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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용 Oct 19. 2016

성대마비를 경험하며...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성대에 마비가 오는 바람에 말도 못 하고... 사실 다른 것 다 할 수 있고 말만 못 한다. 그럼에도 다른 쪽에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않고 오직 회복되는 데만 에너지가 사용되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이번 주 중요한 스케줄이 몇 개 있는데 벌써 하나는 펑크를 내고 말았다. 정확히는 몇 주 뒤로 연기했다. 그러나 연기가 불가능한 스케줄도 있어서 조기에 회복되도록 집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오십 평생에 성대마비가 처음이다 보니 몇 가지 불편한 점을 경험하고 있다. 사레가 잘 들린다. 기도를 폐쇄해야 할 때 제대로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약 먹다 사레들려서 또 한 번 식겁했다. 그리고 음식 먹는 건 전혀 지장이 없는데 트림이 원활하지 않다. 해부학적으로 맞는진 모르겠지만, 목구멍까지 가스가 올라온 것을 느끼는데 거기서 마지막 관문인 성대가 파업을 하는 바람에 잘 통과하지 못하는 같다. 그게 불편해서 용을 쓰며 겨우 가스를 배출하면 온몸의 구석구석에서 자기 할 일을 '자연스럽게' 감당하고 있었던 장기들과 세포들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이 펑펑 솟는다.  


진료 시 찍었던 성대 사진을 달라고 했는데 안 준다고 해서 못 받았다. 전에 다른 이비인후과에서는 주던데, 그것 가지고 따질 목소리가 없어서 그냥 나왔다. 사진이 있으면 나를 위해서도 다른 이를 위해서도 더 잘 사용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다음엔 처음부터 물어보고 성대 사진 줄 수 있다는 곳으로 가야 하나? 아무튼 초저녁부터 잠을 잔 덕에 EBS에서 밤 12시 10분부터 방송한 '2016 서울인문포럼'을 볼 수 있었다. 배양숙 서울인문포럼 이사장님의 초청으로 현장 맨 앞자리에서 장하석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었는데, 두 번째 들으니 더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분야나 결국은 '사람'이다! 


나도 일개 강사지만 말하기에 앞서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하늘의 계시로 이 상황을 받아들인다. 말 하기를 배재하고 철저히 듣는 시간으로 며칠을 보내는 게 분명 의미하는 바가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살면서 목이 쉬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그런데 성대 사진을 찍고 '성대마비'라고 판정받기는 처음이었다. 몰랐을 때 같으면 그저 며칠 쉬면 회복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말았겠지만, 알고 나니 오히려 무지함이 더 커지게 되었다.


장하석 박사님의 프리스틀리의 진취적 겸허함의 예를 통해 말씀하셨던 어둠 속 빛을 지식이라 할 때 지식이 커질수록 어둠과 빛의 경계, 즉 무지함을 깨닫게 되는 인식도 커진다는 말씀에 깊이 동의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아무튼 경험은 소중하며, 성대마비의 이 경험이 나에게 성찰의 시간과 실천의 균형 잡기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타인을 위한 한편의 에피소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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