재료지만, 산성에 약하므로 외장재로 쓰기에는 부적당하다. 오히려 조직이 치밀하고 색채가 화려하며 비교적 무른 성질을 이용해 조각상을 만들거나 압력에 의해 눌릴 때 생겨난 다양한 무늬를 이용해 내부 장식용 석재로 많이 쓰이고 있다. 물론 대리석이 많이 생산되는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주로 대리석이 많이 생산되므로 아주 두껍게 가공해서 외장재나 구조재로 직접 사용하기도 했으나, 자세히 보면 세월이 흐르면서 산성비에 의해 녹은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대리석은 이처럼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다 www.flickr.com @Gary Ullah


또 다른 암석의 종류인 ‘화성암(火成巖)’은 문자 그대로 불에 의해 만들어진 돌이란 뜻이다. 여기서 불이란 땅속 깊은 곳의 마그마를 의미한다. 마그마가 뜨거워져서 압력이 높아지면 어딘가 가장 약한 부분을 밀고 올라가 폭발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화산이다. 화성암에는 화산 활동에 의해 지표에서 만들어지는 ‘화산암(火山巖)’이 있고, 화산 폭발 후 압력이 약해져 땅 속 깊은 곳에 남아서 그대로 굳어진 ‘심성암(深成巖)’이 있다. 화산암과 심성암 중간쯤에서 굳어진 돌을 ‘반심성암’이라 부른다. 화산암의 대표는 용암이 급속하게 굳어진 ‘현무암’이다. 뜨거운 용암이 공기 중에 노출되면서 갑자기 식게 되니 용암 속에 녹아있던 가스만 빠져나간 채로 굳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구멍이 숭숭 뚫린 단단한 돌이 된다. 제주도의 현무암이 화산암의 대표적인 예다. 


한편 용암이 폭발한 후 마그마의 압력이 낮아지면서 깊은 곳에 그대로 남아 천천히 식어 돌이 된 것이 심성암인데, 천천히 식어가면서 석영, 운모, 장석 등 비슷한 성분의 입자들끼리 모여 결정을 만들게 되고 성분을 이루는 유색 광물에 따라 특정 색상이 발현된다. 심성암의 대표적인 돌이 바로 ‘화강암’이다. 우리나라는 일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화산지대였기에 백두산과 제주도에서는 현무암이 주로 나오고 나머지 지역에서 생산되는 암석의 대부분은 화강암이다. 지역별로 조금씩 특징이 다르게 나타나며, 생산되는 지역의 명칭이 그 돌의 이름이 된다. 회백색의 화강석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 경기도 포천이다. 여기서 나오는 돌을 ‘포천석’이라 부른다. 경상북도 문경에서는 약간 분홍빛을 띤 화강석이 생산된다. 이 돌을 ‘문경석’이라 부른다. 한편 검은색 돌이 나오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남 함양군 마천면이다. 이 돌은 무엇이라 부를까? 그렇다. ‘마천석’이라 부른다. 기타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한 돌이 생산되고 있으며 그 지역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 35호) 현란한 대리석 조각에 비해 화강석 조각은 다소 투박해 보이나 가공이 훨씬 어렵다.  

