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공장 뒤편에서 발견한 조롱박 비슷하게 생긴 호박을 한동안 관상용으로 두고 보다가 시간이 흘러 썩어 들어가길래 혹시 바가지를 만들 수 있을까 싶어 반으로 갈랐다. 그러나 그 시도는 실패했고, 씨앗들을 근처 흙무더기 위에 버렸었다. 그런데 얼마 전 블루베리 화분에 그 흙을 보충해줬었나 보다. 이번 봄에 블루베리 화분에서 호박 싹이 자라고 있었다. 그러려니 하며 보고 있다가 아무래도 블루베리와 호박이 싸우게 생겨 별도의 긴 화분을 마련해 호박 모종들을 옮겨 심었다. 뿌리를 감싸는 흙을 그대로 옮기기 어려웠던지라 새로 옮긴 화분에서 연약한 호박 모종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옮겨 심은지 이틀째인데 아직 기력을 못 찾고 있으니 말이다. 잘 자랄 수 있도록 햇빛 잘 드는 곳에 철사와 낚싯줄로 얼기설기 엮어 줄을 묶어 줬는데, 속히 건강을 회복해 무럭무럭 자라주면 좋겠다.
호박을 위한 화분에는 특별한 흙을 넣어줬다. 표고버섯을 키우던 참나무가 썩은 흙인데 한 삽 떠보니 그 안에는 큰 지렁이가 매우 많았다. 그래서 흙을 뜨며 각 화분에 지렁이 열 마리씩은 넣어준 것 같다. 영양 많고 숨 쉬는 흙에서 호박이 잘 자랐으면 좋겠다. 만에 하나 지렁이가 죽으면 양분이 될 순 있겠지만 더불어 잘 살아주길 바란다. 땅 속 지렁이를 함께 키운다는 생각으로 물도 자주 줘야겠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게 점점 소중하게 느껴지네. 자연을 보며 나 자신의 미약함과 부족함이 더 크게 느껴지고. 그런데 이런 연약함의 인식과 발견이 오히려 감사의 조건이 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싶다. 몸살을 앓는 호박의 건강을 염려하는 중년 남성의 일상이다.