화강석은 강도도 세고 산성에도 강해서 주로 외장재나 바닥재로 많이 쓰인다. 그러나 색채가 화려하지 않아서 대리석만큼 내장재로 선호되지는 않는다. 요즘 흔히 외장재로 쓰이는 화강석은 저렴한 중국산이 많다. 국내산보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화강석 내부에 철분 함유량이 높아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돌이 오염되고 보기 흉하게 변하는 경우가 많다. 먼지가 끼어서 지저분해진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비를 맞거나 공기 중 습기 때문에 돌에 녹이 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의 화려하고 섬세한 대리석 조각과는 달리 우리의 화강석은 워낙 단단해서 가공하기가 쉽지 않다. 조각가의 능력의 차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솜씨의 차이가 아니고 소재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단단할수록 조각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비누를 조각하는 것보다 나무를 조각하는 것이 어렵듯이 대리석보다 화강석이 다루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오래된 화강석 조각이 어지간히 섬세하고 잘 조각되어 있으면 국보나 보물로 지정할 정도니 확실히 대리석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퇴적암(堆積巖)’은 물과 바람 등에 의해 운반된 광물이 쌓여서 만들어진 암석을 의미한다. 쌓인 성분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고, 단단하기도 각각 차이가 많다. 자갈이 쌓여 돌이 되면 ‘역암’, 모래가 쌓여 돌이 되면 ‘사암’, 진흙이 쌓여 돌이 되면 ‘이암’, ‘혈암’, ‘셰일’ 등으로 불리고, 석회질이 쌓여 돌이 되면 ‘석회암’, 화산재가 쌓여 돌이 되면 ‘응회암’, 소금이 돌이 되면 ‘암염’이라 부른다. 터키의 카파도키아 지방은 바위에 굴을 만들어 살았던 곳이다. 바위에 굴을 뚫었다고 하면 우리는 얼른 화강암을 떠올린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돌이 화강암이기에 우리는 화강암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터키 카파도키아의 바위동굴집은 화강암이 아닌 응회암이다. 응회암은 화산재 등이 쌓여서 만들어진 암석이라 화강암에 비할 수 없이 가공이 쉽다. 심지어는 단단한 스펀지처럼 물에 뜨는 ‘부석’이란 돌도 있다. 카파도키아 지방의 바위는 오래된 응회암 지대라서 수월하게 돌을 뚫어 굴을 만들어 생활할 수 있었다. 다공질의 응회암 암석 내에 수분이 함유된 상태에서는 곡괭이로 파 낼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지만, 표면이 공기 중에 노출되어 건조되면 매우 단단해지는 특성이 있다. 자세히 보면 벽이나 천장에 긁어낸 연장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거미줄처럼 복잡했던 지하 동굴 묘지 카타콤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응회암의 성질 덕분이었다. 


카파도키아 응회암 동굴 내부. 왼편에 곡괭이로 판 흔적이 보인다  www.flickr.com@chrisobayda



물, 시멘트, 모래 그리고 자갈을 한데 모아 섞은 화합물을 콘크리트라 부른다. 근대 이후 콘크리트는 건축에 없어서는 안 될 주요 자재가 되었다. 그런데 사실 콘크리트는 이미 2,000년 전 로마시대 때부터 사용했다. 지름이 43m나 되는 거대한 돔(Dome) 구조인 판테온의 지붕을 콘크리트로 만들었는데, 이때 돔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가벼운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그게 바로 응회암이었는데, 요즘 말로는 '경량기포 콘크리트'쯤 되는 셈이다. 


앞에서 언급한 암석 중에 우리나라 석수장이가 주로 다루는 돌은 화강암이었다. 그만큼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전처럼 손으로만 돌을 다듬는 경우는 이제 보기 쉽지 않게 되었다. 장비가 발달하고 인건비가 비싼 시대가 되다 보니 기계를 이용해 효율을 높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비용은 절감되고 속도는 빠르겠지만, 장인의 정성과 숨결이 줄어들기도 하는 것이다. 즉 효율과 경제성은 높아졌으나 섬세한 예술적 가치는 낮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한편 전동공구를 사용하기에 소음과 분진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눈을 깜박이는 정도를 넘어 온 몸의 근육이 긴장하고 얼굴까지 찌그러뜨릴 정도로 압박이 커지게 되었으니 얼굴과 몸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는 필수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도 개성 넘치는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어떤 이는 대리석처럼 섬세하고 화려한 능력을 가진 이도 있고, 화강암처럼 우직하고 단단한 성품을 가진 이도 있다. 때로는 응회암처럼 꼭 필요한 곳에서 유연하게 능력을 발휘하는 이도 있기 마련이다. 재능과 소질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응회암에게 화강암의 역할을 강요하거나, 화강암에게 대리석의 섬세함과 화려함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질책한다면 모두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로의 재능을 발견해 개성과 다양성을 인정한다면 더 조화롭고 멋진 하모니가 이뤄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재능을 먼저 발견해야 하는데,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이를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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